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바다 관광지 도로가에 쭉 늘어선 간이 횟집들이 막 저녁불을 밝히고 손님 맞을 준비로 한창 분주한 모습이다.
생선 손질을 마친 사장은 길쭉한 스티로폼접시에 투명한 생선살을 펼쳐 담고 포장해서 하얀 비닐봉지에 담고 그 위에 상추, 마늘 편, 채 썰은 청양고추, 와사비, 간장, 초장, 나무젓가락 두 개를 얹어서 내게 들려주었다.
현금으로 4만 원을 계산하고 길가에 비스듬히 주차해 둔 차에 올랐다.
차를 돌려 1시간 전에 체크인했던 호텔로 돌아왔다. 조수석에 광어회, 와인 한 병, 작은 화분이 놓여있다.
아담하고 심플한 디자인으로 외관을 꾸민 바닷가의 갤러리형 호텔은 투숙객들이 아직 안 들어왔는지 주차장엔 내 차 외에 한 대의 차량만이 주차돼 있다. 천가방을 사선으로 매고 와인과 회감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팔로 작은 화분을 안고 하이힐 소리를 또각또각 내며 호텔 로비를 지나 2층 방으로 올라왔다. 로비에서 차를 마시던 서 너 명의 손님들이 내 쪽으로 흘깃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뒤로하고.
호텔방은 소박하고 깔끔한 분위기에 스탠드 조명이 은은한 것이 내 맘에 쏙 들었다.
메인 등을 켜지 않고 티테이블에 와인상을 차렸다. 스티로폼접시와 나무젓가락이 맘에 안 들어도 정갈하게 자리를 잡고, 집에서 가져온 펜폴즈 미국산 레드와인과 세 가지 치즈와 와인잔을 세팅했다. 빨리 샤워를 마치고 헐렁한 잠자리 옷을 입고 와인을 땄다.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양쪽 허벅지로 와인병을 잡고 스크루형 와인 따개를 꽂고 신중하게 돌려서 코르크를 뽑아냈다. 직접 와인을 병을 따야 한다면 내 경험으로는 가장 안전하고 수월한 방법이다. 코르크의 향을 '흡--'맡아보고 코르크에서 스크루를 뽑지 않은 채 와인잔옆에 눕혀 놓았다. 와인향은 전에도 맛본 그 신선한 향기가 났다.
와인 테이블 세팅이 끝났다. 아니 안 끝났다.
내 차의 조수석에서 안고 온 포인세티아 작은 화분을 테이블 맞은편에 올려놓았다. 너와 나와 둘이다.
혼자 바닷가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오려고 나서는 길에, 와인을 한 병 챙기고 나서 '테이블에 꽃이 있어야 구색이 맞을 건데'하고 꽃 한 송이를 사러 갔다가 빨갛게 윗 잎색이 선명하고 싱싱한 포인세티아 화분이 예뻐서 그 화분을 데려왔다. 하루 자고 내일 돌아갈 때 다시 우리 집에 데리고 가서 잘 키워 보려고 한다.
혼자서 와인 한 병을 다 마시면 취할 텐데, 반만 마시고 아까 뽑아둔 코르크를 거꾸로 꽂아서 다시 집에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와인을 따랐다. 회를 먹으려면 짝꿍이 화이트와인 아냐? 아무려면 어떤가, 달지 않고 적당히 떫고 묵직한 맛이 입안에 차서 눈을 살짝 감고 음미했다. 광어회도 2인분이다. 먹다 남으면 버리고 가야겠네 하고 두 점씩, 와사비를 듬뿍 넣어 섞어둔 초장에 푹 찍어 입에 넣고 뇸뇸, 쫄깃하고 단맛에 흡족했다.
화려한 연말 장식용으로 쓰이는 빨간 포인세티아 화분이, 오늘 은은한 스탠드 불빛아래선 화사하고 참하게 보였다. 혼술자리의 파트너로 썩 잘 어울린다고 화분에 눈을 맞춰가며 와인병을 다 비워 버렸다.
혼술의 문제점은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아직 기분도 내기 전에 술이 떨어져 버렸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밤안개가 내린 호텔의 정원 곳곳에 뿌연 가로등과 정돈된 나무들이 어둠 속에서 차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겉옷을 걸쳐 입고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왔다. 바깥공기가 차고 상큼했다.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밖에 사람은 안 보인다. 잠깐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혹시 오늘 투숙객이 나 혼자?.
옛날에 본 호러 영화가 막 생각났다.
갑자기 몸이 떨려서 허겁지겁 방으로 돌아왔다.
방문을 꼭 당겨 잠그고 술자리를 깨끗이 정리했다.
무섬증이 가시지 않은 채 잠이 들었었나 본데 다행히 술기운 덕분에 눈 떠보니 아침이다.
창밖은 아직 밝지 않았다.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다. 아침산책을 나갈까? 아니다.
에구!---청승도 가지가지다. 중얼중얼 혼잣말을 내뱉으며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커피만 한잔 가지고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해안도로를 따라 두 시간 정도 드라이브를 했다.
어제보다는 잎이 조금 시들어진 포인세티아화분이 조수석에서 묵묵히 내 곁을 지켰다.
하루 만에 친구가 된 듯, 식구가 된 듯 애틋한 저 화분을 난 오래 키울 자신이 없다.
그동안 포인세티아화분을 성공적으로 살려본 적이 없다. 매번 연말 분위기를 한껏 북돋아주고 자신은 서서히 시들어 잎을 다 떨구고 새잎을 내지 않고 죽었다.
어제부터 나와 동행한 새 포인세티아화분!
너, 나랑 오래오래 같이 살자!
연말 분위기도 낼 겸, 쓸쓸함을 달래 보려고 다녀온 하룻밤 홀로 여행은 별 효과 없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