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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견 봄이

- 스님! 스님!

by 화수분

다급하고 애타는 부름에 대답이 없다.

처음 가 본 절마당에 엉거주춤 서서 난 스님을 부르고 또 불렀다.


진도견 백구는 덩치가 나만하고 힘이 얼마나 센지 내가 금방 자빠질 듯 위태위태하다.

개가 무서워서 내 맘대로 힘껏 밀치거나 도망치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백구에게 붙들려있다.

백구는 내 오른쪽 다리에 선채로 매달려 '붕가붕가'중이다.


반쪽짜리 햇살이 절마당을 지나가고 요사채는 2층만큼 높은 축대 위에 앉아있다.

밥 짓는 연기만 뭉게뭉게 피어나는 굴뚝을 향해서 난 소리 높여 울부짖듯 외쳤다.


"스님-----!"


철이른 털모자를 눌러쓴 스님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일갈하셨다.


"안 물어요!!!"


"그게 아니라----" 난 난감해서

"그게 아니고요----"라고 외쳤다.


스님은 평화롭기가 한량이 없는 목소리로 백구를 불렀다.


"봄아!!!"


털이 하얗고, 장사 같은 두 발로 나를 붙잡고 안 놓아주는 남자견 이름이 '봄'이라고?

봄이는 지아빠가 수차례 불러대고나서야 아쉽게 나를 놓아주고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나를 계속 쳐다보면서 요사채로 천천히 올라갔다.





아까 30분 전쯤 내가 처음 절에 들어왔을 때, 저 백구는 다른 손님 몇 분과 함께 있다가 손님들이 차를 타고 떠나고 나서 나에게 왔다. 거부감 없이 사진도 찍고 말도 걸고 그러다가 얘가 내 다리를 붙잡으면서부터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친구도 없이 깊은 산속 절간에서 스님이랑 단둘이(?)살고 있는 백구가 안돼 보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과감한 관심표현은 절대사절이야! 아무리 내가 애견인이라 해도 이건 아니다!


봄이가 저 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동안, 난 살금살금 걸음을 옮겨서 겨우 절마당을 나와서 차를 세워둔 공터까지 뛰어갔다. 차에 올라앉아 한숨을 내쉬고는 불쾌한 기분을 털어내지 못한 채 굽이굽이 산길을 내려와 마을을 만난 후에야 차를 세웠다.


초록색 긴 스카프를 들고 차에서 내려 검은색 바지를 앞뒤로 힘껏 내리치며 하얀 개털을 털어냈다.

봉서사 가는 길이 그렇게 깊은 줄도 모르고 해 질 녘에 혼자 그 길로 들어선 나의 용심을 핀잔하며, 저수지에 비친 황금색 석양빛을 보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고 안전하게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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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이사 온 이 동네는 시야에 들어오는 산들이 가까운 데서부터 멀리까지 켜켜로 둘러쳐져 있다.

이사 온 그날부터 가까운 산들이 어디에 진입로가 있는지 궁금해서 볼 때마다 궁리를 했다.

외출에서 일찍 돌아온 날, 아직 남아있는 햇살이 아까워서 저기 보이는 산기슭 동네를 향해 천천히 운전해 보았다. 동네 앞 작은 공원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어르신에게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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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앞뒤로 대봉시를 따서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할아버지.

일단, 파신다고 하니 내가 좋아하는 대봉시를 5킬로 사고, 동네 앞산에 대해 물었다.

산봉우리들의 이름과 어디에 이정표가 있는지, 몇 시간 걸리는지 소상히 가르쳐주시고는

"차를 타고 쭉- 올라가믄 절마당까지 차가 딱 들어가지." 이러신다.

그래서 차를 타고 산속으로 들어갔다가 절마당에서 백구한테 붙잡힌 거다.


봉서사로 들어가는 길엔 군인들의 유격훈련장이 있던 곳인지 군데군데 시설물들이 흉측하게 남아있었다.

아늑한 산자락 분위기와는 괴리가 크고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버려진 거라면 철거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절은 정상능선 바로아래 깊고 높은 곳에 자리 잡았고, 입구 좌측에는 '진묵대사' 부도탑과 절에서 준비해 둔 납골시설이 저무는 햇살을 맞아 묘하게 빛을 휘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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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갖고 온 대봉시를 채반에 하나하나 펴 앉혀서 다용도실 에어컨 실외기 위에 올려뒀다.

하나씩 말랑하게 익을 때마다 '호로록'하고 발라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다시 기분이 나빠졌다.

오른쪽 허벅지에 남자견 봄이의 발톱자국이 다섯 개나 그어져 있다.

내 기억 속에 봉서사는 '남자견 봄이의 발톱자국'으로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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