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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필우입니다 Nov 11. 2024

《맹자》와 《회남자》

성선설과 집단지성, 그리고 작금의 대한민국



     

『맹자』는 공자의 『논어』와 함께 동양을 대표하는 고전이다. 공자는 개인에게 도덕적 수행을 통해 스스로 군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자 왈, 맹자 왈 하던 아버지를 둔 덕분에 적잖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의지와는 다르게 공자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살았다.     


작은 지방도시 한학자로 가정의 의무는 등한시 한 채,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며 살았던 아버지였다. 따라서 가식적인 아버지께 의도적으로 반항하며 자란 필자로선 쉬이 다가가기 싫은 주제가 공자와 맹자, 그리고 인간은 선천적으로 악하다는 순자였다. 


맹자


그런데 놀랐다. 내가 가진 책 중에 연암 선생이나 다산 선생의 자료보다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와 관련된 책이 더 많다는 사실이었다. 가늠컨대 이는 ‘맹자’가 우리네 삶에 깊숙하게 자리한 이유도 있으려니와 아버지 유전자가 나도 모르게 정신을 타고 흐르고 있음을 알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장자와 사마천이 훨씬 편하게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공자와 맹자가 그만큼 깊이 있다는 뜻도 되겠지만, 내용보다 소유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였다.     




『맹자』는 인간의 가능성을 고민하고 토론한 책으로서 맹자 자신이 주도하에 그 제자들과 함께 쓰여 졌다. 핵심은 ‘성선설’로 귀결 되며, 정치론에 있어 ‘왕도(王道)’를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이는 곧 공자의 덕치사상을 오롯이 계승한 것이라고 하였다. 사단(四端)의 보편적 감성을 지닌 인간의 ‘성선설’에 의문을 가지지만, 후천적 교육에 의해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순자의 ‘성악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이해하면서 짧게나마 동양고전의 귀틀을 잡을 수 있었다.      


맹자가 살았던 전국시대 중기 대부분 제후들은 부국강병을 국가 통치 기본으로 삼았다. 그러나 맹자는 부국강병이란, 국가 하위조직의 분열을 초래하면서, 개개인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을 조장한다고 보았다. 물리적인 힘에 의해 유지되는 정치형태를 패도라고 정의 하면서 인(仁)과 의(義)를 가치 중심으로 인정의 정치로써 왕도정치를 구현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백성을 죽이는 그릇된 정치에 저항하는 것이 정당하며, 민(民)을 정치의 근본으로 끌어올리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사상과 질서가 아닐 수 없다. 물리적 힘의 논리가 아닌, 국가 하위조직 스스로 인의로써 사회 구성원의 건전한 관계가 형성되면 나라가 번영한다고 하였다. 


이는 현대사회에도 필요한 말이다. 반목과 갈등의 조장, 흑백의 논리만 통하는, 힘을 인(仁)으로 가장하여 유지되는 ‘패도정치’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따라서 맹자 혁명론은 매우 신선하게 읽혔다. 혁명의 정당성이라니? 백성의 신뢰를 잃어버린 군왕은 필부에 지나지 않는다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맹자의 혁명이란, 백성이 주체 세력이 아니라, 또 다른 지배자의 권력 이동을 의미함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불행하게도 중국의 불행한 지식인 유안이 염려한 것처럼 ‘집단의식’의 대표적인 사상인 듯하다.     

 

통제에 길든 사람일수록 자유를 두려워한다. 따라서 『논어』·『맹자』와 같은 통치자를 위한 ‘집단의식’이 아니라 중국 한나라 유안의 『회남자』와 같은 다양성의 ‘집단지성’이 우리 사회를 자유롭게 한다고 믿는다. 맹자가 설파한 ‘인(仁)의 정치’가 되려면 말이다. 


‘회남자’의 집단지성과 관련해 뒤에 언급할 기회가 있을 듯하다. 짧게만 언급한다면, 《회남자》를 쓴 회남왕 유안(淮南王 劉安, 기원전 179년~122년)은 중국 전한의 학자이자, 황족·제후왕이다. 그가 다양한 지식과 ‘집단지성’을 추구하면서, 전국의 빈객과 학자들이 유안의 회남으로 몰려들었다. 이는 한무제의 중앙집권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물론, 빈객 중에는 유교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비판하는 인물이 많았다. 결국 유안은 모반의 음모가 있다는 혐의를 받아 그의 아버지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으며, 사후 그의 봉지는 몰수된다.  


유안이 집필한 '회남자'



유안은 《회남자》에서 사물의 미세한 실상을 통찰하기 위해선 편견 없는 정신을 소유하여야 한다고 설파한다. 이는 사물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려는 현대적인 사고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집단지성의 정의는 피에르 레비가 제안한 개념인데, ‘어디에나 분포하며, 지속적으로 가치를 부여하고, 실시간으로 조정되면, 실제로 동원될 수 있는 지성’이라고 정의한다. 다양한 관점과 가치관이 공존하면서 공동의 주제를 논의하는 자유로운 마당을 여는 지성이라는 뜻이다. 이때, 우리는 독창성과 창의성이 마음껏 발휘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유안, 김성환 譯, ‘회남자 고대 집단지성의 향연’, 2021년 8월 13일., 초판4쇄, 살림.)     


반대로 ‘집단의식’은 수직으로 자란다. 위계질서를 이루는 나무, 하나의 구심점, 단일민족, 단일국가, 종교, 파벌 등 모든 가치를 집합시켜 하나로 통일한다. 집단 내 핵심 그룹이 진리를 독점하고, 전체주의적인 권력을 지향한다. 국민을 통제하는 데 이만큼 뛰어난 사상이 없다. 비루한 삶에 눈을 가리고, 계층 간 불평등을 증폭하고, 구조의 문제임에도 ‘대안은 없다’, 따라서 긴축은 ‘어쩔 수 없다’는 유의 담론이 먹히고 통하는 사회다. 성장은 분배의 필요조건도 아니고, 충분조건도 아니라는 어느 경제학자의 말을 떠올린다. 대한민국은 성장이라는 과정 자체가 권력적이란 의미다. 성장할수록 분배의 정의는 혼탁해지리라는 논리가 설득 있게 들렸다.      


맹자를 읽으면서 백성을 위한 군자의 사명을 고증과 경세(經世)·목민(牧民)에 학문의 목적을 둔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을 떠올린다. 18년이라는 절대 고독 속의 유배지에서 주옥같은 학문의 기틀을 잡고 완성한 그의 노력이 작금의 물질적 경제논리만 통하는 현실에 있어 큰 가르침을 주고 있음을 기억한다.   

  

덧붙이면, 현 정권을 보면 고려 무신정권이 생각난다. 검찰정권의 비호아래 말로만 공정한, 권력의 의도에 맞춰 힘없이 평범한 백성을 향해 서슬 퍼런 권력의 칼날을 휘두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소환이나, 압수수색이라는 칼자루를 쥐고 휘두르는 검찰이나, 경찰에 의한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국민이 익숙해진다면 심각한 문제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란 교훈을 쉬이 잊는 자들에게 한 마디 하고자 한다. ‘채근담’에 나오는 이야기다.


“도덕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한때의 쓸쓸함이 있을 뿐이지만, 권력에 빌붙어 사는 사람은 영원히 초라하고 애처롭다.”     


걱정이 하나 더 있다. 검색창에 ‘독도 지우기’, ‘우크라이나 파병’만 검색해도 관련된 기사가 수 없이 등장한다. 독도가 우리나라 관공서 지도에서 점차 지워지고 있다. 두려움은 나만 느끼는 것인가? 그리고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이나, 파병이란 말이 등장하는 데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기묘한 방한’...윤, 퇴임 한 달 남은 기시다와 6일 정상 회담” 한겨레신문 2024년 9월 3일자 헤드라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방한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방명록을 작성하는 동안 이를 지켜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경향신문 2024년 9월 14일자


“위헌 논란에도…국회 동의 없이 ‘우크라 파병’ 한다는 윤정부-대통령실, 전황분석팀 우크라이나에 보낼 뜻 밝혀” (한겨레신문 2024년 10월 31일자)     




국격이 그냥 올라가지 않는다. 떨어지는 것은 일순간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떨어지는 국격을 촛불이 막았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소수 권력의 뜻에만 따라 흐르는 ‘집단의식’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로써 정의와 진리를 조정하는 ‘집단지성’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밝고 건전하며, 정의로운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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