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었지만, 어딘가 나는 아직도 고등학생 감정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었다.
일은 열심히 하려고 했고, 어린 나이치고는 여러 일을 조금씩 해봤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불쑥 찾아오는 우울과 무력감 때문에 오래 이어가지는 못했다.
그 시절 생긴 고질병도 있다. 허리 깊숙한 신경이 뭉근하게 눌리는 통증,
가만히 있어도 중심을 잡지 못하는 이상한 느낌. - 지금도 변함은 없다(?)
아파도 병원 가는 게 무서웠다.
아마 보호자 한 사람만 곁에 있었더라도 덜 무서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땐 어른도 보호자도 곁에 없었다.
병원비가 감면된다는 건 알았지만, 어느 병원을 가야 제대로 된 처방을 받을 수 있는지 몰랐다.
청소년이 가진 무지를 탓할 수 있을까.
돌아보면, 나도 그때는 참 많이도 몰랐다.
아픈 걸 참고 넘기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죽을 만큼 아픈 게 아니면 병원은 가지 않았다.
상비약으로 버텼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하고 아찔한 일이다.
‘돌봄’이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어서, 받는 법도 몰랐고
그게 필요한지도 몰랐다.
몸이 지쳤을 땐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땐 뭘 해야 하는지,
그런 걸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겨우 조금 알게 된 정도다.
그 시절 나는
아픈데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고,
힘든데 뭐가 힘든지도 몰랐다.
참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몰라서 말을 못한 적이 더 많았다.
어릴 때부터 선택적 침묵을 해왔던 나는 표현하는 법을 몰랐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 그 간단한 말조차 어려웠다.
결국 결정을 못하면 남에게 넘기고,
나는 나를 설명하지 못한 채 살아갔다.
성인이 되어 이제는 방임과 방치에서 조금 벗어났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내가 나를 방치하고 있었다.
나는 나를 잘 몰랐다. 지금 밖을 나가 아무나 붙잡고 "당신은 당신이 누군지 남에게 설명할 수 있나요?"라고 물으면 몇 명이나 본인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게 잘못된 건 아니다.
지금이라도 알면 되고, 배우면 된다. 늦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자책하고 있었다.
"나는 왜 아직도 이걸 모르지?"
"나는 왜 이렇게 도태된 기분이 들지?"
사실 지금도, 나는 나를 잘 모른다.
우울할 때 어떻게 나를 위로해야 하는지.
몸이 지칠 때 무엇이 회복을 도와주는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떻게 한 걸음 물러나야 하는지.
나는 단지 힘들어하는 법만 배웠고,
쉬는 법도, 놓는 법도, 받아들이는 법도 아직 모른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멀리 보는 힘도 잃어버린다.
자그마한 일에도 숨이 턱 막히고, 사소한 자극도 몇 배로 확대되어 날 덮친다.
아마 그건, 내 감정의 역치가 낮아져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너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고."
하지만 나는 그게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저 지금은 조금씩 나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중이라고 말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