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래의 자서전(12)

- 미안! 너의 16년을 내가 쓰는 거.

by 화수분

이제 나의 시간이 짧다는 것!

"달래야, 누룽지 좀 먹을까?"

"왜 이렇게 누워만 있어?"

"바람 쐬러 나갈까?"

"엄마가 포대기로 업어줄까?"

엄마와 나는 눈을 맞추고 서로 바라보았다.


내가 우리 가족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아기였고 언니 오빠는 학생이었지.

그땐 엄마 아빠랑 우리 다섯 식구가 끝없이 행복하게 사는 건 줄 알았다.


언니 오빠는 먼 나라에 공부하러 가서 오래 있다가, 잠깐 왔다가고 그랬다.

엄마도 일하러 가고 아빠도 일하러 가고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래도 기다리면 엄마가 오고, 맛난 걸 먹고, 산책하고, 목욕하고, 병원 가고, 언제나 나의 모든 것을 엄마와 함께 했다.


내 나이 열여섯 살!

지금 우리는 엄마와, 나 둘 뿐이다.

언니는 미국에서 안 오고, 오빠는 미국에서 왔지만 서울에 살고.


아빠를 못 본지는 너무 오래됐다.

엄마와 아빠는 함께 살지 않는다.

10년 전쯤 엄마는 나를 데리고 새로운 집으로 왔다.


둘이 살면서, 새벽에 일하러 나간 엄마를 기다리고, 돌아온 엄마를 반기는 게 나의 일상이었다.

엄마와 함께했던 산책 덕분에 이사 간 동네마다 공원과 골목길을 누비고 다녔다.

난 사회성은 없고, 강아지 기피증이 있었다.

그래도 엄마와 마지막으로 살았던 동네에서, 흰 강아지 '순돌이' 엄마 덕분에 늦게서야 몇몇 친구와 놀기도 했다.


엄마는 이제 일하러 안 가고 나랑 긴 시간을 보낸다.

엄마가 마음이 아픈 우울증 때문에 죽고 싶었을 때 난 엄마 곁에 있었다.

우리 엄마가 나를 두고 죽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내가 혼자 남아서 정말로 불쌍한 개가 될 뻔했잖아.

아니, 지금 내가 이렇게 아플 때 엄마가 내 곁에 없었다면, 난 슬퍼서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엄마,

오빠가 보고 싶어요!

난 원래 오빠의 강아지다.

오빠가 중학생 때 강아지를 갖고 싶다고 졸라서 내가 우리 집에 오게 된 거다.

결국은 엄마가 나를 키웠고, 오빠는 어쩌다가 만나게 된다.

그래도 난 오빠의 강아지가 맞다.


난 숨이 가빠서 밤에 병원에 가기를 반복했고, 이젠 앓아누웠다.

기운이 좀 좋아지면 엄마에게 안겨 산책을 다녀온다.

햇볕이 좋은 데서 엄마가 잔디밭에 내려주면, 쉬도하고 몇 발짝 걸어 보기도 한다.


주말에는 오빠가 온다.

난 기운이 나서 밥도 조금 먹고 오빠랑 짧은 산책도 한다.

그럴 땐 엄마가

"아이고, 오빠 왔다고 컨디션이 좋네?"하고 웃는다.

신기하게 오빠를 보면 힘이 난다.


엄마는 내가 눕는 자리를 언제나 깨끗하게 정리해 준다.

이불위에 주름이 하나도 없게 펴주고, 얇고 하얀 수건을 깔아주고, 내가 입은 얇은 내복도 반듯하게 손질해 주고, 내 털이 가지런하게 여러번 쓰다듬어 준다.

난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엄마가 만지는 대로 가만히 맡겨둔다.


숨이 깊게 쉬어지지 않고 가쁘기만 하다.

답답해서 밖에 나가고 싶다.

엄마에게 안겨 밖에 다녀와도 그때뿐이네. 아휴!


오빠가 왔다.

주말에 나를 보러 여러 번 왔다 가고, 엄마가 내 소식을 전해주니 행여라도 엄마 혼자 있을 때 내가 떠날까 봐 오빠가 서둘러 집에 왔다.

이번에는 오빠가 더 길게 있을 거라고 하니까 오빠가 가기 전에 내가 먼저 떠나야겠다.




고마웠어요, 안녕!

엄마침대 위에 나와 오빠, 엄마 셋이서 함께 있다.

오빠는 한없이 나를 쓰다듬는다.

"달래야, 많이 아프지 마, 오빠 있을 때 좋은 데로 가."


오빠가 내게 미안하다고 자꾸 말하지만 난 우리 가족을 만나서 좋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아기 때부터 열여섯 살까지 다른데 안 가고 우리 가족하고만 살았으니까 정말 좋았다.

오랫동안 언니와 아빠는 못 만나고 헤어지지만, 엄마와 오빠가 함께 있을 때 걱정 없이 편안하게 떠나는 것도 좋은 거다.


"아이구 달래야, 조금만 아프고 좋은 데로 가자."

엄마는 자꾸 같은 말을 하면서 수건이나 이불을 반듯하게 펴주고 내 얼굴을 닦아준다.

내 발을 따뜻한 손으로 감싸주고 꼬리를 쓰다듬어 이불속에 넣어준다.


이제 얕은 숨도 가빠지고 찬바람을 한 번만 맞고 싶다.

난 힘을 내서 고개를 들었다.

엄마는 내가 왜 그러는지 알고 나를 안고 발코니로 갔다.

봄날 저녁 시원한 바람이 내 얼굴에 닿도록 몸을 돌려주었다.


창 밖에 산책길, 햇볕, 꽃들, 풀들, 벤치와 잔디밭, 이끼밭, 큰 나무, 내 친구 순돌이, 까망이, 달콤이 안녕!

나도 모르게 엄마품에서 마지막 숨이 휘파람처럼 내뿜어졌다.


내 엄마!

내 오빠!

고마웠어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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