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중일기
『장중일기』
2화 — 불완전한 기록
아침이 밝았다.
전날 밤 늦게 잠들었는데도, 눈은 자동처럼 떠졌다.
습관이었다.
장이 열리기 전, 시황을 확인하고 예수금을 계산하고, 손가락을 가볍게 풀어보는 일련의 의식.
마치 출근 전 양복을 여미는 사람처럼, 나도 매일 시장 앞에 선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책상 위에, 차트보다 먼저 내 시선을 붙잡은 게 있었다.
어제의 그 노트 — 장중일기.
표지 위의 금빛 문구가 희미한 아침 햇살을 반사하고 있었다.
“기록하지 않는 손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 문장을 다시 읽는 순간, 어제의 손끝 떨림이 되살아났다.
나는 노트를 펼쳤다.
첫 페이지에는 단 한 줄만 있었다.
‘오늘 나는 두려워서 매수했다.’
잉크가 조금 번져 있었지만, 그 흔적이 이상하게 생생했다.
그 한 문장이 내 모든 실수를 요약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다음 페이지를 펼치자, 펜이 멈췄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다.
매수·매도 시점은 이미 거래내역서에 다 있다.
차트는 캡처하면 되고, 수익률은 숫자로 남는다.
그런데 ‘기록’이란 건 그것과는 다른 무언가라고 느껴졌다.
어제 그 한 문장을 쓸 때, 분명 나는 잠시나마 내 감정을 붙잡았었다.
그 감정의 조각들이 지금 다시 떠오르지만,
막상 펜 끝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종이에 몇 글자를 적었다 지웠다.
‘시초가 진입’, ‘타점 불명확’, ‘리스크 관리 실패’.
언뜻 보면 완벽한 매매일지의 언어 같았다.
하지만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건 마치 수술 기록지에 적힌 ‘환자 사망’ 같은 말이었다.
결과는 명확한데, 이유는 공허했다.
“나는 왜 이걸 하고 있을까.”
그 문장이 불쑥 입에서 나왔다.
시장에 들어온 이유는 단순했다.
돈을 벌고 싶었고, 조금은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시장에서 자유를 잃고 있었다.
손실이 나면 불안했고, 수익이 나도 불안했다.
이상했다. 이익을 봤는데도 마음이 무거웠다.
커피 한 모금으로 머리를 식히며 창문 밖을 바라봤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차창을 타고 내려오는 빗줄기처럼, 내 감정도 흘러내렸다.
불완전한 기록.
나는 뭔가를 써야 하는데,
그 ‘뭔가’가 숫자도 아니고, 기술적 지표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결국 노트 한쪽에 이렇게 적었다.
‘시장에선 모두가 같은 정보를 본다.
그런데 왜 결과는 다른가?’
생각보다 그 문장이 오래 머물렀다.
내가 봤던 차트, 들었던 뉴스, 참여했던 커뮤니티의 이야기들—
모두가 동일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지만,
결과는 천차만별이었다.
그 차이는, 아마 기록의 부재에서 오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다시 펜을 들었다.
“오늘의 계획”이라는 제목을 적고, 매수 목표와 손절 라인을 적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작게 썼다.
‘감정 상태: 약간의 불안.
시장 신뢰도: 60%.
집중도: 40%.’
숫자는 애매했고, 감정은 흐릿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흐릿함’을 적는 일이 의미 있었다.
장 시작 9시.
호가창이 출렁이며 열렸다.
내 손이 자연스럽게 마우스로 이동했다.
눈앞의 숫자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익숙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손끝이 떨릴 때마다 노트를 봤다.
‘감정 상태: 불안.’
그 한 줄이 이상하게 나를 진정시켰다.
점심 무렵, 주가는 급등했다.
내 안의 본능이 외쳤다.
“지금이 기회야!”
하지만 펜이 먼저 움직였다.
‘흥분감 상승. 근거 부족. 진입 금지.’
그걸 적고 나니 신기하게 손가락이 멈췄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차트는 미친 듯이 움직였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3시 30분, 마감 종소리가 울렸다.
결과는 -0.2%.
그런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늘 처음으로 손실보다 기록이 많았다.
노트를 덮는 순간, 이상한 만족감이 밀려왔다.
수익이 아니라, 나 자신을 조금은 통제했다는 안도감이었다.
밤이 되자 다시 노트를 펼쳤다.
그날의 요약을 쓰려 했지만, 문장이 막혔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렇게 적었다.
‘오늘은 시장을 이기지 못했지만,
적어도 내 감정에 패배하지는 않았다.’
그 한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어쩌면 이게 기록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수익보다 감정이 먼저 기록되는 순간,
트레이더는 비로소 인간이 된다.
노트를 덮으며 문득 생각했다.
이건 일기가 아니라, 나를 해부하는 실험 기록지 같았다.
매일 한 장씩 나를 잘라내어,
그 조각들을 시간 속에 보관하는 일.
나는 불완전한 기록 속에서 조금씩 나를 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같았다.
그날 밤, 침대 머리맡의 노트가
묘하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본 연재는 헤리티지룸(HeritageRoom) 의 프리미엄 매매일지 『장중일기』 협찬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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