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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으로 해맞이? 달맞이?

- 우리 눈에 안 보인 것뿐이야.

by 화수분

"1일 마이산?"

"콜"

2023.12.31 카톡이 한차례 씩 오가고 일사천리로 시간대별 계획표가 올라온다.

4인 1조가 차량 한 대로 움직일 판이 짜였다.


5시 15분에 픽업이라니 서둘러 집을 나섰다.

겨울산행 채비를 만단히하고 한라봉 네 알을 배낭에 담아 둘러맸다.

새벽 가로등밑을 걷는 사람은 나뿐이네.


우정이의 남사친 박샘이 운전을 맡았다.

박샘은 초면인데 운전봉사를 해 주어서 아주 고마웠다.

나들이할 때 운전걱정을 덜면 얼마나 가뿐한지 모른다.

식사 때 반주 한잔의 자유가 썩 고소하거든.


새벽기상이 걱정돼서 밤잠을 설쳤다고 투덜거리다가 깜깜한 마이산에 도착했다.

오늘보다 훨씬 추웠던 작년 1월 말에도 이곳에서 일출을 보았었는데......

그때는 우정이, 조샘, 나까지 셋이 왔었고 오늘은 거기에 박샘까지 넷이 됐다.


새벽 6시에 금당사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새벽달이 포근한 달무리에 쌓여서 우리들 머리 위를 비추며 동행했다.

헤드랜턴으로 발밑을 밝히고 천천히 40분을 올라 나봉암(527M)에 도착했다.

큰 바위 위에 정자가 있고 거기서 일출을 기다린다.

자갈돌이 퇴적된 거대바위 나봉암을 오를 땐 살얼음이 미끄러워 네 발을 써야 했다.


아주 추운 날씨는 아닌데 영하 2도에 바람이 불어서 목도리, 장갑, 핫팩으로 무장하고도 발을 동동거렸다.

한 시간이나 버티고 기다려도 뿌연 운무가 걷히지 않고 맞은편 까만 봉우리만 두어 번 보일락 말락.

우리들처럼 일출을 보려고 새벽산행에 나선 사람들이 좁은 정자에서 옹기종기 그곳만 바라본다.


"해가 여태 안 떴을 리가 없어."

"구름 때문에 아직 안 보이는 것뿐이야."

우리 일행은 솜사탕 같은 구름에 대고 천연덕스럽게 새해 소망을 낱낱이 빌었다.


주섬주섬 커피, 간식, 장비를 챙기고 아이젠을 한 짝씩 나누어 차고 또 네 발을 써서 바위를 내려왔다.

주머니 속 핫팩을 자꾸 주물러서 몸에 온기를 채웠다.

완만한 오솔길을 오르락내리락 걷다가 산중턱에 '둥싯'걸린 해를 보니 웃음이 났다.

올라갈 때보다 먼 길을 돌아 마이산 탑사 쪽으로 내려왔다.


1월 1일 오전 10시 반에 밥을 주는 식당을 우정이가 알아놨다.

진안흑돼지 오겹살에 막걸리를 한잔씩 곁들였다.

귀촌 청년이 운영하는 빈티지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밤잠설치고, 새벽 산행에, 추운 데서 벌벌 떨다가, 배부르게 먹고, 따뜻한 카페에 앉았더니 졸렸다.

덩치 큰 카페강아지와 눈을 마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저절로 눈이 감겼다.

눈감은 김에 잠시 깊은 생각을 했다.


결론적으로!

진안 마이산 나봉암에서 장엄한 일출을 못 봤어도 난 하나도 아쉽지가 않다.


난 아직 태양을 맞으며 다짐하고픈 향상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기대에 못 미치는 일을 만나도 절대 낙망하지 않을 항상심을 추구하는 바가 있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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