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중일기』
책상 위 노트가 오늘따라 묘하게 단정해 보였다.
그동안 낙서처럼 쓰던 기록이 어느새 하나의 ‘서식’이 되어 있었다.
왼쪽 상단엔 날짜, 오른쪽엔 시장상황,
그리고 아래엔 작은 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짜: 8월 19일
내 컨디션: 중
시장상황: 횡보장
매매방식: 단타
이제 나는 매일 이 표로 하루를 시작한다.
처음엔 귀찮았지만, 이 표야말로 내 감정의 ‘지도’였다.
펜으로 각 칸을 채워갈 때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교차했다.
매매이유:
“전일 강세 종목의 연속 상승 기대.”
짧은 문장 하나지만, 그 안엔 내 욕심이 들어 있었다.
매매계획:
“10시 전 진입, 손절 -3%, 목표 수익 +5%.”
규칙은 단순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계획을 지키지 못한 날이 더 많았다.
장을 열기 전, 나는 노트의 빈 칸들을 바라봤다.
이 작은 사각형들이 오늘 하루의 감정, 실수, 판단, 그리고 교훈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건 시장의 데이터가 아니라 나의 데이터였다.
9시가 되자 시장이 열렸다.
체결음이 연속으로 울리고, 호가창이 요동쳤다.
나는 미리 써둔 계획을 떠올렸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계획보다 빨랐다.
주가가 순간적으로 튀자,
손가락이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매수.
그리고 곧 하락.
손실 -2.8%.
나는 급히 펜을 들었다.
실현손익: -2.8%
종목명: A전자
수익률/손실률: -2.8%
그 아래, 손끝이 멈칫했다.
잘한점:
“즉시 손절. 감정적 대응 최소화.”
잘못한점:
“매매이유가 불명확. 상승에 대한 막연한 기대.”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하루의 모든 요약이 들어 있었다.
기록은 내 감정을 수치화했고,
수치화된 감정은 곧 객관이 되었다.
장 마감 후, 나는 그 표를 다시 펼쳤다.
하루의 결과를 복기하는 순간이 가장 고요했다.
이젠 ‘잘못한점’을 쓰는 일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 칸이 나를 성장시켰다.
며칠 동안 쌓인 페이지들을 훑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다른 종목, 다른 수치, 다른 감정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모든 기록의 형태는 다르지만, 패턴은 같았다.
시장상황: 상승장 — 손절.
시장상황: 하락장 — 진입 주저.
내 컨디션: 하 — 충동 매수.
표의 행마다 일정한 리듬이 있었다.
시장은 매번 달랐지만, 나는 매번 같았다.
그게 ‘복기의 법칙’이었다.
복기란 패턴을 찾는 일이고,
그 패턴은 언제나 나 자신에게 있었다.
나는 오늘의 마지막 칸을 채웠다.
배운점:
“시장의 변동은 예측 불가지만, 나의 감정은 예측 가능하다.”
그 한 줄을 적으며 펜을 내려놓았다.
이 표는 더 이상 단순한 양식이 아니었다.
이건 나의 훈련 일지였다.
트레이딩 노트이자, 인간관찰 보고서.
복기의 의미는 손익을 계산하는 데 있지 않았다.
복기란 어제의 나를 데이터로 변환하는 과정이었다.
그 데이터가 내일의 실수를 예언한다.
나는 마지막 줄에 조용히 덧붙였다.
“복기는 과거를 기록하는 행위가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언어다.”
노트를 덮는 순간, 묘한 평온이 찾아왔다.
이젠 시장이 두렵지 않았다.
손실도, 변동성도, 예측 불가능한 뉴스도.
왜냐면 나는 알고 있었다.
내일 아침, 이 표의 빈 칸들이 또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것이야말로 내가 시장에 남아 있는 이유였다.
본 연재는 헤리티지룸(HeritageRoom) 의 프리미엄 매매일지 『장중일기』 협찬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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