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잃은 패자의 역습
▲ 레오 1세와 아틸라(라파엘로) / 사절단 대표 레오 1세 교황이 아틸라를 만나 그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인간은 너머의 세상을 동경한다.
그러나 방향 잃은 패자의 역습이 더 큰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인간의 이동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 기원전 2세기 초, 흉노의 이동은 중앙아시아는 물론, 중국과 인도의 역사까지 바꾼다. 거대 국가를 이룩한 흉노는 한나라 고조 유방을 포로로 잡는 쾌거를 올리고, 파미르고원에서 발원해 장장 2,500여 킬로미터를 흐르다 아랄해로 스며드는 아무다리야강 근처에 자리 잡은 대월지를 점령한다. 흉노로부터 쫓겨난 대월지 사람들은 남쪽으로 도망치면서 그곳의 ‘대하’, 즉 박트리아를 멸망시킨다. 그리고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인도로 쳐들어가 마우리아왕조가 막을 내린 인도에 ‘쿠샨왕조’를 세운다. 도미노 게임의 시작이다.
기원전 141년, 중국 한무제로부터 시작해 몇 십 아니, 몇 백 년에 걸쳐 후한에 이르기까지 북흉노가 망한 뒤 흉노족이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로부터 대략 200년이 흐르고, 카스피해 북쪽에 훈족이 나타났다. 모습이 똑 닮았고, 흉노와 훈의 발음도 비슷한 이들은 유럽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곧이어 훈족이 유럽에 입성하자 유럽은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강력한 훈의 침입은 게르만족 일파들을 유럽 각지로 흩어지게 했다. 게르만의 민족 대이동은 결국 이탈리아 로마의 멸망을 앞당겼으며 프랑크왕국을 탄생시키고, 훗날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라는 나라로 발전하는 초석을 다진다.
9세기 말, 우리가 흔히들 바이킹이라고 부르는 노르만족의 유럽 유린은 또 한 번 판도를 뒤집는다. 유럽의 북쪽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악착같이 눌러살던 북방민족 노르만족이 여름이 짧고 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추위와 척박한 땅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따뜻한 남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남으로 이동해 노르망디공국을 세우고, 아이슬란드에 정착하는가 하면, 영국의 서북쪽 아일랜드에 노르만 왕조를 일으키기도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지중해를 뚫고 들어가 시칠리아, 나폴리왕국을 건설하는 쾌거를 이룩한다. 동유럽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들 중 한 무리는 러시아에 도착해 그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던 슬라브족을 몰아냈다. 더 남쪽으로 내려간 무리는 현재 러시아의 기원인 키예프를 점령하고, 블라디미르공국까지 손에 넣는다.
노르만족으로부터 쫓기듯 밀려난 슬라브족은 남하해 발칸반도에 자리 잡고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를 세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가톨릭에 흡수된다. 그 당시 발칸반도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이들 역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대번에 뽑아버리거나 오랜 세월에 걸쳐 폭력과 희생의 토대 위에 나라를 세웠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살육과 방화, 강간과 약탈은 기본이었다. 아이들 머리를 돌에 부딪쳐 죽이고, 살아남은 자들은 끌고 가 노리개나 노예로 삼았던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되짚어야 할 의무가 있다. 문을 활짝 열고 그들에게 굴복하며 재물과 노예를 바쳐 목숨을 구걸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긴 이들만을 폭거나 약탈자로 칭하기에는 억울할 수 있겠다. 몽골의 칭기즈칸과 14세기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해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티무르라는 희대의 살육자와 유럽의 영웅 알렉산드로스와는 질이 다르다. 이 셋의 단순한 이유가 바로 목적이 되는 그들의 공통된 용어, ‘정벌’을 앞세운 살육자였다. 항복 아니면 도륙이라는 무시무시한 몽골군은 유럽인 눈에는 그저 하늘에서 보낸 악의 군대이자, 신의 채찍이었다. 사회 질서와 윤리가 땅에 떨어지자 하느님이 보낸 응징을 위한 군대였다.
왜 쳐들어오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이 훑고 지나간 땅에는 하늘을 향한 울부짖음만이 남았다. 사람의 머리로 탑을 쌓기를 즐겼다는 티무르는 그냥 할 말을 잊는다. 알렉산드로스 역시 페르세폴리스에서 보듯 그가 지나는 자리에 불타고 허물어진 건물잔해, 하늘에 울리는 절규만이 남았다.
세계를 자신의 발아래 놓고자 벌이는 욕망의 화신을 영웅이라고 불렀다. 더 웃기는 것은 유럽에서 알렉산드로스는 영웅이고, 유럽을 짓이겼던 티무르는 왜 죽음을 부르는 악인가? 훈족 희대의 영웅 아틸라는 왜 ‘신의 재앙’으로 불려야하는가.
마치 도미노 게임처럼 벌어졌던 인류 이동의 역사가 되풀이되면서 지금의 세계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약탈자 그 이상도 아닌 폭력적인 인간을 영웅으로 미화하는 것은 마치 후대의 성스러운 의무가 되었다. 이를 넘어 어떤 민족에게는 저항의 힘으로 작용하고, 또 어떤 민족에게는 이웃에 대한 침략의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단언컨대 통치제도는 통치자를 위한 것이다. 평등을 주장하는 사회주의국가에도 질서와 통제를 위한 세력은 어떻게든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당시의 제도란 폭력을 동반한 빈부격차와 부와 권력의 확대에 따른 찌꺼기가 굳은 잔재다.
스스로 선진문명인들이 살아가는 서구유럽이라는 개념 역시 이 과정을 거치며 생겨났다.(기실 폭력의 역사만 두고 보았을 때 문명보다 야만에 가깝지만) 앞서 보았듯이 일찍이 유럽이라 하는 지역 개념은 아시아를 타자화 하면서, 유럽과의 대비를 통해서 형성되었으며, 그 기조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유럽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개념에 입각하여 그 안의 많은 다양성을 은폐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유럽 내에도 다양한 갈등의 씨앗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서유럽으로 일컫는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다. 라틴적인 남부, 게르만적인 북서부, 노르만적인 북유럽, 이베리아의 지중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유럽, 유럽 내 늘 이방인으로 취급되는 유대인 등 다양성을 용해하고 포용하는 자세가 가장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러시아와 터키 등 비유럽적인 요소를 내포한 국가들과의 융화되고 풀어야할 과제도 안고 있다.
참조 : 이혜령 外 《유럽바로알기》, 도입부, 초판 5쇄, 2010. 1. 25.,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