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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갈게 - 큰 나무 아래로

- 달래야, 거기도 춥지.

by 화수분

벌써 눈시울이 뜨거워져 티슈곽을 당긴다.

내 강아지 달래가 떠난 지 일곱 달째.

이렇게 을씨년스러운 계절에 호숫가 큰 나무아래는 얼마나 쓸쓸한 기운이 감돌고 있을까.


나와 함께 16년을 살다 간 시츄, 달래는 사는 동안 비교적 건강했고 털도 안 빠지고 얌전한 강아지였다.

피부알레르기 때문에 연고를 바르고 항알레르기용 사료와 간식을 먹어야 했던 걸 빼고는.

마지막에는 심장이 안 좋아져서 한 일 년 정도 약을 먹었고, 결국 폐수종으로 병원에 다니다가 생을 마쳤다.


달래가 떠난 후, 외롭게만 살다 간 내 강아지 달래가 가련해서 내내 가슴에 사무쳤다.

언제나 기다림에 지쳐 발가락을 깨물던 강아지를, 짬짬이 안아주고 업어주고 달래 가며 오히려 내 외로움을 그 애한테 의탁했다. 몸져누웠을 때가 돼서야 바깥일을 삼가고 달래 곁을 지켰다.


지금 창밖에는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다.

한 시간 반을 달려가면 옥정호의 고요한 물가, 큰 소나무아래 우리 달래가 잠들어있다.

호숫가 작은 공원에 인적도 없이 꽃조차 져버린 초겨울 늦은 오후,

저절로 눈물이 날 것만 같은 풍경 속에서 내 강아지 달래는, 영혼마저 홀로 외로울까 봐 목이 메인다.

내일은 달래가 잠든 곳으로 가봐야겠다.

해마다 찾아오던 초겨울, 오늘 같은 날을 달래와 함께 나누고 싶어서 큰 나무 아래로 가봐야겠다.




지난봄 4월의 마지막 날, 화장을 마친 달래를 생전에 엄마랑 오빠랑 함께 간 곳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으로 데리고 갔다. 섬진강댐 안쪽에 호젓하고 조용한 공원, 큰 나무 아래 봄꽃이 소담하게 핀 그곳에 달래를 놓아주었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 보니 좀 더 가까운 곳에 달래의 휴식처를 둘 걸 그랬다.

달래생각이 날 때마다 수시로 다녀올 수 있게.


지난번에 찾아갔을 땐 수풀이 우거지고 오솔길이 막혀 소나무만 바라보다가 그냥 돌아왔다.

달래를 떠나보낸 후에 난 이사를 했다. 그래서 새로운 동네엔 달래와 함께한 추억의 장소가 없다.

달래가 그리울 땐 40분 거리에 있는 옛날 동네 우리가 살던 아파트로 간다.

저와 나와 둘이 산책하던 곳곳에 머물러 본다. 달래가 없는 빈 곳을 사진 찍어본다.

잔디와 나뭇잎, 달래가 친구들의 체취를 맡아보던 맥문동 잎들도 철 따라 스러진다.

이것들은 내년 봄에 어김없이 철 따라 돌아올 텐데......


달래를 보낸 후로는 집에 반려동물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

난 혼자 있는 사람이라 내가 부재중엔 그 애가 또 혼자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둘, 셋씩 뒷바라지하기도 엄두가 안 나고, 또 여행이라도 떠나려면 대책을 세우기가 만만치 않다.

호텔에 맡겼다가 돌아와 보면, 몸은 야위고 눈병이 난 강아지를 안고 한동안 속이 상해야만 한다.


사실, 난 독거 중인 현재의 생활이 편하기로는 그만이다.

24시간을 내 맘대로 경영하는 자유함이란 축복이기도 하다.

아들이 올 때, 친구나 형제가 올 때, 기꺼이 따뜻하게 대접하고 다시 나 홀로 돌아가는 생활이 은근 달콤하다.

물론 건강을 잃게 된다면 그때는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받게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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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향빛이 마지막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곧 어둠을 준비하는 시간.

옥정호에 숨겨진 작은 공원으로 가는 길은 예쁘게 정비가 돼있었다.

잔잔하고 평화롭게 담긴 호수의 물빛과 초겨울 하늘빛이 마침맞게 어울려서, 이곳은 누구에게든 세상에서 가장 편히 쉴 곳처럼 느껴졌다. 우리 달래의 영혼이 이곳에 깃들어 생전의 아픔과 외로움을 떨쳐버리고, 좋았던 기억만 간직해 주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달래야 더 추워지기 전에 엄마가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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