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중일기』
며칠째 같은 패턴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노트를 펼치고, 감정을 적고, 장이 열리면 펜과 마우스 사이를 오가는 하루.
나는 규칙적으로 행동하고 있었지만, 마음속 어딘가가 불안했다.
이상했다.
규칙은 생겼는데, 평화는 없었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어김없이 첫 줄을 적었다.
‘감정 상태: 안정 70%, 피로 30%.’
눈으로는 평정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손끝이 자주 떨렸고, 호흡이 일정하지 않았다.
이건 익숙한 신호였다 — 반복의 전조.
시장에 들어서면 나는 언제나 같았다.
아침엔 냉정했고, 오후엔 조급했다.
수익이 나면 욕심을 부렸고, 손실이 나면 복구를 꿈꿨다.
기록을 시작한 뒤에도 그 리듬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단지, 더 명확하게 ‘보이게’ 되었을 뿐이었다.
이건 오히려 더 잔인했다.
전에는 몰라서 당했는데,
이젠 알면서도 반복했다.
그게 진짜 공포였다.
오전 10시, 주가가 급락했다.
화면이 붉게 물들자, 손끝의 떨림이 커졌다.
나는 노트를 펴서 썼다.
‘공포 상승.
과거 동일 상황: 5월 14일, 6월 7일, 7월 3일.
결과: 손절 후 반등.’
적어놓고도 웃음이 났다.
세 달 동안 같은 실수를 세 번 했다.
그리고 지금, 네 번째가 오고 있었다.
이게 바로 반복의 공포였다.
시장은 매일 달라지지만,
그 안에서 나는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
내 감정은 매일 똑같은 타이밍에 반응했다.
마치 알람이라도 설정된 듯이.
‘손실 3%, 반사적 매도 욕구 발생.’
나는 그 문장을 적고, 손을 멈췄다.
이건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예언이었다.
그리고 예언을 깨는 건 지금의 나뿐이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호흡을 고르고, 펜을 다시 들었다.
‘오늘은 그 욕구를 기록으로 견딜 것.’
그 문장이 내 안에서 작은 균열을 냈다.
손가락이 매도 버튼 위에서 머물렀지만, 끝내 누르지 않았다.
오전이 지나고, 주가는 다시 올랐다.
내 계좌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손익은 0%.
하지만 내 마음엔 뭔가 새로운 게 생겼다.
자기 예측을 이긴 기분.
이건 돈보다 값진 승리였다.
점심을 먹으며 노트를 다시 펼쳤다.
지난 일주일간의 기록을 훑었다.
패턴이 보였다.
익절 후 급락, 손절 후 반등, 재진입 후 손실.
거의 예술적이라 할 만큼 일정했다.
나는 웃었다.
“이제야 나를 이해하겠군.”
하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패턴을 아는 것과, 그걸 바꾸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머리로는 아는데, 몸은 여전히 과거의 리듬을 따랐다.
그건 시장이 아니라 습관과의 싸움이었다.
오후 2시 반, 다시 급등.
익절 타이밍을 고민하던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익숙한 장면이었다.
‘조급함 80%.
과거 동일 감정 발생 시 결과: 수익 극대화 실패.’
나는 빠르게 적었다.
하지만 이번엔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그냥 눌러버렸다.
순간적인 반사였다.
클릭음이 울린 뒤, 화면이 바뀌었다.
주가는 잠시 상승했다가 곧 떨어졌다.
익절은커녕, 미세한 손실.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또 같은 패턴이었다.
알면서도, 똑같이.
펜을 들었다.
‘반복의 공포는 지식으로는 이길 수 없다.’
그 문장을 적는데, 손이 떨렸다.
이건 단순한 깨달음이 아니었다.
패턴을 인식한다는 건,
그 안에서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인정하는 일이었다.
장 마감 후, 나는 기록을 오래 바라봤다.
오늘의 수익은 미미했지만, 오늘의 기록은 진했다.
그 안엔 수십 개의 감정선이 있었다.
두려움, 후회, 안도, 자책, 그리고 이상한 만족.
나는 깨달았다.
시장은 변하지 않는다.
변해야 하는 건 나 자신이다.
하지만 그 변화는 의지가 아니라, 반복을 인식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는 걸.
밤이 깊어갈수록 페이지의 잉크가 짙어졌다.
나는 마지막 줄에 이렇게 썼다.
“기록은 반복의 거울이다.
거울을 마주보는 자만이,
같은 실수를 다르게 기억한다.”
노트를 덮으며 불을 껐다.
방 안은 조용했지만, 내 안의 시장은 여전히 움직였다.
그리고 나는 그 시장의 소음을,
기록의 잉크로 천천히 잠재우고 있었다.
본 연재는 헤리티지룸(HeritageRoom) 의 프리미엄 매매일지 『장중일기』 협찬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프리미엄 매매일지, 『장중일기』를 지금 만나보세요.
장중일기 공식 페이지: https://theheritageroom.com/financero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