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더웠고 거기도 더웠다. 나를 꼬드겨 여행을 데리고 간 동생은 나보다 열댓 살이나 어린 'W'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이후 내가 일상을 벗어나는 일탈의 대부분을 그녀와 함께했다.
외국여행, 등산, 공연장, 술자리등.
W는 에너지가 넘쳐 나외에 다른 사람들하고도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다가, 알맞은 텀이 되면 내게 소식을 보낸다. 난 활동이 좀 과하다 싶으면 휴식기를 갖고 싶어 하기 때문에 W는 나의 활동에너지 사이클을 비교적 잘 살펴서 균형적으로 시그널을 보내는 것 같다. 그건 W의 현명한 판단이다.
내가 평온한 삶을 살다가도 5년 전 필리핀 세부여행 중, 패키지를 이탈해 몰래 다녀왔던 몹쓸 '동굴탐험'만 생각하면 심장의 피가 역류할 듯 아찔해지고 저절로 눈을 질끈 감게 된다. W는 평범한 여행객들처럼 가이드의 말을 잘 듣고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현지에서 색다른 체험을 호시탐탐 궁리한다.
그날도 가이드선생에게 "아휴, 우리 둘이 열이 나고 머리가 아파서 오늘 호텔에서 쉬어야 하겠어요"해놓고, 미리 작업을 해두었던 현지인을 컨텍해서 일단, 국립공원 산길을 따라 굽이굽이 엉덩이 들썩 거리며 고난의 드라이브를 몇 시간 했다. 현지가이드는 동굴에서 가까운 동네의 원주민 젊은이였다.
면사무소 같은 작은 건물에서 간단한 서류(아마도, 안전은 책임 못 짐!)를 작성하고 동굴을 향해 걸었다.
W의 영어실력이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으니, 만면에 웃음 가득한 현지가이드와 이야기를 나누며 동네도 몇 개 지나고 대파와 상추를 심어 정갈하게 가꾼 밭사이로 한없이 걸어간다. 풍경이 예뻐서 도란도란 걸을만했다. 가끔 마주치는 동네 아주머니나 아이들이 가식 없이 순수하고 만족한 표정으로 웃어 주었다. 굽이진 골짜기와 산골마을과 웃는 사람들과 풀을 뜯는 검은 소가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져 여기가 낙원인가 싶었다.
이제 낙원이 지겨워질 때쯤 마지막 동네 끝자락에 부옇게 운무에 쌓인 비현실적인 계단입구를 만났다.
동굴과 연결되는 계단을 내려갔더니 성모마리아 동상과 함께 성물이 몇 가지 놓인 소박한 예배처가 꾸며져 있었다. W는 천주교 신자여서, 나는 온갖 기도처에 기도를 드리는 무교자여서 간절하게 안전탐험을 기원했다!
현지가이드가 헬멧과 안전벨트를 나눠줬다. 이마에는 미리 준비해 간 헤드라이트를 장착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양팔에 소름이 돋는다. 세 사람이 각자 안전을 담보할 장비를 단단히 매고 저 앞에 보이는 동굴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갈 채비를 마쳤다. 현지가이드는 웃음기 가신 얼굴로 몇 가지 주의사항을 일러줬다.
동굴을 둘러싼 분위기는 아, 뭔가 으스스하고 음습한데 방문자들이 전혀 없고 우리 셋 뿐이다.
W가 물었다. "여기는 관광객이 얼마나 오냐?"
"한 달에 서 너 명?"가이드 대답이다.
맙소사! 말 그대로 오지탐험이다. 일부러 개발을 안 하는지, 앞으로 개발을 할 건지, 머리에 쓴 랜턴이 아니면 조명 자체가 없다. 까만 동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반바지 입은 현지가이드 하나만 믿고 W와 나는, 말소리가 웅웅 울리고 발밑에 맑은 물이 흐르는 동굴 속으로 철벅거리며 발을 내디뎠다.
"내가 먼저 뛰어내리면 따라서 뛰어요."
"첨벙!"
"뛰어봐요---!"
"안 깊어요----?"
"돈 워리----!"
"으--첨벙! 첨벙!"
숨 막히는 긴장으로 온몸이 오그라진 채 시커먼 물속으로 뛰어내렸다. 동굴 속에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 날카로운 바위들이 꽂혀있다. 그 바위 사이사이로 발을 집어놓고 기우뚱 대며 앞으로 가야 한다. 심지어 물속 바위가 비스듬히 기울었을 땐 정강이가 꺾일 뻔했다. 간절히 마음속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 가이드 다치지 않게 도와주세요!"
"우리 두 사람 꼭 살아서 귀국하게 해 주세요!"
얼마나 숨죽이며 계속 걸었는지 지쳐갈 무렵, 하늘이 보이고 나무가 보이고 소복하게 솟은 자갈섬이 나타났다.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햇살이 비치는 동굴바닥엔 맑은 물과 이끼, 투명하고 아주 작은 물고기도 보였고 동굴 천장에는 박쥐가 푸더덕 날아다닌다. 박쥐똥이 언덕을 만들어 놓아서 생각 없이 밟고 다녔다. 그때는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이었고 그런 접촉이 얼마나 위험할지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지금 되새겨보면 정말 아찔하고 무모한 체험이었다. 긴장이 좀 풀리자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하니 젖지 않게 꽁꽁 싸맨 간식을 열어서 나누어 먹고, 다시 시작되는 두 번째 동굴투어를 START!!!
두 번째 동굴은 더 차갑고 청정한 기운이 도는 분위기에 물속이 뽀득하게 느껴지고 바위는 더 날카로웠다.
이젠 신발끝에 손가락 같은 감지기가 달린 듯 조심조심 더듬어 안전한 곳에 발을 디디고, 어둠에 익숙해진 홍채 덕분에 전진하기가 좀 수월해졌다. 시간이 길어져 피로가 쌓이고 서로 말이 줄었다.
"으---, 아오---, 여기 조심해. 다리 안 다치게" 이 정도 대화가 전부다.
멀---리 터널 끝자락인가 희미한 빛이 보인다. 끝이 보인다!
W의 목소리가 밝고 커졌다. 나도 낯꽃이 좀 펴진 것 같다.
가이드가 뒤돌아보고 하얀 이를 보여주며 활짝 웃었다.
우리 두 사람이 양팔을 들고 "와우---" 소리치며 온몸으로 안도의 몸부림을 발산하는 찰나!
헉, 낭떠러지다!
우리 앞에 카메라가 없을 뿐이지 이건 '인디아나 존스'리얼 촬영현장 이래도 믿겠다.
동굴 속 시냇물은 폭포가 돼서 곤두박질치고, 땅바닥은 미역줄기 같이 길고 미끄러운 풀들이 낭떠러지로 늘어져있고, 길은 없고, 잡고 서있을 밧줄도 없다.
동굴 바로 앞에 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그 나무를 붙잡고 쭈그려 앉아 나무뿌리에 한발 딛고, 한 발은 쭉---내려서 가이드 발을 디뎠다.
동굴속보다 더 큰 고난 앞에서 울면 안 되었다. 아찔한 이 광경을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이건 영화가 아니고 우린 배우가 아니다. 발끝에 '우주의 기운'을 모아서 끝까지 두 발로 걸어서 사람들의 동네에 이르러야 한다.
원주민 현자의 영혼으로 빙의라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셀 수 없이 미끄러지고 발목이 꺾여도 정신은 형형해졌다.
그때는 아마도 내 몸속 세포의 모든 뉴런과 시냅스가 총동원되어, 원시로부터 가져온 동물적 감각을 최대한 되살려 냈을 것이다. 본래 하산에 약했던 W의 몸속 세포들도 이 비상사태를 인지하고, 오차 없이 뇌세포와 팔다리를 움직여서 사고를 차단했을 것이다. 나중에 보니 그 폭포 하강 구간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 말없이 묵묵히 한 발씩 내리 딛는데 집중하느라 사진 따위는 이미 잊었다.
끝이 없을 것 같이 지루하고 가파른 하산길도 어느덧 기울기를 눕히고 한숨 돌릴 만큼 완만해졌다.
"저기 집이 보인다!"
동굴을 품은 산과 폭포를 배산임수로 삼아 산자락에 지은 집이 얼마나 정갈하고 평화로운지, 걸으며 훔쳐보기를 수십 번 하고도 뒤돌아보기를 멈추기가 아쉬웠다.
살아서 제 발로 돌아온 것이 신통하기도 하고 겪은 일이 하도 어이없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예쁜 꽃들이 눈에 띄어 사진도 찍고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며, 나풀나풀 산길을 걸어 차가 다니는 신작로를 만났다.
신발도 갈아 신고 배낭도 정리하면서 헤드랜턴과 몇 가지 장비를 챙겨 가이드에게 선물로 주었다.
진심으로 괘씸하고, 고마웠다!
가이드와 함께 산골 마을에 들러 보기로 했다. 안개가 자욱한 동네는 어떤 신비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젊은 가이드도 가족과 함께 이웃마을에 살고 있었다. 원주민의 유적지가 있어서 구경하고 동네사람들과 인사도 했다. 수수하고 친절한 표정, 건강하고 행복해 보이는 웃음이 우리에게 따뜻한 온기로 전해졌다.
주거환경은 열악해 보여도 한결같이 웃는 얼굴로 자연과 하나 된 듯 여유가 넘치는 남녀노소를 뒤로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