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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필우입니다 Aug 23. 2023

4000년 침묵, 미케네 유적을 찾아

유럽의 관문- 미케네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에게해와 코린트만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미케네 유적은 조금이라도 그리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찾는 단골 탐방지역이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처럼 화려하거나 웅장한 모습을 상상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에 만들어진 역사와 신화가 버무려진 현장이라고 생각하면 대번에 가슴이 뛴다. 


유적 중앙에 우뚝 솟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시원한 눈맛이 압권이다. 넓게 펼쳐있는 들판은 적의 침략을 감시하기에 알맞은 지형이며, 천혜의 요새다. 궁전 왼쪽은 프로피티스 일리아스이고 오른쪽은 사라산이다. 이 지형 중간에는 깊은 계곡으로 형성되어 함부로 건널 수 없었다. 자연조건을 활용한 왕궁으로 천년 왕국을 꿈꿨다. 




혹자들이 유럽의 관문이라 부르는 미케네 궁 입구에 머리 부분이 사라지고 없는 사자 두 마리가 드나드는 사람을 검열하고 있다. 사자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수혈묘의 흔적이 나타난다. 독일인 슐리만이 이곳을 발견하면서 전설의 아가멤논이 지배하던 미케네라고 확신했다. 왕가 무덤군으로 왕과 왕비, 그 자녀들 유해와 수많은 부장품이 슐리만을 흥분시켰다. 유해는 황금옷과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금은으로 만든 용기들을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환관, 보석 등 호화로운 출토품들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집트에서 처음 유행했던 전차 조각 부조, 당대 ‘도시의 약탈자’로 불리던 아가멤논 마스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황금마스크까지 출토되어 사람들을 흥분시켰던 것이다. 


궁전위로 올라갈수록 주변이 훤히 들어난다. 주위를 둘러봐도 이리저리 쌓여 있는 돌의 부재들, 어렴풋이 짐작만할 뿐인 상상력 한계는 마냥 화려했던 당시 복원도에 의존해 고개만 끄덕였다. 호메로스가 황금이 흘러넘치는 곳이라고 했던 미케네는 지금 황금 대신 하층민과 노예의 채찍이 만들어 낸 크고 작은 돌들만 가득했다. 


필자가 이곳에 발을 디딘 것이 2015년이다. 당시만 해도 출처와 용도를 알 수 없는 흔적들이 마치 버려진 듯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한쪽에서는 발굴과 복원작업이 간간히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인터넷에 정보를 검색하다가 폐허가 된 돌무더기였던 당시와는 무척 달라 놀랐다. 아가멤논의 무덤 복원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관문이라 부르는 미케네 궁 입구에 머리 부분이 사라지고 없는 사자 두 마리




정상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현재에는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멀리 북쪽으로는 고린트만이 보였을 것이고, 동남쪽으로 에게해가 호전적 정복자들을 부추겼을 것이다. 중앙궁전 가운데 화로를 둔 장방형의 방(메가론)을 두고, 동쪽으로 열주 형식의 흔적들이 죽순처럼 솟아 몇 천 년의 세월의 격차를 두고 서 있다.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정부와 짜고 전장에서 돌아온 남편 아가멤논을 살해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하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외동딸까지 희생시킨 인간의 말로로서는 당연한지도 모른다. 



미케네유적지 우물 계단




4,000년 전에 만들어진 우물을 찾았다. 사면을 큰 돌로 쌓았고, 입구 바깥 태양빛을 빌어서 본 모습을 보자 미로에 빨려드는 음습함이 느껴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르내렸을까. 돌계단이 반질반질하다. 이리저리 꺾인 석굴을 탐사하는 느낌이다. 힘겹게 물을 지고 날랐던 전쟁포로, 혹은 노예들의 발길이 무수히 닿았던 흔적이다. 대략 40여m 들어가자 우물바닥이 드러났다. 18m 깊이의 우물이었다곤 하지만, 세월과 함께 말라버리고, 맨바닥을 속살로 드러내고 있다. 궁전 터의 정상에 어디서 어떻게 물이 스며들어 우물이 될 수 있었을까. 자연과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낸 작품이자 유적에 고개만 흔든다. 둘레 대략 1km 미케네 유적은 다음을 기약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가까이 있는 코린트 유적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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