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세계의 신화란

인간의 심리와 삶의 방식, 이상과 꿈을 고스란히 품다

by 박필우입니다

* 별 이야기를 끝냅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원시인에게 신화란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성경만큼 진실


그리스 신화는 앞서 소개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있습니다. 시간이 된다면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양식은 물론 잠자고 있는 상상력에 큰 파동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신화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조금만 알아보고 마무리 할까 합니다.

신화는 인간이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 만든 상징적인 이야기입니다. 신화를 믿었던 원시인을 어리석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신화는 엉뚱한 곳에서 툭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 심리와 삶의 방식과 이상과 꿈 등을 고스란히 품고 있습니다. 신화는 민족의 역사를 대변하면서 전통신앙은 물론 그들이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 오롯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우리네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전승되어온 신화가 나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신화가 전승되어오는 과정에서 정치와 문화, 경제와 주변 환경, 지역, 인접 민족과의 관계, 민족 이동의 역사, 정착과 전쟁, 인문지리 등 모두를 망라하며, 그것에 경험이 덧대면서 재편되고 힘차고 활기차게 생명력을 부여하게 됩니다. 따라서 신화란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신화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외국은 물론 우리나라 역시 왕건, 장보고, 이순신, 대조영, 광개토태왕, 홍길동, 홍경래, 구미호 등 신화로 거듭나면서 스토리를 입혀 재조명 되고 있습니다. 최근 문화 콘텐츠로서의 무궁무진하게 그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현대인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까닭입니다.




신화란 민족의 정신적인 의식과 문학의 원천


신화는 구전으로 이어져오다가 필연적으로 문자로 정착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이때 내용이 첨삭되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할 것입니다.


인간의 상상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입니다. 민족의 지난 역사에 있어서 향수이자, 파장일 수 있습니다. 하늘이 별을 만들어 냈지만, 이야기는 사람이 만들어낸 것처럼, 살아가는 생활에 따라 자연이나 그 대상을 신화로 이해하는 관점이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마다의 삶을 기반으로 탄생하는 신화는 서로 다른 삶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그려내는 것입니다.


물병자리

하늘에 우주선이 돌아다니는 현대에서도 신화란 여전히 우리 가슴속에 존재하며 꿈과 희망으로 요동치고 있습니다. 소설가이자 언론인 나림那林 이병주李炳注(1921~1992) 선생은 “태양이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로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고 하여 널리 화자가 된 분입니다. 신화는 우리네 삶을 달빛에 투영해 상상력을 동원하면서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게 됩니다.



민족 신화 살리기


신화란 당대인들에게 시대에 맞춰 가치가 변해왔습니다. 고대에는 나의 부족 혹은 자국 중심의 건국영웅을 살려 신성의식을 이입하였다면, 중세에는 보편적 가치관인 종교와 윤리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자민족 중심의 민족주의와 시민국가의 일원으로 타민족보다 내 민족이 더 중요한 배타적 정당성이 자리 잡기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과거의 향수에 상상력의 부산물로 신화를 끌어들이면서 자민족 우월주의에 이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명 ‘신화의 귀환’이라고 하는 현대의 신화는 자민족 특성에 맞게 정치인이나 문학가, 혹은 문화 전달자에 이해 재해석되고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화에 따라 일취월장하거나, 지하 깊숙하게 숨어드는가 하면, 새롭게 각색하고 덧칠하면서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 주검이 새로운 영웅적 반열에 오르기도 합니다.


덧붙이면 근대민족주의가 끈질긴 생명력을 구가할 때 신화는 무임동승하면서 민족의 신화로 새롭게 정착하였습니다. 즉 민족의 기틀을 다지는 데는 반드시 신화가 뿌리를 깊이 내리면서 형성되었습니다. 신화란 구심점을 집결시키는 데에는 민족주의자에게 이처럼 좋은 소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의 민족과 신화


우리네 고조선 신화에서 보듯 '천강신화天降神話'란 것이 있습니다. 하늘을 다스린 절대자가 땅으로 내려와 부족을 통솔해 나라를 건국했다는 이야기의 신화입니다. 부여 역시 천강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단군신화, 비록秘錄과 야사野史 등도 신화적 가치로 인정받으면서 자주독립과 민족정신을 드높이는 데 이용되기도 하였습니다. 단군신화는 민족의 종교로서 확장되었습니다. 역사가 부대끼면 신화가 충돌하고, 결국 민족이 충돌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신화란 그 나라와 민족의 정신적 뿌리인 만큼 미래 희망의 충분한 자양분으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타민족의 배타적 감정과 타자화하는 데에는 반드시 폭력이 동반하거나 갈등이 일어납니다. 자민족 우월주의에 빠져 폭력이 정당화되어서도 안 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구촌은 2,500여 년 전 석가모니의 자비, 소크라테스가 주장했던 인류보편적인 윤리와 정의, 공자가 설파하였던 박애와 심오한 인도주의적 휴머니즘, 그리고 예수가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심어주려 하였던 사랑 등 이 모든 것 중 하나만이라도 충만하다면 우리는 더불어 화합하면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신화에서 사랑과 자비, 정의와 박애정신만 쏙 뽑아서 우리네 삶에 중심추로 삼는다면 인류 폭력의 역사는 종식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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