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거의 입지 않았을 때의 기분은 여러 가지이다.
실오라기 하나 거치지 않아서 목욕탕이 아니라면 부끄럽기 그지없기도 하고,
한 두 개의 옷으로 얇게 입었다면 홀가분한 복장이 참 편안하기도 하다.
부드러운 옷감이 맨살에 닿는 기분은 아기의 살결을 만지는 느낌이고,
헐렁한 옷차림은 단정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자유와 여유를 주어 마음의 긴장까지도 풀어준다.
주저리 옷 벗은 이야기를 꺼낸 건 내가 시를 대할 때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다른 글보다 특히 시를 대할 때, 나의 마음은 마치 속옷만 겨우 입고 만나는 기분이다.
마음의 상처도 숨길 수 없고 몸의 군살도 감출 수 없이, 하얀 속살 그대로 대면해야만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다.
부끄럽고 가리고 싶은 나의 부족함들이 많지만 마치 벌거숭이처럼 온 마음을 솔직히 대면해야 시와 마음의 대화가 시작된다.
만약 내가 두꺼운 외투 같은 마음이거나, 뽐내는 듯한 정장차림 마음으로 시를 만난다면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고 지나가 버리는 것 같다. 그렇게 벌거벗은 마음으로 시를 만날 때, 시어(詩語) 몇 개가 총총총 나의 마음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편안한 옷차림으로 밤새 이야기 꽃을 피우는 파자마 파티처럼 시와의 대화가 이어진다.
얼마나 편안하고, 사랑스럽고, 진솔한 대화가 오가는지!
시는 나의 마음에 참 좋은 솔직한 친구이다.
어떤 글은 커피를 마셔가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집중을 해야 만날 수 있다.
또 다른 글은 후루룩 빠르게 읽고 파악하고 요점을 추려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시는 언제나 집중력이나 속도보다 진실한 마음을 나에게 요구한다.
마치 옷을 벗은 것 같은 솔직한 마음을 준비하라고 이야기한다.
성탄 연휴 동안 하얗게 내린 눈을 바라보니, 솔직한 마음을 준비해서 시를 만나러 가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