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세상에서 외로웠던 생명을 떠나보내며, 달래야 미안해.
“참 허망하다.”
운전석에 앉으며 나도 모르게 한숨 섞어 나온 첫마디 말이다.
곁에 앉은 훈이도 먹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허망하네. 엄마."
2023년 4월 30일 오후 7시 40분 숨을 거둔 우리 강아지 달래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와 아들이 처음 주고받은 말이다.
2007년 7월 너무 일찍 어미와 헤어진 2개월짜리 시츄 강아지가 우리 집에 막내로 들어왔다.
당시 우리 집에는 맏이로 고등학생 딸과 중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들이 있었다.
남매가 함께 생활하다가 누나가 유학을 떠나고 혼자 남은 중학생 아들 훈이는 강아지를 데려오자고 여러 번 졸랐었다. 딸아이가 방학이 돼 귀국했던 어느 날 애견샵에 구경만 하려고 들어 갔다가 결국 귀여운 아기시츄와 강아지 용품들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온 식구가 거실 바닥에 엎드려 막내가 된 강아지 '달래'와 눈 맞추고 몰려다니던 모습이 아련하다.
밤이 되자 거실 한쪽에 사각틀을 설치하고 거기에 방석을 놓고 강아지를 넣어 두고 식구들이 각방으로 들어가 잠들려는데 달래가 밖에서 낑낑거리고 울었다.
우리는 또 몰려나와 달래를 달래주고 번갈아 안고 들어가 잠을 자곤 했다.
더 큰 문제는 가족들이 모두 직장으로 학교로 나가고 나면 강아지 혼자서 외롭고 두려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것이었다. 강아지 입장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중요한 문제였다.
우리에겐 달리 방법이 없어서 그냥 그렇게 달래를 키웠다. 각자 시간을 보내고 누구든 빨리 집에 온 사람이 달래 수발을 들어주고 산책을 못하는 날도 많았다.
달래는 피부 알레르기가 있었고 혼자 있는 시간에 발을 핥아서 늘 연고를 달고 살았다. 사료와 간식도 저알러지 제품을 먹이고 털이 많이 길어지기 전에 미용을 해주었다. 그 외에는 잘 먹고 건강하고 순하고 털도 안 빠지고 재주는 못 배우고 목욕도 버둥거리며 억지로 해야 하는 강아지였다. 산책은 때를 안 가리고 날아갈 듯 좋아해서 식구들이 일상대화 중에도 '나가자'는 말은 조심히 써야 했다.
언제나 기다리는 역할로 안타까움을, 언제나 반겨주는 역할로 위로를 듬뿍 주던 강아지는 열여섯 해를 그렇게 살다가, 역할이 끝난 연극배우처럼 우리 곁을 떠나갔다.
달래가 몸져누웠다는 소식에 훈이는 주말에 직장이 있는 서울에서 전주집으로 내려와 달래와 함께 지냈다.
자리에 누워 꺼질 듯 가쁜 숨을 내쉬던 달래는 훈이 오빠가 오면 잠시 기운을 차리고 누룽지도 먹고 오빠와 함께 짧은 산책도 다녀왔다.
아들이 함께 있을 때, 달래가 떠나기를 바랐고 긴 시간 달래가 못 떠나면 병원에 가서 편안히 보내줄 마음마저 먹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우리 앞에 닥쳐온 달래의 마지막을 수습하던 당혹스럽고 처참한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있을까.
달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오줌똥을 내놓고 고장 나 부서진 나무인형처럼 널브러졌다.
아들하고 둘이 울면서 죽은 강아지를 닦아주고 네 발을 모아 작은 담요에 싸서 소파 위에 뉘었다.
황망하지만 우리는 정해진 순서대로 달래를 보내는 의식을 치러야만 했다.
최근에 새로 오픈한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미리 알아두고 있었기 때문에 찬찬히 연락을 하고 훈이가 달래를 안고 내가 운전해서 그리로 갔다. 깨끗하고 친절한 장례식장에서 달래를 화장하고 고운 보자기에 싸인 유골함을 받아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두 시간 남짓.
우리 강아지 달래는 손바닥 만한 유골함 속에 한 줌 재로 돌아와 불 밝힌 촛대옆에 포근하게 놓였다.
장례식장에서 유리창 너머 화로 속으로 들어가는 달래를 보며 아들과 나는 오열했다.
외롭고 외로웠을 달래의 일생이 한없이 안쓰럽고 미안하고 고마워서 소리 내어 울었다.
얼마 만에 화장이 끝났다고 다시 유리창 너머로 하얗게 남겨진 달래의 유골을 보여줬다.
정말 이상하게도 슬픔이 싹 가시고 모든 감정이 깔끔하게 정화된 느낌이 공간을 채웠다.
훈이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그랬다.
담담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다음 날 일찍 달래의 유골함을 안고 달래와 함께 놀았던 경치 좋은 옥정호 자락의 숨겨진 공원으로 갔다. 호수의 물이 줄었지만 잘생긴 소나무는 여전히 반듯해서 그 밑에 달래를 놓아주었다. 한창 꽃도 예쁘고 수목도 막 푸르러지는 계절 5월에, 어쩌면 강아지 달래가 태어났을 5월에, 가족과 함께 즐겼던 작고 비밀스러운 이 공간에 달래를 맡겼다.
우리는 때 없이 자주 이곳에 와서 두런두런 달래 이야기를 많이 나눌 것 같다.
달래를 좋은 곳에 보내주고 돌아오는 길에 옥정호 주변의 경관을 구경하고 모악산 아래 로컬푸드 매장에서 삼색병꽃 한그루와 먹거리를 사 갖고 집에 왔다. 배고픈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고, 달래 없는 동네산책을 다녀와서, 떠난 강아지 달래의 살림들을 정리하고 이불 빨래를 했다.
훈이는 간직하고 싶은 달래의 옷과 담요와 방석을 챙겨 놓고 내게 빨지 말라고 부탁했다.
'달래의 체취를 남겨두고 싶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애틋한 그 마음이 내게도 전해졌다.
훈이도 서울로 돌아가고 나도 달래가 없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달래가 떠난 후 나 혼자 남았을 때, 슬픔은 내게로 다시 돌아왔다. 설거지를 하려고 싱크대 앞에 섰다가 앙증맞은 꿀병이 눈에 들어왔다. 뜨거운 눈물이 넘쳐 시야를 가리고 북받치는 설움에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하루 두 번 심장약을 먹던 달래에게 쓴 약과 함께 섞어 먹이던 단 꿀도 이젠 저 작은 병 속에서 굳어져 가겠지. 눈이 부시게 푸르고 화창한 날,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 천변을 달리는 차 안에서 또 어김없이 눈물이 솟는다. 눈물로 가득 찬 항아리가 가슴에 묻혔는지 혼자일 땐 저절로 눈물이 넘쳐 나온다.
먹먹한 가슴으로 집에 들어오면 달래가 머물던 자리마다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벽과 닿은 내 침대 끝자락, 달래의 작은 나무 식탁이 있던 싱크대 밑, 소파의 팔걸이 옆 달래의 방석이 있던 자리, 산책 나갈 때 쓰는 용품 바구니가 있던 자리..
그 빈자리마다 카메라에 담아뒀다. 빈자리에 눈길이 가면 발길도 거기 머문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꼭 표시가 난다”
어른들이 쓰시던 그 말이 절실하게 실감이 난다.
잠자리에서 돌아 누울 때마다 흠칫 달래의 무존재를 확인하고 빈자리를 쓸어본다.
나흘 째 비가 내리는 오늘 아침 달래와 짧은 산책을 하던 아파트 뒷마당 놀이터로 나가 봐야겠다.
달래 없이 산책하고, 달래 없는 빈집에서 외출하고, 달래 없는 집에 돌아오고, 달래 없이 잠드는 고독한 일상을 무심히 받아들이는 날이 곧 오기를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