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중일기』
이제 나는 하루를 ‘기록’으로 시작한다.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 대신 노트를 찾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완벽히 자연스러운 건 아니다.
이따금 손이 먼저 마우스로 향하려다 멈춘다.
하지만 그 짧은 멈춤이 얼마나 많은 걸 바꾸는지 이제 안다.
오늘도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커피를 내리며 나는 노트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오늘 나는 어떤 감정으로 시장을 맞이하는가.”
이 질문이 이제 내 하루의 시동 버튼이었다.
펜으로 날짜를 적고, 천천히 썼다.
‘감정 상태: 평온함 60%, 긴장감 30%, 불안 10%.’
감정을 수치로 표현하는 일이 어색했지만, 그 어색함이 나를 진지하게 만들었다.
시장에 진입하기 전, 내 마음을 계량화한다는 것.
그건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리는 행위였다.
모니터를 켜기 전까지 나는 차트를 보지 않았다.
대신 어제 쓴 기록을 복기했다.
손실의 원인은 전략이 아니라 심리였다.
그걸 인정하는 데 며칠이 걸렸지만, 이제는 담담했다.
기록은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다만 ‘관찰’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관찰이 나를 구했다.
9시, 장이 열렸다.
마우스 클릭음이 들리자마자 심장이 빨라졌다.
그 익숙한 긴장감—그러나 이제 나는 그 감정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탐욕.’
나는 펜을 들어 적었다.
‘시작 직후 급등 종목을 찾는 욕망. 근거 없음. 진입 금지.’
손이 마우스로 향했다가 멈췄다.
불과 일주일 전이었다면 이미 눌렀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노트 한 줄이 내 손보다 빨랐다.
기록이 행동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이제 내가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니라, 기록이 나를 누르고 있구나.’
오전 내내 나는 아무 거래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안정됐다.
마치 폭풍 속에서 안전한 벙커 안에 있는 느낌이었다.
기록이 나를 보호했다.
시장이 흔들릴수록, 노트는 더 단단해졌다.
점심 무렵,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어제 쓴 문장을 읽었다.
“기록은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보내는 경고장이다.”
그 문장을 읽을 때마다 묘한 평정이 찾아왔다.
과거의 나는 조급했지만, 오늘의 나는 그 조급함을 기록으로 바꾸고 있었다.
오후 2시.
시장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호가창이 출렁이고, 뉴스 속보가 쏟아졌다.
‘외국인 대량 매도.’
모니터를 보는 순간, 심장이 반응했다.
하지만 이번엔 펜이 먼저 움직였다.
‘공포 감지. 근거 없는 체결 금지. 기록 우선.’
그리고 진짜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손실의 공포가 아니라, 행동하지 않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시장은 언제나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그 소음 속에서 나의 침묵을 들었다.
3시 30분, 마감 종소리.
내 계좌는 제자리였다.
수익도 손실도 없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평온했다.
노트에 적었다.
‘오늘은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대신 기록이 나를 눌렀다.’
그 문장을 쓰며 미묘하게 웃음이 났다.
나는 드디어 내 하루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기록은 나를 억누르는 족쇄가 아니라, 나를 지탱하는 구조였다.
밤이 되자, 창밖에서 바람이 불었다.
불 꺼진 모니터 앞에서 나는 노트를 펼쳤다.
오늘의 마지막 문장을 썼다.
“시장에는 수많은 버튼이 있다.
하지만 진짜 위험한 버튼은 내 안에 있다.”
그 문장을 쓰자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난 몇 년간 나는 늘 ‘진입 타이밍’을 고민했다.
그러나 이제는 ‘내 감정의 진입 타이밍’을 관찰하고 있었다.
시장보다 더 복잡한 차트가 내 안에 있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을 때
내 머릿속에는 가격이 아닌 문장이 떠올랐다.
‘오늘 나는 나 자신을 눌렀다.’
그 짧은 생각이 묘하게 뿌듯했다.
이제 나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기록이 나를 바꾸는 방식을.
본 연재는 헤리티지룸(HeritageRoom) 의 프리미엄 매매일지 『장중일기』 협찬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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