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런두런 Dec 26. 2023

시와 마음

벌거숭이

옷을 거의 입지 않았을 때의 기분은 여러 가지이다.

실오라기 하나 거치지 않아서 목욕탕이 아니라면 부끄럽기 그지없기도 하고,

한 두 개의 옷으로 얇게 입었다면 홀가분한 복장이 참 편안하기도 하다.

부드러운 옷감이 맨살에 닿는 기분은 아기의 살결을 만지는 느낌이고,

헐렁한 옷차림은 단정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자유와 여유를 주어 마음의 긴장까지도 풀어준다.


주저리 옷 벗은 이야기를 꺼낸 건 내가 시를 대할 때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다른 글보다 특히 시를 대할 때, 나의 마음은 마치 속옷만 겨우 입고 만나는 기분이다.

마음의 상처도 숨길 수 없고 몸의 군살도 감출 수 없이, 하얀 속살 그대로 대면해야만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다.


부끄럽고 가리고 싶은 나의 부족함들이 많지만 마치 벌거숭이처럼 온 마음을 솔직히 대면해야 시와 마음의 대화가 시작된다.


만약 내가 두꺼운 외투 같은 마음이거나, 뽐내는 듯한 정장차림 마음으로 시를 만난다면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고 지나가 버리는 것 같다. 그렇게 벌거벗은 마음으로 시를 만날 때, 시어(詩語) 개가 총총총 나의 마음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편안한 옷차림으로 밤새 이야기 꽃을 피우는 파자마 파티처럼 시와의 대화가 이어진다.

얼마나 편안하고, 사랑스럽고, 진솔한 대화가 오가는지!

시는 나의 마음에 참 좋은 솔직한 친구이다.


어떤 글은 커피를 마셔가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집중을 해야 만날 수 있다.

또 다른 글은 후루룩 빠르게 읽고 파악하고 요점을 추려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시는 언제나 집중력이나 속도보다 진실한 마음을 나에게 요구한다.

마치 옷을 벗은 것 같은 솔직한 마음을 준비하라고 이야기한다.


성탄 연휴 동안 하얗게 내린 눈을 바라보니, 솔직한 마음을 준비해서 시를 만나러 가고 싶어 진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의 설계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