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하늘 별자리 여행 2

유머 넘치는 신화 -염소자리

by 박필우입니다

츨처 : 작가 kjpargeter</a> 출처 Freepik <a href="https://kr.freepik.com/free-photo/colorful-landscape_1022751.htm#page=2&query=%EB%B0%A4%ED%95%98%EB%8A%98&position=2&from_view=keyword&track=sph">




페가수스자리와 연결된 가을철 대사각형을 기준으로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물병자리의 남쪽과 궁수자리의 동쪽에 큰 별과 자잘한 별이 뒤집어진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이 염소자리입니다. 황도12궁 중에서 제10궁에 속하며 쌍안경으로 보면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특히 이 별자리의 β별인 다비흐(Dabih)를, 동양에서는 견우직녀 전설 속의 주인공, 견우별牽牛星이라고 합니다.


1848년에 독일 베를린 천문대에서 해왕성을 발견한 것도 이 염소자리였습니다. 그리고 오래 전,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들은 거꾸로 된 삼각형의 염소자리를 ‘신들의 문’이라 부르면서, 그 문을 통해 이 땅의 고통과 속박에서 벗어난 인간의 영혼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사람들의 상상력이 매우 다양하고 기발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대부분이 비극적이거나 영웅적인 내용이지만, 이 염소자리에는 거의 유일하게도 우스운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염소자리수정.jpg


인간과 무척 친근했던 목축의 신 판(Pan)이 있었습니다. 이 판 신은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데, 특히나 연애를 좋아해 아프로디테(비너스)와 그의 아들 에로스를 몰래 훔쳐보는 모습은 조각이나 그림에서 단골소재로 등장하곤 합니다.


숲과 언덕을 좋아했던 아름다운 요정 에코(Echo)에게 구애 했지만 염소 다리에, 머리에는 뿔이 돋아있던 판의 모습에 놀라 달아나자 근처의 목동을 미치게 하여 에코의 몸을 상하게 만들어 온 산과 들판에 흩어 놓을 만큼 잔혹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이중성을 띤 신으로 나옵니다. 에코가 메아리가 된 사연이기도 합니다.


판은 풀로 피리를 만들어 불며 들판이나 숲에서 노래와 춤을 즐겼습니다. 한번은 자신이 짝사랑하던 님프 시링크스를 따라갔는데 놀란 시링크스가 급하게 도망치다가 풀로 변했습니다. 판이 그 풀을 꺾어 풀피리를 만들었던 것이랍니다. 그 피리로 다양한 소리를 내 숲속의 님프들을 놀라게 하곤 했지요.


잠든 사람들에게 악몽을 꾸게 만드는 다소 짓궂은 면도 있었으며, 때때로는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기도 했습니다. 공황恐慌을 뜻하는 ‘패닉’의 어원은 판 신에 의해 생겨났답니다. 반면에 다소 덜렁대기도 해서 신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아프로디테와 판. 판은 아프로디테에게 집착을 보이며 추근대지만, 항상 구박만 받는다. 뒤에 어린 에로스가 말리고 있다. 아테네 고고학박물관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오던 화창한 어느 가을날이었습니다. 이집트 나일강변에서 신들의 제왕 제우스를 비롯해 그의 아내 헤라, 태양의 신 아폴론,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등 올림포스 신들이 모두 모여 성대한 축제를 열었습니다. 신들은 다양한 재주를 지닌 판의 주도로 웃고 춤췄으며,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가 만든 와인과 술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축제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이었습니다. 판이 풀피리를 불려는 순간, 엄청난 괴력을 가진 티폰이 갑자기 공격해왔습니다. 티폰은 양팔을 벌리면 그 손이 동쪽 끝과 서쪽 끝에 닿는데다, 머리는 은하수에 다다를 정도로 큰 괴물이었습니다. 또한 상체는 남자의 모습으로 백 개의 머리를 가졌으며, 하체는 거대한 뱀이 꿈틀거렸습니다. 팔 역시도 수백 마리의 뱀으로 되어 있습니다.

타이폰, 즉 태풍이라는 말이 바로 이 티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괴물 티폰이 공격해오자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신들도 놀라서는 제각각 동물로 변해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도망치던 판이 나일강변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물고기로 변해야 했지만, 허둥대다가 주문을 덜 외운 채 물에 뛰어든 탓에 하반신은 물고기로 변했지만 상반신은 염소 모습 그대로 남았던 것입니다. 정작 이 사실을 몰랐던 판은 마치 자신이 완벽한 물고기인 양 헤엄쳤습니다. 그 모습을 본 신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신들은 이를 기념하겠다면서 판이 싫다는데도 막무가내로 하늘에 올려 별자리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 황당하게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판이 다시 주문을 바꾸려던 그때, 제우스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판은 본능적으로 제우스에게 향했습니다. 그리고 티폰이 막 제우스를 공격하려는 모습을 보고, 들고 있던 풀피리로 아주 날카로운 소리를 냈습니다. 그러자 티폰은 고통스럽다는 듯 귀를 막고 도망쳤습니다. 판 덕분에 티폰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던 제우스는 그 고마움을 새겨 판을 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판은 올림포스 신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전령의 신 헤르메스와 아이러니하게도 오이칼리에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리오페(Dryope)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판은 태어날 때부터 얼굴에 털이 숭숭 나있었습니다. 어머니 드리오페조차도 징그럽다며 젖을 물리지 않고 도망쳤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헤르메스는 어머니와는 반대로, 희한하게 생긴 아들을 무척 좋아해 올림포스에 데려가 키웠습니다. 다른 신들도 늘 명랑한 판을 좋아해서 ‘모든 것’이란 의미의 ‘판’으로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유쾌하면서도 엉뚱한, 그러나 남을 놀래거나 괴롭히는 신이라니 다양한 신성을 지닌 판입니다.


현대는 스마트폰 천국입니다. 그렇지만 좋은 기술을 가지고도 범죄에 더 많이 이용되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선한 사람이 만들면 선한 인공지능이 되고, 악한 사람이 만들면 악한 인공지능이 된다고 합니다. 본성 중 후천적인 교육을 통해 장점만 활용해 살아가거나 단점에 지배당하는 삶이 결정된답니다. 장점만 살려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올바른 교육이나 건전한 사색이 필요합니다. 판 신 역시 좋은 점만 살려서 님프나 인간을 위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이 드는 까닭입니다.


신들의 잔치에 나타나 공격했던 괴물 티폰은 어찌 되었을까? 사전에 의하면 신들의 제왕 제우스가 잡아, 시칠리아 동쪽 해안 에트나산 아래에 가둬놓았다고 합니다. 이 산은 지중해 섬들 중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합니다. 자연은 간혹 인간에게 경고로써 말을 건네곤 합니다. 에트나화산은 2007년 9월에도 분출했답니다. 티폰이 살아 발버둥 치는 것은 아닐까?



* 메아리를 뜻하는 에코

목축 신 판과는 아무런 연관 없는 에코의 죽음에 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 잘생긴 청년 나르키소스(자기 자신에게 애착하는 나르시즘의 어원)를 사랑했으나 에코는 여신 헤라의 노여움을 사 상대방이 말을 먼저 하면 따라만 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런 에코를 나르키소스가 좋아할 리 없었습니다. 결국 에코는 동굴에 들어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산이나 들판에서 소리치면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답니다. 이 신화는 목축의 신 판이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은 에코를 죽여 온 산에 뿌려 메아리가 되었다는 신화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