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도, 할 일도 많은데....
'인생에도 가을이 찾아 왔다. 더 추운 계절이 오기 전에 욕심을 내려 놓자.'
그동안 아주 저렴한 경제활동을 하느라 여름 몇 달을 바쁘게 보냈다. 그리고 무료한 시간이 찾아와 일주일 무료함을 즐기고 있었다. 가끔 나의 뱃살공주께서 스트레스를 주지만, 삶의 에너지로 역이용하며 견뎠다. 어차피 하층민 삶은 견디는 것! 그러면서도 어딘가 모를, 뭔가 찜찜한 구석이 시시때때 내 머리를 건드렸다.
그랬다. 그동안 마음을 풀어놓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맛보던 가운데 한 번씩 뒷목을 잡아당긴 것이 ‘훈민정음해례본’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이야기였다. 최근에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 한글 창제에 대한 의의와 우리 민족의 우수성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과정에 있어, 우리가 알고 있던 것에 첨삭하거나 바로잡아야 할 사연을 듣게 된 것이다.
인연은 문화답사 동호회 회원으로부터다. 퇴계 이황 후손인 그분이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훈민정음해례본을 김태준에게 연결해 준 이용준이 선생의 작은 아버지다. 반주를 곁들인 저녁 시간, 내게는 방대할 수 있는 자료를 넘겨주면서 글로 정리해 보면 어떻겠냐며 타진해 왔다. 비록 내가 삼류 싸구려 작가지만, 인문학적 소양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말로 들렸다. 그러나 과연 내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라는 의문, 부담이 된 것은 사실이다.(지금도 여전하지만)
모 대학교 교수를 지내다 퇴직한 그분이 건넨 자료에는 당신 할아버지 친필 메모, 당시 가족과 가문의 내력과 기록들, 학술회의 자료, 국가유산청(문화재청) 자료, 언론 기사, 서적 등과 함께 선생이 들려준 비하인드 스토리였다. 이를 토대로 당대 사회현실과 드러나는 정황을 총합하면 결론은 명약관화했다.
역지사지의 마음이 되어보았다. 훈민정음해례본이 발견되고, 간송 선생의 손에 넘어간 과정에 있어 상당 부분 오해를 불러올 만한 이야기가 마치 사실처럼 정착되는 현실을 후손으로서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 개입된 진실도 중요하지만, 팩트 그 자체로써 사실을 밝히고 싶다는 뜻이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점점 세월이 흐르면 의지조차 희미해질지 두렵다는 의미로도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잘못된 주장과 과장된 사연에 가슴이 답답했을 법하다.
조곤조곤 들려준 이야기에 필자는 귀가 열리며, 예의 멈출 수 없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아직은 대충 훑어본 터라 과정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부담을 떨칠 수 없어 차일피일 미루다 파일을 정리하던 중 대구간송미술관이 개관되었다. 개관기념 특별전도 열렸다.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긍재 김득신, 탄은 이정, 추사 김정희 등을 만나볼 귀한 기회다. 이때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훈민정음해례본’이 함께 전시된다고 한다. 답답해하던 중 직접 볼 기회였다. 예상컨대 훈민정음해례본을 직접 만난다면 뭔가 새로운 방향이 떠오르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다.
기실 스토리텔링의 형식을 빌릴 것인지, 소설이나, 논문, 혹은 칼럼의 형식을 따를 것인지 갈등하던 중이었다. 자료를 온전하게 파악한 후에 결정하리라 미뤄두고 있었으며, 프롤이 완성되려면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여기서 '훈민정음해례본'과 관련된 이야기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브런치 북으로 엮을 것임으로 아껴 두어야겠다.
이 선생님과 전화 통화로 함께 간송미술관을 찾아보기로 약속했다. 인터넷으로 약속 날짜에 맞춰 입장권을 예매해야 했다. 티켓대행업체에 회원가입을 하고, 본인 인증까지, 통장연결을 끝내고 예매에 성공하였다. 그런데 아뿔싸! 예매표가 요술을 부렸다. 당일 오전 11시 30분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당일 분이라 취소가 안 된다고 한다.
재차 선생님과 약속한 날짜로 예매를 시도했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이건 또, 입장 시간을 잘못 맞췄다. 머리를 쥐어박았다. 다행하게도 이것은 날짜가 여유 있어 취소할 수 있었다. 세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예매에 성공했다. 그런데 예매 취소가 안 된 당일 입장권에 대한 미련이 남았다. 시간을 보니 대략 한 시간 반쯤 여유가 있다. 양치질만 하고 얼굴에 물만 축인 채 옷을 갈아입었다. 8천 원을 포기하고 집에서 노느니 글이나 쓸까 했지만, 갈등은 거기까지였다.
간송미술관에 도착하였다. 모바일 예매권을 보였다. 그런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나는 무료란다. 예쁘고 친절한 아가씨의 말에 슬펐다. 선생님은 신분증만 있으면 언제 어느 때고 마음대로 오셔도 좋다고 덧붙인다. 벌써? 내 나이가 이렇게나 됐다. 친절한 아가씨가 당일 분 입장권 환불을 도와주겠다며 전화번호와 이름을 메모한다. 그리고 두 시간이 지난 후 내 통장에 당일분과 약속 날 입장권 두 매의 가격이 환불 입금되었다. 그리고 오후 그 아가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확인 전화다. 참 친절하고 마음씨까지 아름다운 아가씨다. 문득 내 며느리라면 좋겠다고 생각하자 허탈한 웃음이 터졌다. 언감생심... ㅜㅜ.
아침에 일어나자, 아내가 집을 나간 뒤다. 밥솥이 비었다. 밥솥에 쌀을 안치고, 쌀뜨물을 넣고 김치와 스팸, 두부를 넣고 부대찌개를 끓였다. 컵라면 사리만을 넣고 아침 겸 점심을 챙겨 먹었다. 포만감에 커피가 당긴다. 옷을 챙겨 입자 아들이 모히토 한 잔을 부탁한다. 갑자기 몰디브란 말과 함께 영화배우 이병헌 대사가 떠올랐다.
"모히토 가서 몰디브 한 잔 할랑께."
텀블러 두 개를 챙겨 상가 커피가게로 갔다. 알바생에게 “시원한 아이스커피 샷 추가, 그리고 몰디브 한 잔 주세요” 했다. 마스크를 써 알 수 없지만 알바생이 눈으로 웃는다. 아차! 싶었다. 급하게 “아니, 모디토, 아 모 모이또 한잔….” 그리고 나는 얼굴이 불타는 오징어가 되었다. 속으로 이 시키가 하필 모히토를 부탁해서…. 했다.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거다. 법적으로나 신체적 나이로나, 정신적 나이도 마찬가지다. 나이 들어보니 입을 다문 채 천천히 속으로 단어 하나씩 생각하면서 말해야 한다. 이 글을 쓰던 중에 뭘 잘못 눌렸는지 파일이 휙 날아 가버렸다. 휴지통을 아무리 뒤져도 없다. 이런 미련한 화상이라 자책하며 의지로써 재차 쓴 글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성질이 급해서 그런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둘 다 겹친 것이리라 생각하였다. 죄 없는 손가락만 탓한다.
가을바람을 가슴에 집어 넣기 위해 길을 떠났다. 소설가 한 분, 시인이자 사진작가 이렇게 셋이서 떠난 길이다. 체험마을 취재로 인연을 맺은 상주시 내서면 '밤원체험휴양마을'에서 하룻밤을 났다. 불멍에 기타연주와 하모니카를 곁들인 소소한 리듬의 시간으로 막걸리와 소주가 뒤엉킨 밤이었다.
귀신 꿈을 꾼 소설가 선생님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재밋음^^*.. 꿈인지 생신지 제가 자는 발 아래 여자가 앉아 았더라는. ㅜㅜ)
아침에 일어나 때마침 차 시인님 칠순이라 내가 손수 생굴 미역국을 끓여 대령하자 감동의 도가니로...ㅎㅎ
무려 세 그릇이나 비웠다는...
그리고 가을을 찾아 속리산 문장대 뒤편 성불사로 올랐다.('성불사의 목탁소리 산천을 울릴때, 목탁소리 들릴 때마다 나무아미타불관셈보살!' 군대서 군가 대신에 부르던 노래 흥을 대며) 그야말로 만추였다. 나는 소년으로 돌아가 화구 펴놓고 야외스케치 하던 때가 떠올라 남몰래 눈무를 딱았다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