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터널, 나는 길을 잃었다.

by 딥페이지

터널은 직선일 거라고 생각했다.
들어가면 나가는 길이 있을 거라고,
조금만 참으면 빛이 보일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가 들어간 터널은 일직선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완전히 길을 잃었다.


내 방황의 시작은 중학교 2학년쯤부터였다.
요즘 말로 '중2병'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 그것은 감정의 시작이자,
세상과의 단절이 시작된 시기였다.


학교가 싫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이 싫었다.

나의 이야기가 퍼져나갔고, 나는 그 사실을 모른 척하며
밝은 척, 괜찮은 척, 버텨야만 했다. 하지만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가지 않았다.
며칠씩이나.

지금 돌아보면 무책임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땐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도망이었다.


중학교 3학년. 친숙한 친구들과 함께 새 반이 되었지만, 기대했던 변화는 오지 않았다.

선생님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이미 낙인 찍혀 있었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이야기들이, 누군가의 입에서 나를 대신해 흘러나왔다.


내가 누군지도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이미 나를 알고 있었다.

나는 점점, 나를 잃어갔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일부러 멀리 떨어진 곳으로 선택했다.
모두가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곳에도 중학교 동창이 있었다.
"어떻게, 왜, 하필!" 절망이 목을 조였다.


그래도 첫 학기는 나름 잘 버텼다. 우울이 나를 잡아먹을 때가 더 많았지만,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붙잡았다.

조용히 공부했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그게 조금은 위안이 됐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내가 아닌 누군가’가 해버렸을 때.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자퇴를 고민했지만, 상의할 사람도, 들을 사람도 없었다.


감정을 말할 수 없었고, 숨기게 되었고,
그 시절 나는 조용히 깨지고 있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는 건 누구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할 아버지와도 그 시절엔 연락이 뜸했다. 당신의 종교적 일로 바빴겠지.

이해했지만 미웠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가족에게는 내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중요할 때 그는 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더 외로워졌다.


중학교 시절엔 우울증 자가 검사를 해본 적이 없다.
그땐 그런 것도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서며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고백했고,
그 영향으로 우리 학교에서도 처음으로 자가 검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50점 만점에 40점. 자살 고위험군. 아마 학교 전체에서 내가 제일 높았을 것이다.


병원을 가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게 사춘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정신과라니,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미친 애'라는 낙인이 찍힐 것 같았다.


당시엔 그랬다.
지금도 어떤 어른들에겐 그런 시선이 여전히 남아 있다.

가장 간절한 바람은 누군가 나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사람을 대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 내가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꺼낸다는 건 기적에 가까웠다.

지금도 그 다섯 글자를 말하는 건 어렵다. 그때는, 더했다.


그리고, 가장 깊은 어둠은 할머니의 부고 소식이었다.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지금도 그 시기가 되면 한 달을 통째로 앓는다.

학교가 끝나고, 전화 한 통에 안부를 묻던 5분. 그게 내 하루의 탈출구였다.

그 탈출구가 사라졌을 때, 나는 5일 밤낮을 통곡했다.


다시 등교해야 할 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옆에 있어준 친구들이 고마웠지만 그 고마움조차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 마음은 이미 다 닫혀 있었다.


나는 완전히 길을 잃었다. 지쳐서 주저앉았고, 어둠은 천천히 나를 집어삼켰다.

잠깐 웃고, 잠깐 즐겁고, 곧바로 다시 공허해졌다.

세상은 방향을 알려주지 않았다.
누구도, 아무도. 차가웠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졸업했다.

그저 어딘지도 모르는 세상에
내던져졌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