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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티지 683의 사계(四季)

- 옥정호숫가로 모십니다.

by 화수분

며칠 전 눈이 온 뒤에 얼어붙은 날씨가 빙판이 됐을까 걱정하며 길을 나섰다.

큰 도로는 씽씽 달리는데 문제가 없었고, 운암대교를 건너서 호숫가 동네로 내려서는 램프구간은 눈이 녹질 않아서 긴장을 했다. 코티지 마당에 쌓인 눈과 햇살에 반짝이는 호수의 은빛 물결이 청량하다.

찬기운에 코가 찡해도 한참을 밖에 서서 겨울 호숫가의 운치를 눈에 담고 카메라에 담았다.


고드름!

반가워라. 집집마다 처마 끝에 치렁치렁 달려있던 고드름.

요즘에는 (고드름) 있는 집 사람들만 즐기는 한정판 겨울풍경!

여기, 코티지 썬룸 처마밑에서 입을 헤-벌리고 실컷 찍어뒀다.


오늘 시야에 펼쳐진 설국이 아름답다고 호들갑 떨다가,

"얼어 죽은 참새가 여러 마리다."

카페 사장님 말씀에 헉, 호흡이 멎는다.

그제야 고개를 돌려 먼 숲을 본다.

들짐승 날짐승들의 겨울나기를 떠올리자니 안타까움밖에는 도리가 없다.



이곳에 걸음 한 지가 만 5년이 넘었다.

2018년 5월에 처음 방문을 했었으니까.

섬진강 댐을 막아서 생긴 호수,

'옥정호'가에 내가 한 달에 두 번 방문하는 '코티지 683'이라는 카페가 있다.

너무 넓지 않아서 내 꺼 같고 아담한 울안에 단정하게 손질된 마당,

사철 피고 지는 꽃, 호수를 바라보는 뷰맛집!


음악감상회가 있는 날 여기에 온다.

전에는 30분 운전을 해서 도착했는데 요즘은 한 시간 운전을 해야 한다.

내가 좀 더 멀리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반에 음악감상회가 열린다.

난 첫째, 셋째 주 감상회 회원이다.

둘째, 넷째 주에는 다른 감상회가 운영된다.

회원들은 대부분이 중년의 엄마들이다.

클래식, 재즈, 영화음악, 멋진 영상, 드물게는 예술적 감성이 짙은 영화를 볼 수도 있다.

감상 레퍼토리는 카페 DJ, 사장님께서 엄선해 주신다.

작곡가와 연주자에 관련된 역사적 배경,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 재미도 쏠쏠함.




잔디가 깔린 마당에 지난여름엔 유리로 작은 썬룸을 지어서 마당에 운치를 더했다.

마당가에는 벚나무가 보기 좋은 간격으로 자라서 사철 제 몫을 다 하고 있다.

봄에 피는 벚나무 꽃이야 말할 것도 없고 여름엔 푸른 잎으로, 가을엔 빨간 단풍으로, 겨울엔 벗은 몸으로 코티지카페의 경계를 지키고 묵묵히 서있다.


봄날 밖은 아직 쌀쌀한데 카페에 앉아 벚나무에서 날리는 꽃비를 보는 날 "와!" 하는 탄성이 저절로 카페를 채운다. 음악감상은 뒤로 하고 눈과 입이 커진, 나이 든 엄마들이 일제히 유리창을 향해 두 팔을 벌린다. DJ 남식샘도 웃음으로 멘트를 대신하며 창밖의 꽃비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벚나무를 경계로, 마당 밖 옥정호에 담긴 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면 오가는 손님들의 눈길이 거기 머문다.

저절로 발걸음이 물가를 향하고, 양손으로 카메라 모드를 선택한 휴대폰이 가장 멋진 프레임을 찾아 바삐 움직인다. 이쪽저쪽 엉덩이를 빼거나 허리를 젖힌 엄마들이 신중하게 찍어 올린 사진은 대동소이하다. 그래봐야 모두 멋지다!


호수의 물이 항상 넘실거리는 것은 아니다.

호수에 물이 줄어 바닥이 드러날 때면 세상의 물이 다 마른 듯, 내 목이 타는 듯 안타까움에 울상을 짓게 된다. 여름에 바닥이 드러나면, 호수는 녹색 풀밭이 되고, 웅덩이만큼 고인 물속엔 점점 녹조가 끼고, 금방 짜놓은 유성 물감처럼 녹색은 짙어만 간다. 장마와 태풍이 한바탕 분탕질을 하고 물러가면 호수는 다시 채워지고 다시 맑아진다.



키 크고 야윈 모습으로 도시적 분위기 물씬 나는 안주인께서는 주방 돌보랴, 마당에 꽃 가꾸랴, 카페 안쪽에 소품들 정리하랴, 한가로이 앉지 못하고 우리 시야에서 늘 어느 쪽으로든 바삐 걷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봄맞이 꽃들이 마당에서 뾰족뾰족 올라오면 이리저리 자리를 잡아주고, 회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부족한 것은 새로 심고, 이런 일은 백 퍼센트 안주인의 일이다.


그녀는 마당의 꽃들이 끊이지 않고 피어날 수 있도록 개화시기를 미리 잘 알아서 식재하는 능력이 있다.

감상회원 가운데도 두 분이 정원 가꾸기에 프로급이라 봄정원이 가장 아름다운 시점에 우리를 초대해서 꽃자랑을 해주신다. 그래서 코티지카페까지 세 집의 가드너(?)들끼리는 정원대화가 풍성하고 곁에서 듣는 우리들도 흠뻑 힐링을 누리고 있다.


사실, 잠깐 카페를 창업해 본 나로서는 코티지 카페의 수익구조가 반은 봉사일 거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의 위치도 아니고, 한적한 외곽으로 자연경관을 즐기러 나오는 고객을 대상으로 운영하다 보니, 날씨에 따라 요일에 따라 매출도 들쑥날쑥 할 테고......


여러 해를 꾸준히 찾아와서, 같은 사람들과 음악 듣고 차 마시고 식사하고 어울리다 보니 저절로 운영하는 주인의 입장도 헤아려 보게 된다. 주말에 비가 오면 코티지 매출이 살짝 걱정되고, 우리들끼리 감상회 끝나고 식사를 하다가도 단체손님이 들어오면 활짝 반가운 마음이 들고 그런다. 대화 중에 한 번씩 회원들이 걱정을 하면 두 분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 그다지 고단한 줄 모른다고 하시니 우리들의 마음이 한결 가뿐해진다.


방송국에서 음악프로그램 책임자로 은퇴하신 남식사장님은, 은퇴 전부터 이 호숫가 카페부지에 애정을 바친 세월이 이십여 년이 넘는다고 했다.


지금은 한아름이나 되는 벚나무를 직접 심고 키운 세월.

호숫가에 홀로 앉아서 강태공낚시를 드리웠던 세월.

천정을 높게 오디오의 공명이 가장 알맞도록 카페를 짓고 마당을 가꾼 세월.

그 세월이 익고 익어서 지금 우리들이 자꾸 찾아오고 싶은 코티지카페의 아늑함이 완성돼 가는 것이겠지.

지금 코티지를 애정하는 사람 모두, 앞으로도 오래도록 코티지의 사계절을 함께 바라보고 공감하면서, 건강하게 노후를 보냈으면 좋겠다. 지금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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