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중일기』
장중일기의 속지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두께가 주는 묘한 신뢰감, 잉크가 번지지 않는 종이의 질감,
그리고 페이지마다 똑같은 틀이 그려져 있었다.
날짜, 컨디션, 시장상황, 매매방식, 실현손익.
이 단조로운 칸들이 내 하루를 질서로 묶고 있었다.
날짜: 9월 3일
내 컨디션: 중
시장상황: 상승장
매매방식: 스윙 진입 시도
그 아래 빈 칸들이 줄지어 있었다.
종목명, 수익률, 매매이유, 계획, 잘한점, 잘못한점, 배운점.
이건 마치 나의 뇌 속을 해부하는 양식 같았다.
나는 이 표를 ‘감정 해석 도구’라 불렀다.
하루의 시작은 이 속지를 펴는 일로부터 시작됐다.
펜으로 날짜를 쓰는 순간, 이미 하루의 각오가 정해졌다.
시장보다 먼저, 내 마음의 상태를 점검했다.
“오늘의 나는 시장을 견딜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숫자보다 무거웠다.
시장에선 누구나 데이터를 본다.
그러나 기록을 남기는 사람만이 자신의 데이터를 가진다.
나는 펜을 들어 썼다.
매매이유: “업황 반등 초기 구간. 거래량 확인 후 진입.”
매매계획: “손절 -2%, 익절 +4%, 1차 진입만.”
계획은 늘 간단하지만,
지키는 건 언제나 어려웠다.
시장에선 단 한 번의 ‘충동’이
여러 장의 손실 페이지를 만들어냈다.
오늘은 다르다고 믿었다.
이제 나는 단순히 거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록으로 스스로를 감시하는 존재였다.
9시가 되자 장이 열렸다.
호가창이 출렁이고, 차트가 급등했다.
손이 먼저 반응했다.
하지만 바로 펜을 들었다.
‘현재 감정: 흥분 60%, 근거 40%.
진입 보류.’
그 문장을 쓰자마자 손끝의 열기가 식었다.
시장보다 노트가 나를 지배했다.
기록은 나를 늦췄고, 그 느림이 판단을 구했다.
오전 10시, 첫 매매.
종목명: H테크
수익률/손실률: +2.4%
실현손익: +2.4%
나는 즉시 속지를 채웠다.
잘한점: “계획한 구간에서 익절, 감정적 변동 없음.”
잘못한점: “분할매도 타이밍 미흡. 추가 관찰 필요.”
그리고 작은 글씨로 썼다.
배운점:
“익절 후에도 평정심 유지가 가능할 때, 시스템은 작동한다.”
그 문장을 적으면서 깨달았다.
이 표의 목적은 수익을 기록하는 게 아니었다.
감정이 개입된 ‘판단의 순간’을 수집하는 것이었다.
손실보다 무서운 건 충동이고,
그 충동은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진다.
기록되지 않은 감정은 언제든 다시 나타난다.
점심 무렵, 시장이 반락했다.
일부 종목이 급락했고, 공포가 번졌다.
주변 채팅창엔 욕설과 절망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노트를 펼쳤다.
시장상황: “급락장. 외인 매도 우세.”
내 컨디션: “평온. 감정반응 없음.”
차트는 불안했지만, 내 글씨는 안정됐다.
기록은 나의 이성의 벽이었다.
그 벽 위에서 나는 흔들리는 시장을 내려다봤다.
오후 3시.
오늘의 마지막 거래를 마치고 손익을 합산했다.
실현손익: +1.1%
이익은 작았지만, 만족감은 달랐다.
노트의 모든 칸이 채워졌다는 사실 하나가 나를 평온하게 했다.
장을 마감하고 노트를 다시 펼쳤다.
한 장 한 장, 빼곡히 채워진 표들이 눈에 들어왔다.
매매일지의 속지는 단조로웠다.
그러나 그 단조로움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 칸에 이렇게 썼다.
배운점:
“형식은 나를 지루하게 하지만,
그 지루함이 결국 나를 구한다.”
그 문장을 쓰고 펜을 내려놓았다.
손끝에 묘한 떨림이 있었다.
그건 초조함이 아니라, 질서가 자리 잡는 감각이었다.
시장은 혼돈이지만, 나의 노트는 질서였다.
그 질서 안에서 나는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밤이 되자, 책상 위에 노트를 올려두었다.
표지는 이미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그 닳은 부분이 좋았다.
그건 나의 하루들이 쌓인 증거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적었다.
“기록은 기억을 구조화하고,
구조화된 기억은 시스템이 된다.”
그 문장을 덮으며 미소가 났다.
나는 더 이상 운에 의존하는 트레이더가 아니었다.
나는 매매일지를 다루는 기술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오늘의 노트는 나를 감시했고, 동시에 지켜주었다.
그리고 나는 안다.
이 속지를 매일 채워나가는 일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신념이라는 걸.
본 연재는 헤리티지룸(HeritageRoom) 의 프리미엄 매매일지 『장중일기』 협찬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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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중일기 공식 페이지: https://theheritageroom.com/financero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