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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기담, 시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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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이 Dec 23. 2023

강 한복판에서

강 한복판에서

물결들이 어둡게 일렁일렁 사라져 간다. 

사그라들지 못한 더위를 삭혀보려고 

옷을 벗고서 암흑 속으로 

풍덩 빠져본다. 


달 아래 깨진 유리 파편 같은 빛 사이로

낯선 이의 형체가 물 위에 선 모습이

어둠 속 메아리처럼 움직이고 있다. 


몸을 돌려 물 밖으로 나가려 해 보지만

불어 치는 바람에게 속절없이 휩쓸리고

귀를 감는 물소리에 놀라

다급히 하늘을 본다. 


낯선 이 가 서서히 물 위로 눕는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자 같은 것이. 

허우적 대는 손으로 그이의 팔을 확 잡아끌었다. 


물에 잠식당한 듯 새빨갛게 돌출된 안구와 

입술 없이 당당한 푸르른 잇몸과 

가지런한 하얀 이가 

딱딱딱 소리를 내며 

나를 보며 웃는다. 

펄럭이는 잿빛 피부 아래 물방울이 보글보글. 


누워서 비명을 지른다. 


곧 이어질 비극을

예감이라도 한 듯 

강은 소리도 없이 흐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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