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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만에 나도 그녀처럼

- 예술회관 로비에 울려 퍼진 "딱구궁다 궁다궁"

by 화수분

"딱구궁다 궁다궁, 딱구궁다 궁다궁"

"딱구궁다 궁다궁, 딱구궁다 궁다궁"


아주 날렵해 뵈는 젊은 여인이 오방색 의상을 갖춰 입고,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뒷걸음으로 동그라미를 그린다. 장구를 매고 발끝으로 야냥개를 부려가며, 갸웃거리는 고깔 속에 표정을 감추고 혼자 연습에 여념이 없다. 따글따글 설장구소리에 귀 팔리고 눈 팔 린 나는 풍뎅이처럼 목이 돌아 하마터면 출입문에 부딪칠뻔했다.


십 년 전, 그날 난 한국무용 '동초수건춤'으로 국악대회에 참가하려고, 남도의 예술회관에 들어서다가 그 장구소리를 들었던 거다. 아마 그녀도 그 대회에 경연자로 참가하면서 마지막연습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모습이 내 기억 속에 사진처럼 찍혔다. 참 부럽다는 생각,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분주하게 대기실을 찾아 뛰었다.



사실 난 대회에 나갈 연조도 실력도 못되면서 무대경험 삼아 한번 나가보라는 한국무용 강선생님의 권유로 바짝 연습을 하고 나온 쌩둥이였다. 춤 배운 지 육 개월 만에 그때 돈 백오십만 원어치 제비나비 같은 한복의상을 해 입고 대회에 나갔다. 치마말기 아래 번호표를 달고 무대에 섰더니 머리 위에서 쏘는 조명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정신 바짝 차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세를 바루고 한걸음 한걸음 굿거리장단에 발을 맞춰 도도하게 걸어 나갔다. 걸음은 출렁이지 않게, 턱은 살짝 당기고, 미소는 있는 듯 없는 듯, 시선이 중요하다, 그윽하게 멀리 응시한다. 몸을 세우되 버티지 않고 다소곳이 앉으며 반절로 인사를 올리고 일어서며 "더덩--척" 한 호흡에 등을 활짝 세웠다가 어깨를 툭, 떨구며 이제 너울을 탄다. 자연스럽게 오른팔을 들고 손끝에 시선을 두고, 왼쪽 손은 치맛자락을 슬며시 들어 버선발을 보여준다. 발끝을 한껏 세워서 잠깐 멈췄다가 스르르 미끄러지며 무대 앞쪽으로 한 장단을 내닫는다. 양팔을 항아리 안듯 벌렸다가 다소곳이 가슴 아래 모은다. 양팔을 좌우로 들 때면 객석을 바라보고 미소를 한번 짓는다. 이를 보이지 말 것. 다시 몸을 외로 돌리며 무릎을 폈다가 살짝 앉음새로 포물선을 크게 그리며 잰걸음으로 아장아장아장 "땡땡땡" 심사위원이 벨을 울렸다.


보여주기는 끝났다.

공손히 느리게 두 손 모으고 허리 숙여 절을 하고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무대휘장 뒤에서 홱돌아 후련하게 숨을 내뿜었다. 대기실 짐보따리한테 달려가서 휘휘 벗은 의상을 아무렇게나 구겨 넣고 쪽진 머리를 풀고 모자를 눌러쓰고 보라색 린넨원피스를 입었다. 난 경험 삼아 무대에 섰고 경험이 끝났으니 남들은 어쩌는지 객석으로 가서 구경만 하면 된다. 어설픈 신인부 경연이 끝나고 아무래도 호흡이 고른 일반부 참가자들의 춤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집에 가려고 동행했던 친구를 찾았다. 무대뒤 대기실까지 둘러봐도 안 보이던 친구가 복도 끝에서 헐레벌떡 눈을 부릅뜨고 오른팔을 들어 검지손가락으로 나를 찌를 듯이 달려온다.


"어어 빨리 와바, 큰일 났어"

내 손목을 잡아끌고 되돌아 뛰어가서 로비에 붙은 심사결과지를 가리켰다.

이런? 와우! 이상한데?

내가 신인부 '대상'이라고 쓰여있다.


대기실로 돌아왔다. 웅성거린다. 경연이 끝났어도 참가자들 아무도 의상을 벗지 않았다.

난 처음 온 자리라 훌훌 벗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 대상을 받아야 한다니 난감했다.

의상을 다시 입기 싫었다. 이미 땀에 젖고 꼬깃거리게 포개놓은 생모시옷은 다시 입을 수 없다.

뾰족구두를 벗고 버선을 신었다. 원피스에 버선발로 상을 받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상 받을 준비를 하며 의상을 입은 채 대기하고 있던 여덟 명이 내게 눈을 흘겼다.

듣보잡것이 대상이라니, 미안했다.


"어디서 왔냐, 선생이 누구냐, 몇 년을 췄냐, 음악은 어디서 구했냐"

다양하게 취조를 당하다가 냅다 도망쳐 나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친구가 말했다.

"절은 참 잘했어. 그래서 대상을 줬나?"


이십만 원 상금을 탔다.

강선생님이랑, 수행처럼 긴 세월 춤을 추는 고급반 언니들이랑 식사를 했다.

그 시절 나는 건축업에 재미를 갖고 현장 운영을 할 때였고, 나머지 시간은 공들여 춤을 배웠다.

국악대회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병이던 목디스크가 악화돼 수술을 받고 재활치료를 다니면서 춤을 쉬었다. 그 뒤로는 와인 클라스, 음악 감상회, 인문학 강의실로 서식지를 넓혀가면서 시간의 빈틈이 메꿔졌다.

춤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2023년 여름날.

"딱구궁다 궁다궁, 딱구궁다 궁다궁"

"딱구궁다 궁다궁, 딱구궁다 궁다궁"

난 무대에서 장구를 매고 고깔을 쓰고 삼색띠를 둘러 묶고 발끝을 모아 딛으며 뒷걸음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다.


내 기억 속에 판화처럼 새겨진 십 년 전 그녀의 모습으로 나도 무대에 섰다.

어설프다. 땀을 흘리고 상은 못 탔어도 그걸 당연하게 여기면서 내 실력을 다듬어 간다.

늘 노력한다. 장구도 잘 치고 춤도 잘 춰야 설장구를 멋지게 완성할 수 있다.


십 년 전, 내가 그녀를 보면서 목표를 세웠던 것도 아닌데 우연히도 난 장구와 함께 살고 있다.

십 년 전, 그때 왜 그렇게 설장구소리에 눈과 귀가 번쩍 뜨였는지 요즘에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까다롭기 한이 없는 선생님에게서 떠나지 않고 긴 시간 공력을 들이는 지금의 나를 보면서.


장구선생님은 남자분이다. 나보다 십 년이나 젊고 문화인류학 박사논문까지 쓰면서 쉼 없이 연구하는 학구파 선생님이다. 이 남자 선생님이 무대에서 설장구를 칠 때는 여인으로 빙의가 되는지 야냥개가 기생 뺨치게 나긋하다. 난 요즘 그 몸짓 발짓을 따라 익히며 수련 중이다. 수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수행이라고 할까?

그러고 보니 장구도 한국무용 강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했다. 함께 시작했던 장구반 학생들은 모두 중판매고 나 혼자 남아서 장구수련을 이어가고 있다.



십 년 전 젊었던 그녀는 명인이 되어있을까? 예인의 길을 떠났을까? 늘 궁금하다.

아마도 나의 유전자 속에 풍류를 선호하는 DNA가 많은지 그쪽으로 끌림이 짙은 편이다.

이번 생이야 어쩔 수 없이 수련에 그칠지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부디 멋진 몸을 받아서 춤, 장구명인이 되고 싶다. 예인이라면 모름지기 가무악에, 글문에, 그림에, 갖춰야 할 소양이 만만치가 않아서 두뇌명석함도 필수조건이긴 한데 너무 욕심껏 다음생을 빌다가 꽝 나오면 비참한데.


개성의 황진이나, 부안기생 매창이나, 절창의 시조작가로도 인정받는 조선의 명기(名妓)들이 나는 어째서 부러울까나? 어떤 캐주얼한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하게 될 때 "전생에 황진이였거나, 다음생엔 조선기생이 되고 싶은 아무개입니다."라고 나를 소개하면 키득키득 비웃음이 눈에 보여도 난 꿋꿋하다.

인생 뭐 있나? 서화담이나 그의 친구 유생들하고 유유자적 노닐다가 글문이나 "짜짜짜짜"읊다보면 나비꿈 한생 또 보내는 거지. 다음생은 꼭 예뻐야 되는데, 하!

사진/드라마'해어화' '황진이', 제목부분 사진/2인 설장구 캡쳐(유투브)


*설장구 - 전라도 우도 농악의 판굿 중 장구잽이가 놀이판 가운데 혼자 나와 장구를 치며 여러 가락과 춤솜씨를 보여주는 놀이.


*야냥개 - 상상 밖의 말이나 행동 따위로 거드름을 피우며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일.

옷차림 따위를 이상하게 차려입고 오두방정을 떨며 멋을 내는 모양 - 네이버 국어사전

(ex / 시골 할머니가 재롱부리는 손녀를 보고 "아이고 이뻐라, 어찌 저리도 야냥개를 떠는고")


*중판매다 - 하던 일을 도중에 그만두다 - 네이버 국어사전

(ex /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하며 "내가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학교를 중판매고 공장으로 돈 벌러 가야만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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