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 없이 명절을 보낸 지도 어언 8년? 9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강산이 한 번은 변한 듯하다.
아직도 옛 기억이 가끔씩 떠올리고 싶지 않을 때 문득 나를 치고 간다.
교통사고 마냥.. 다친 건 아닌데 다친 듯한 가슴 저림은 도대체 뭘 어떻게 해도 가라앉지를 않는 거 같더라.
요 며칠 사이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갈 시간즈음 공황이 온 듯 숨이 가쁘게 쉬어지고 멍해지는 날이 잦더라니. 그게 전부 내가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쓴 행동의 신체반응이었다는 걸 지금, 바로 오늘 깨달았다.
두 번째 브런치북을 연재하기 전, 첫 번째 브런치북에 내가 언급을 했었던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갑자기 찾아온 변화에 정신을 못 차린 게 추석 무렵이었다고. 그랬었지.
5~6년 동안 연락 한 번 없다가 내 아들들이니 내가 데려가겠소 하고 나타난 막내아들을,
막냇동생을 무슨 힘으로 어찌 막을 수 있었겠어. - 우리 강 씨 집안사람들은 고집이 엄청나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그 시점을 아직도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라고, 또 나를 위해 살자고 몇 번 마음을
다 잡고 생각 정리를 해도 굵직한 이슈들은 늘 나를 괴롭히곤 했다.
나에게 ‘부모’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였는가? 사실 ‘부모’라는 사람들이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은 맞지만 그들보다 나를 그리고 내 하나뿐인 동생을 사랑으로 기른 건 그들이 아니었는걸.
선택권이 없었다한들, 한 번쯤은 그래도 상의해 볼게요.라는 말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저 어른들의 자가진단과 자체적 판단으로 끌려다니느라 주체적인 결정을 할 수 없었던 건 아닐까?
하긴 8살, 5살 꼬마들이 주체적인 결정과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팔려가듯 딸려간 세월 내도록 명절을 제대로 즐긴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아니. 그 수 십 번의 명절에도 덩그러니 둘만 남겨져있던 기억이 선명한 건 왜일까?
다른 사람들, 신들, 조상님들은 그렇게도 극진히 챙기고는 살아있는 아이들에겐 무관심했던 건 왜일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설날, 추석, 생일, 크리스마스 같은 크디큰 기념일과 명절을 챙기는 건 먼 나라 얘기 같기도 했다.
떡국을 제대로 먹어본 건 언제지? 추석 송편을 제대로 먹어본 건 언제인가? 크리스마스에 트리를 작게나마
꾸며본 건 또 언제였는지. 이런 소소하고 행복한 기억들은 왜 나에게 기억되고 있지 않는 건지
조금은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학창 시절에는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내가 겪은 그런 일들을 겪게 해주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하곤 했는데 20대 중후반을 넘어가면서 생각이 바뀌더라.
나는 결혼을 해도 둘로써만 남겠다고. 내 아이에게 행복한 기억을 남겨줄 수는 있겠지만
이 더럽고 차가운 세상을 혼자 꾸역꾸역 살아가야 할 바엔 아예 낳지 않고 그냥 그대로 두겠다고.
물론, 나란 사람 아이든, 동물이든 다 좋아하고 사랑한다. 아이와 동물은 내가 생각하는 이 사회에서 없으면 안 되는 존재로 나름 분류를 해두었다. 아이, 동물, 사랑이 없다면 이 세상은 이미 종말이었을걸?
그 자그마한 생명체들의 성장이 좋은 영향을 가져올 거란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반대되는 의견을 존중하고 이해하지만 나는 나로서 온전히 삶을 살고 싶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이 거지 같은 기억들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순 없잖아. 차라리 나 혼자 다 감내하고 말지.- 병원 원장님이 말하시길, 이걸 다 가져가려고 하면 사람이 무너진댔다. 그리고는 우울증, 공황, PTSD가 찾아와도 병원은 안 온다고. 와야 할 사람은 안 오고 안 와도 될 사람은 온다고. 그런 거 같기도...?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이제껏 그렇게 살아온 게 나인걸.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의 첫째들에겐 늘 해당되는 가스라이팅이 있다. 첫째가 다 짊어지는 거야, 네가 우리 집 기둥이야, 우리가 없으면 네가 엄마아빠의 역할을 해야 해. 어른에게도 함부로 하면 안 될만한 가스라이팅 아닌 가스라이팅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내 기질은
쉽게 변하지는 않을 듯하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명절은 분명 좋은 날이다. 가족 친지들이 모여 근황도 이야기하고 오랜만에 웃는 시간을 가지는 것.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인류애가 다시 채워질 것이다.
나도 언젠간 이따금씩 찾아오는 아픈 기억이 흐릿해지는 날에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
“이야, 명절날 웃는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