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가을 즈음, 아무 연고도 없던 부산에 정착하게 되었다. 졸업을 앞둔 시기에 전학이라니,
흔한 일은 아니었다. 이름도 가물가물한 친구들 사이에서 졸업사진을 찍었고, 그렇게 어찌어찌 졸업을 했다.
근처에 있는, 좋은 중학교에 입학할 예정이었기에 설레기도 했지만
그 사이, 우리 가족의 단란함은 서서히 금이 가고 있었다.
그 해 겨울,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지만 세상은 먼저 바뀌어 있었다. 나는 작디작은 아이에서 급속도로
레벨업을 한, 애어른이 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그건 성장이라기보단, 살아남기 위한 진화에 가까웠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그리고 원하던 어른이 되는 길은 절대 아니었다.
행복하게만 살고 싶었던 어린아이의 소원, 그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이었을까?
90년대생이라면 알 것이다. 우리 세대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학기 초에 '호구조사'라는 것을 했다.
아마 우리 세대가 마지막이었을 거다. 그 A4용지 한 장에 쓸 단어가 몇 개 없었다.
하긴, 이제 막 중학교에 들어온 아이가 집안 사정을 얼마나 알았겠는가.
안타깝게도 그 용지에 부모님 두 분의 이름을 쓰지 못했다. 직업도 흔치 않았기에, 부끄럽지 않아도
매번 설명을 해야 했다. 학기 초마다 반복되는 일이었고, 그게 점점 부담이 됐다.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감당해야만 했다. 뜻하지 않은 소년가장의 역할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허나, 초등학생 때부터 들었던 말이 머리를 짓눌렀다.
"엄마 아빠가 없으면, 네가 동생을 잘 돌봐야 해. 동생, 너는 형 말 잘 듣고."
지금 부모인 독자들이 있다면, 제발 이런 말은 아이들에게 쉽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른이 보기엔
단순한 말이라도, 아이 입장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다. 그 말들이 얼마나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는지 모른다.
학기 초마다 교무실로 불려가곤 했다. 선생님들은 분명 이전 세대와는 다를 거라 기대했지만,
조심성은 부족했다. 조용한 장소에서 말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조금만 더 섬세하게 배려해주었다면.
중학생에게는 보이는 관심이 때론 부러움의 대상이자, 공격의 표적이 된다.
결국 내 가정환경은 전교에 퍼졌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나는 혼자 움츠러들고,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학교가 가기 싫었다. 정말 몸이 아플 때도 있었지만, 꾀병이었던 적도 있었다. 꾀병이 걸려서 담임 선생님께 크게 혼나기도 했지. - 하필 그게 내 생일날이었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내 마음을 아무도 몰라줬고, 나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말해봤자 달라질 게 없다고 스스로 느꼈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번아웃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세게 찾아온 사춘기였던 걸까.
그만큼 나는 스스로를 가두고 살기 시작했다.
동생도 가끔은 내가 한심해 보였나보다. 그러다가도 아무 말 없이 내버려 두는 게 그 아이만의 배려였고,
나도 그게 고맙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내 중학교 3년은 작고 오래된 지옥 같았다. 고등학교 3년 역시 다르지 않았다. - 그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꺼내겠다.
말할 수 없고, 말하면 손가락질받고, 뒤에서 수근거림을 들어야 했던 시간들.
그땐 '이혼'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고, 내 또래 친구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몰랐다.
지금이야 텔레비전에서도 흔한 단어지만, 불과 15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15년이면 진짜 가까운 과거다.
혹시라도 누군가 그 시절을 돌아보며 "나는, 우리는 너한테 그렇게 한 적 없어"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거다.
"그래, 안 그랬을 거라는 건 알아."
하지만 그 시절의 내 정신 상태, 내 감정, 내가 놓여 있던 환경을 생각하면—
그 자그마한 피해의식과 피해망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던 나를,
함부로 ‘그건 잘못된 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과거는 과거일 뿐, 그냥 잊어.”
하지만 트라우마는 다르다. 잊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잊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문제는— 그 기억이 떠오를 때 괴롭다는 거다.
아무리 현재를 살아내려 해도, 특정한 상황이나 말, 혹은 설명되지 않는 작은 자극 하나로
그때 그 시점, 그 공간으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한참을 헤매다, 겨우 빠져나온다.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세상에 ‘나 혼자뿐이구나’라고 느낀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평생을 따라온다.
아마, 내 상처들도 그러하겠지.
하지만 지금 이렇게라도 꺼내놓지 않으면 언젠가 내가 나 자신을 포기해버릴까 두렵다.
살고 싶은 마음이 크기에,
죽고 싶은 마음도 그만큼 커지는 법이니까.
그래서 이제는,
조금씩이라도 털어내고 싶다.
지겹고, 오래된 이 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