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너무 싫어..

by 딥페이지

나는 사실 장기대기 면제자다.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선 이 부분부터 짚고 넘어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장기대기 면제란, 쉽게 말해 4급을 받았지만 사회복무요원으로 배치되지 못한 채

3년이 지나 면제 판정을 받는 경우다.

모든 4급이 해당하는 건 아니다. 정신과적 진단을 받은 사람들 중 대부분이 이 절차를 밟게 된다.


맞다.

나는 군대에 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훈련소에서 퇴소했다.


25살.

한참 미루다 결국 논산훈련소에 들어갔다.

마지막 점심은... 모래 같았다. 맛도, 감정도.

훈련소는 내 몸과 정신을 빠르게 무너뜨렸다.

공간은 밀폐되어 있었고, 규율은 숨통을 조였고, 약 하나조차 자유롭지 않았다.

공황이 왔다가 사라지고를 반복하고 편두통이 생겼다가 없어졌다가를 내리 반복했다.

그 반복이었다.


당시 내가 속했던 소대를 맡고 있던 일병 소대장은 내게 물었다.

“너 올 해 몇 살이지?”

“훈련병 XXX번, OOO. 25살입니다.”

“왜 이렇게 꾀병처럼 느껴지냐? 이거 못 버티냐?”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사람’이 싫어졌다.


의무실은 처음엔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서류가 없다. 명분이 없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 몇 번이고 ‘조금만 더 있어보자’는 말.


겨우 군의관 진료를 받아 지구병원 정신과로 가게 됐다.

기다림만 두 시간.

진료는… 더 길게 느껴졌다.

내 상태를 말할수록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군의관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퇴소하면 나중에 또 다시 재검받아야 해요. 나이가 더 많아지고…”

하지만 나는 살아야 했다.

그날, 군의관은 내게 6개월의 시간을 줬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기차 안.

멀쩡해 보였던 내가 이토록 망가졌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곧장 병원 진료를 예약했고, 빠르게 찾은 병원이었지만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어떻게 이걸 버텼어요?”

“그 상황이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건가요?”

처음 만난 진료에서 선생님은 나에게 여러 번 그 말을 되물었다.


동생에게도 사실을 전했다. 반응은… 차가웠다.

우울증을 가진 게 부끄러워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고,

그렇게 나를 몰아붙였다.

그리고 “잘 먹고 잘 살아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날, 몇 시간이나 울었는지 모를만큼 펑펑 울었다.


내가 망가뜨린 건 아닐까. 내가 다 망쳐버린 건 아닐까.

사실 나는, 동생에게까지 안 좋은 말이 전해지는 게 싫었다.

그래서 그냥 내가 참고, 내가 듣고, 나만 알고 있었던 건데...

그 선택적 침묵은 결국 내게 독이 되어 돌아왔다.


첫 재검에서는 서류보완으로 7급.

4개월 뒤 재검. 총 10개월 만에 4급을 받았다.

병무용 진단서에 적힌 내 첫 진단명은 뭔가 많았다.

우울증, 공황장애, 사회공포증, 광장공포증, 범불안장애...

내가 이렇게까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니.


지금도 병원에 다닌다.

약이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한다.

그리고, 병명은 바뀌었다.

그게 낫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냥

다른 이름으로 덮어두었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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