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목소리 너무 커.

by 딥페이지

어린 시절,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정말 컸다. 물론, 지금도 울림통이 커서 큰 목소리로 말은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게 조금은 눈치 보일 때가 있다. 민폐일 수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강하게 박힌 통제성은 나이를 먹어도 옅어질 줄 모른다.


때는 바야흐로,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신나면 소리 지르고, 장난칠 때도 소리 지르고, 아무튼 소리를 안 지르는 날이 없을 정도로 신나게 놀던 아이였다. 그 넘치는 기운이 집까지 퍼졌으면 안 됐는데.. 하는 생각을 지금은 한다.


속된 말로 기차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울림통이었던 나는 집에서도 톤이 조금은 높아져있었다.

그 큰 소리를 들은 부모님은 “목소리 좀 줄여라, 데시벨 너무 높다.”같은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요즘 아이들도 그렇듯 나도 다르지 않았다. 이해하기엔 그저 짜증 섞인 훈계였기에 그리고, '이게 시끄러운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은 똑같은 행동이 반복됐다. 덕분에 강한 훈계를 들어야만 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큰 목소리는 내서는 안된다는 인지는 한 번 꽂힌 자리에 지금도 강하게 박혀있다.

소위 목소리를 먹는다고 하지 않는가. 첫 시작은 나름 경쾌하게 대화를 시작하다가도 어느 순간 끝을 흐린다던가, 아니면 점점 말소리가 작아지곤 한다. 그래서인지 불쾌한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못한다.

통제가 아닌 절제를 가르치고 그것을 배웠어야 했다. 그랬다면 필요한 상황에서는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 됐을 텐데. 나는 화가 나도 터뜨리는 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사람인 거 같다.

악을 쓰는 건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소음공해일 뿐, 화라는 감정이 왜 생겼는지에 대한 목소리는 잘 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나는 절제보다는 통제를 더 빨리 배웠고, 이해와 공감보다는 강압적이고 억지스러운 상황도 그럴 수 있지로 넘어갔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어깨너머로 배운 절제나 공감은 여전히 부족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가끔 하곤 했다. 혹 자들은 지난 과거를 너무 오래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마음먹으면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냐며

비교적 쉽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뇌리에 박혀버린 리듬이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지금은 누군가의 통제도, 강제적인 압력도 없다는 것을 안다.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면 되는 것이란 것도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그러나, 선택과 집중, 결정도 많이 해봐야 거르고 또 거르지 않고 빠른 결정을 할 수 있는 듯하다.

이제야 나는 조금씩 나만의 선택, 집중, 결정을 하고 있다.

목소리를 크게 내기도 하고,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고민하기도 하고, 생활리듬을 바꿔보기도 하면서.


우울증엔 완치란 없다. 다만, 천천히 적응하고 공생하며 살아가는 것뿐. 옛 기억에 사로잡혔다고 못난 게 아니고, 털어내지 못했다고 이제 털어낼 때 됐잖아 하며 지겨운 듯 내색할 것도 아니다. 그냥 나는 나다. 변하지 않는 듯 변하고 있고 바뀌지 않는 듯 하지만 분명 바뀌고 있다.


“오늘은 너의 목소리를 냈구나. 잘했어!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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