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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수분 Oct 22. 2024

전화

세 사람의 전화를 받은 하루

전화 1

"예, 안녕하셔?

나요, 이호요."


"네, 사장님

잘 지내시죠?"


수개월만에 페인트 이호사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소규모 건축사업을 할 때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페인트 업자였다.


어떻게 지내냐?

건강은 어떠냐?

서로 안부를 주고받다가 대뜸,

"나 다리를 잘랐어요."

그가 말했다.

"어? 아이고......"

나의 말문이 막혔다.


난 이호사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술을 마시는 사람이고 당뇨병을 가지고 있었다.

현장에서 음료를 나눌 때에도 항상 물을 드렸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다리를 잘랐다는 말을 듣고 얼른 그의 당뇨병 생각이 났다.

그가 말로는 당뇨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했지만 여전히 술을 마신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발에 상처가 좀 났는디,

괜찮은 줄 알고 댕겼는디 속에서 썩어 버렸드랑게요."

"발목 잘르고 안되야서,

또 정갱이 잘르고 인자 의족을 씅게 쓸만혀요."


그는 왜 나한테 전화를 했을까?

여전히 씩씩하고 큰 목소리로.

지금은 건축일도 안 하는 내게 자신의 불행할 근황을 알리는 이유가 뭐지?

혹시 다시 현장이 생기면 자신을 불러 달라는 영업일까?

아니면 서로 안부를 전해야 할 만한,

그의 인간관계의 범주안에 내가 들어있는 건가?


육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만성 질환으로 정강이를 잘라내는 수술을 하고도,

고단한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그의 말년이 안쓰럽다.


이호 사장이 술을 완전 끊을 수 있을까?

여기에 생각이 머물러,

나조차 심란한 마음으로 주섬주섬 챙겨서 점심 약속에 나갔다.




전화 2

"여사님!

버섯을 못 따서 전화도 못 드렸고만요."


"뭔 말씀이래요?

아! 사장님 취미가 버섯 따는 거죠?"


올 가을에는 능이버섯이 안 나와서 재미가 없다고 했다.

설비 일을 해주시던 정사장님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싸리버섯, 능이버섯을 땄다고 의기양양하게 내게 한보퉁이 전해주시더니.


봄에는 산두릅, 취나물도 한 번씩 얻어먹었는데......

현장일을 하다가 쉬는 날이면,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의 장소에 가서 산이 주는 선물을 기쁘게 따오던 정사장님이다.


올해는 자신이 아껴오던 그곳에 능이버섯이 없어서

몹시 아쉬운 목소리를 내게 전해준다.

행여라도 내가 그의 버섯을 기다릴까 봐 소식을 주셨나?

사실이다.

난 능이버섯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난주에 산에 함께 갔던 동생들이

"언니, 능이버섯 생각이 나네.

그때 정말 잘 먹었는데."

그래서 아, 능이버섯 날 때가 됐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버섯이 나든, 안 나든 곧 얼굴 한번 보자고 그러고는 통화를 마쳤다.

오늘 두 사람의 전화를 받고 보니,

한 십오 년 동안 매진했던 건축현장의 일화들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내가 도움을 청할 때,

두말없이 달려와 자신들의 일처럼 마무리해 주던 고마운 사람들이 나를 살렸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살린 거지.

요즘, 나만 너무 잘 고 있는 거 아닌가?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고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전화 3

그런데,

귀가 후 심사숙고할 전화를 받았다.

친구였다.


"야, 의논할 일이 있는데......"

"응, 말해봐?"

"만나서 이야기해야 는디."

"괜찮아, 길게 통화해도 돼."


"야, 니가 내 동생 건물 좀 지어줘야 되겠다.

꼭 니가 일해줘야 된다고 했어."


아뿔싸!

오늘 전화 왜들 그래!

고민이네, 오늘 참 이상한 날이구먼!


***위 사진 두 개/다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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