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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필우입니다 Nov 18. 2024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의지를 초월했을 때, 삶의 고통은 무無가 된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쇼펜하우어의 ‘문장론’과 ‘행복론’ 정도만 읽었던 터라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문장론’은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필자에게 한 줄기 죽비를 맞는 듯한 신선한 충격이었고, 저자의 ‘행복론’에서 세상은 불행으로 가득 차 있다는 염세적이며 역설적인 시점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쇼펜하우어의 역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행복론’에 비추어보았다. ‘사람이 표상하는 것’, 즉 인간은 세상의 평판과 세간의 눈을 의식한다. 명예·명성·허영심 등이 문제다. 이는 행복이 본질이 아님에도 너무나 중요시한다.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불행이지만, 불행한 생각은 더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따라서 현실을 직시하고, 내적 풍부를 통해 지독한 고독조차 즐기며 살라고 한다. 좀 더 나아가면 불교에서 말하는 성불과 해탈의 세계, 도교의 무(無)와도 일맥상통한다 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19세기 이성철학이 판치던 시대, 현대라는 길목에서 사유 깊은 철학을 제시하였다. 책 1부와 3부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다루었다면, 2부와 4부에서는 의지로서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세계는 본질적으로 의지로서의 세계가 표상으로서의 세계로 드러난다. 표상이란, 인간이 인식함으로써 형상화되는 내용이자,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제각각 의지로 인하여 표상이 달리 나타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쇼펜하우어가 역설하는 ‘의지와 표상의 세계’ 핵심적 내용은 동고(同苦), 즉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게 된다면, 세상을 조용히 바라보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의지의 지배를 받는 맹목적인 움직임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며, 이때 고통뿐인 의지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의지의 지배로부터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서의 인간이란 뜻이다. 극히 공감하는 바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공감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느낌은 같으나 타인의 고통을 내고통인 양 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따라서 시대를 뛰어넘어 쇼펜하우어가 주장하는 동고(同苦)의 마음이 현대에 가장 필요한지도 모른다. 타인의 고통을 완전히 느끼기보다, 이해하고 함께 아파할 마음만 지닌다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본성(本性)에서 우러나는 인의예지가 발원하면서 측언지심과 수오지심이 발휘되면 사양지심에 따라 겸손하게 되고, 선험적 경험에 의해 시비지심이 발원하여 스스로 자연과 가깝게 되리라 생각한다. 예측컨대 역지사지(易地思之), 즉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품는다면 세상은 종교보다 아름다움이 지배한다고 믿는다. 

     

인간이 조화를 이룰 때, 불교에서 말하는 고통이 가득한 차안(此岸)의 바다를 건너 행복한 피안(彼岸)의 세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해탈 깨달음 반야 등 이 모두가 지혜를 뜻하는 바라 단언한다. 지혜로운 삶이 곧 극락의 세상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부처가 열반에 들기 전에 제자 중 가장 젊은 아난(시타르타의 사촌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Arthur Schopenhauer


“자기를 등불로 삼아 의지하면서 법을 밝혀 법에 의지하게 하라. 방종하지 말고 꾸준히 정진하여야 한다”


온갖 유혹의 의지를 이겨내고 타인의 고통, 즉 동고로써 고통의 세상을 벗어나란 말은 쇼펜하우어와 석가모니 부처가 주장한 의미는 서로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쇼펜하우어가 불교 교리를 공부한 것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으리라.      


거친 파도가 순간에 멈춰버린 고요, 즉 우주의 진실 된 모습이 그대로 바다에 비친 세상 해인삼매(海印三昧), 해인정(海印定)은 시작일 뿐, 불법(佛法)에서 인연은 억겁, 바다에 비친 만물 물빛이 우리네 인연이라면 너와 내가 따로 있을 수 없는데, 우리는 여전히 갈라치기에 능하니 이것이 문제다.     


각설, 무소유와 비움을 쇼펜하우어에서 읽었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영혼의 맑음, 살아 있는 자, 흐르는 자는 저절로 행복에 이르는 지혜를 터득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오늘도 그것을 이루지 못해 백만 가지 번뇌에 빠진 채 몸부림친다.     



* 어려운 책이라 먼저 요약본을 읽어 정리했음을 밝힌다. 2024년 중 완독하리라 다짐한다.



..................... 출판사 서평을 축약해 첨부한다.


의지가 없으면 표상도 세계도 없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가진 절대적 영향력의 근원


독일의 근대 철학자 중 사후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만큼 광범위한 독자층과 명성을 얻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철학자이자 문필가로서 그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 함께 독일어의 문어체를 개혁하면서 현대 독일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카프카, 헤르만 헤세, 에밀 졸라 등 수많은 문호로부터 숭배를 받아 왔다. 또한 니체는 그의 저서를 읽고 감명을 받아 철학자가 되기로 결심했고,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철학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철학을 시작했으며, 아인슈타인은 그가 남긴 저술들을 접하고 상상력의 나래를 펼쳐 상대성이론을 정립했다.


무엇보다 쇼펜하우어가 펼친 ‘의지 철학’은 현대 심리학에 큰 영향을 남겼다. 쇼펜하우어는 인간 존재가 이성과 합리적인 판단 능력을 갖고 질서정연한 삶을 살아간다는 전제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인간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동력이 삶을 보존하려는 맹목적이고도 무의식적인 ‘의지’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견해는 무의식에 초점을 맞춘 근대 정신분석학의 기본 명제와 상통하는 바가 많다. 더 나아가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기초에 해당하는 ‘억압’을 쇼펜하우어가 먼저 제대로 설명했음을 인정했고, 집단무의식을 탐구한 카를 융, 개인심리학을 제창한 알프레드 아들러, 구조주의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도 그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중략)


의지를 초월했을 때, 삶의 고통은 무無가 된다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세상의 모든 것이 정반합으로 움직이고, 그 발전 속에 이성의 힘과 원리가 작용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19세기 초반 독일 철학계에서 대세로 자리했지만, 쇼펜하우어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1816년부터 3년에 걸쳐 쓴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헤겔로 대표되는 이성 철학을 거부하고 이성이 아닌 의지로 세계를 파악하고자 했다.(중략)


이성은 두뇌 현상일 뿐이고 의지의 제약을 받는 부산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세계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성이 아닌 의지를 통해 다가가야 한다. 인간의 인식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 즉 지성도 의지에서 생긴 제한적인 것이다. 의지란 사물들로 다양하게 객관화되는데, 이렇게 의지가 객관화된 세계가 바로 표상의 세계다. 지성으로 파악하는 세계는 표상의 세계에 불과하고, 표상의 세계가 지닌 여러 특성은 세계의 본래적 특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러한 표상의 세계가 지닌 한계를 올바르게 인식할 때 본래의 세계, 즉 의지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토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쇼펜하우어가 가장 중요시하는 의지의 세계는 살아 있는 자연의 세계다. 생물이 태어나고 자라며 번식하는 생명 현상의 본질을 그는 의지로 파악한다. 그에게 생식 행위란 삶에 대한 의지를 가장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자연의 의지를 자신의 자연이라 할 수 있는 ‘몸’으로 직접 경험하고, 여기서 온갖 충동, 본능, 욕망을 갖는다.


이러한 자연의 의지를 자각하는 인간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욕구한다고 쇼펜하우어는 주장한다. 이기심이란 삶에 대한 의지를 긍정함으로써 생긴 심리 상태다. 결국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욕구로 관철되기 때문에 고통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간은 욕망을 일으키는 의지를 부정하고 그로부터 초연한 삶을 살아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이 쇼펜하우어가 의지를 통해 주장하는 그만의 ‘행복론’이다.(하략)

을유문화사 / 2019.05.25.



쇼펜하우어가 살았던 함부르크의 집(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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