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떠도는 유배객의 혼(魂)

소이연(所以然), 그래서 그렇게 된 까닭

by 박필우입니다

▲ 남해 금산에서 바라본 상주바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의 일이다.

남해군에 전국 유일 ‘유배문학관’이 개관했다.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그곳 초대 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해에는 어떤 연고도 없었던 나였지만, 당시에 10여 년 동안 무려 30번 가까이 다녀온 터라 인터넷을 통해 그곳 문화해설사들과 오랜 인연을 맺고 있었던 것이 주효했다. 필자를 일러 남해군민보다 남해를 더 많이 알고, 더 사랑한다는 무지막지한 칭찬이 일을 쳤던 것이다.


전화 내용인즉슨 유배문학관에서 유배객과 관련해 책을 발간하고자 하는데 스토리텔링 작업이 가능하냐며 의사를 타진했다. 그 순간 내 심장에 북소리가 울렸고, 설렘에 얼굴은 미리 달아올랐다. 그러나 시간이 촉박하였다. 45일 만에 11꼭지를 써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때는 2010년 5월 하순경 대프리카의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욕심은 재빠르게 손익을 판단한다. 일에 대한 의욕이 한여름 열기를 잠재웠다. 무엇보다 원고료 욕심이 컸다. 무조건 OK! 다. 그리고 덤이 있다. 우리 역사에 있어 유배객이 주는 슬픈 매력, 절대고독 속에서 결코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를 이겨낸 승리의 약자에 대해 확실하게 공부할 수 있는 멋진 기회였다.


심장을 두 근반 세 근반 뛰게 하는 일이 하나 더 있었다. 파주출판단지 ‘서해문집’에서 그동안 문화재와 역사의 현장을 찾아다녔던 글 중 불교 문화재만 모아 책을 내기 위해 편집 중이란 사실이다. 난생처음 글을 써서 계약금을 받는 일이 동시에 두 건이 생겼다.


유배문학관과 계약이 완료되자 마음이 급해졌다. 그런데 아뿔싸! 자료를 모으는 데만 보름 이상이 걸렸다. 광휘의 언어가 허공에 부유물처럼 떠다녔지만, 문제는 글쓰기 방향이 잡히지 않는다는 거다. 입이 바싹 타들어가는 심정이 이런 거였다. 오만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상상이 날개를 달고 별에 닿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불면으로 밤을 지새운 너덜너덜해진 영혼만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떤 분야에 일가를 이루려면 십 년은 열정을 다해야 한다는데, 그놈 앞선 욕심이 화를 부르는 듯하였다. 실력도 재능도 없이 의욕뿐인, 화려한 입담에 도금을 순금이라 믿게 만든 내 잘못이다. 빛바랜 개살구의 장구채 놀 듯 현란한 혓바닥 놀림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그렇다고 나의 첫 실험무대가 될 유배객 스토리텔링은 이렇게 허공의 메아리로 끝낼 수 없었다. 믿고 일을 던져준 이들에게 실망을 안겨 드린다는 것이 용서되지 않았다. 시간은 정직하게 흘렀다. 자료만 뒤적였을 뿐 일주일 동안 한 줄도 쓸 수 없었고, 날짜만 갈아먹었다. 어느 순간 돌아서서 보았다. 그동안 고뇌가 오로지 헛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위인을 잊게 만들고 떠올리게도 한다. 일단 자판을 두드렸다. 반 백수가 절박한 현실에 노예처럼 내제화된 복종을 미덕이라 여기면서 고매한 문학 작업이라 착각하며 가다듬었다.

고려 8대왕 현종은 워낙 선명한 족적을 남긴 터라 다소 풀어가기 쉬웠다. 백사 이항복 역시 그럭저럭 넘겼다. 그리고 남해도에 유배되어 남해 방언과 풍속을 정리해 ‘남해문견록’을 쓴 후송 류의양도 약식 소설처럼 작업해 탈고해 두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눈앞에 철옹성이 가로막혀 있는 듯하였다. 당대 석학과 문장가들, 억울하기 짝이 없는 사연을 품은 선현들에게 허접한 후손의 시선으로 다가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따라서 다산 정약용 선생과 면암 최익현 선생의 경우 감히 잣대를 댈 수 없어 치적과 행적을 기록하는 것으로 만족하자고 성급한 결론을 내린 후다.


그때부터였다. 나머지 인물들이 목을 옥죄었다. 도무지 진도를 낼 수 없었다. 잠에 들어도 잠들 수 없는 밤이 이어지고, 부담감에 짓눌리며 결국 꿈까지 꾸었다. 그때부터 메모지를 머리맡에 두기 시작하였다. 역수면 중에 꿈꾸면서 만들어낸 영상이 백지가 되기 전에 메모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상상이 날개를 달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메모지를 보면 무슨 글인지 알 수 없을 때도 많지만, 일부분 생각났다. 유레카라고 외치고 싶었다. 어떻게 평가가 되던, 몇몇 유배객은 꿈을 통해 과거로 들어가 유배객과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무지막지한 상상이 궁색한 앞길에 만용을 불어 넣었던 것이다.


남해 유배문학관 내 소재 이이명



꿈을 통해 조선시대 백성을 버리고 도망친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분조(分朝)를 책임지고 임진왜란이라는 태풍에 맞서 촛불을 지켜낸 광해군을 만났다. 영원히 폭군으로 기록된 사연을, 현대인이 품은 의문을 토대로 현대인 대표선수가 되어 꿈을 통해 광해군과 맞장을 떴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로 찾아가는 기염을 통했고, 비까지 내리게 하면서 절대자 흉내를 냈다. 조광조의 문인 자암 김구, ‘동창이 밝았느냐’로 익숙한 약천 남구만, 한글을 사랑해 ‘구운몽’ ‘사씨남정기’를 지은 서포 김만중, 김만중의 사위이자 숙종 대 사대신 중 하나인 소재 이이명도 아이로 변신해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가 그들과 대화하면서 어쭙잖은 문장으로 역사를 농락했다. 엉덩이에 물집이 훈장처럼 생겼지만 말이다.


그렇게 해서 겨우 원고를 기한에 마감할 수 있었고, 이어서 2011년 12월 25일 서해문집 ‘나한전 문살에 넋을 놓다’와 동시에 ‘유배지에서 유배객을 만나다’가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말이다. 급하게 먹은 음식은 탈이 나게 마련이다. 유배객 책을 펼쳤다. 얼굴이 붉어졌다. 비문이 더러 보였고, 부사의 남발과 억지로 끼워 넣은 듯한 동사, 어색하기 짝이 없는 형용사가 나를 부끄럽게 했다.


시간이 역류하지 않은 이상 압축된 세월은 망각의 명약을 던지고 배시시 미소 짓는다. 나를 위함이었다. 정신승리법이 통했다. 그렇다고 적어도 더는 집착에 빠져 어리석은 짓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살짝 후회스럽단 생각도 들지만, 원고청탁을 정중하게 물리친 것도 부족함을 깨닫고, 탐닉의 감미로움을 단칼에 물리친 어쭙잖은 양심이 발동했다.


어느 일본 작가의 말을 인용한다. ‘죄의 중압감에 허덕일 틈이 있으면 차라리 또 하나의 죄를 더하라’ (?) 뭐 이런 양심 없는 행동을 부추길까 했지만, 무기력이란 지탱할 수 없는 철갑을 벗겨내란 뜻이었다. 매력덩어리 작가의 일갈이 동기부여에 당위성을 더했다.


강진 다산초당


죄를 하나 더하듯 12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초기 원고를 꺼낸다. 책에 붉은 글씨로 상처를 내듯 밑줄 친 문장을 수정한다. 그동안 나를 질타했던 오류와 비문은 바로잡고, 어색한 문장을 새로이 다듬는다. 그러자 완벽하지 않지만, 그동안 작가의 비탄 소리에 고개를 들지 못하던 유배객들이 새로이 숨을 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원고지 늘리려 헛된 문단은 과감하게 날린다. 유배객들이 가벼워졌다며 박수치는 착각에 빠진다.




재차 그들을 불러내 못다 한 말과 업적, 그리고 절대고속 속에서, 애가 끊어지는 심정을 이겨내면서 탄생한 주옥같은 작품과 삶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또한 서릿발 같은 애국충정, 매일 죽음의 그림자에서 속을 끓여야 했던 유배객들의 심정을 다할 순 없으나 내면을 들춰보고 사연에 심취해 보고자 한다.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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