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나도 아껴주자
아이를 양육하면서 나는 다양한 감정들을 맛보았다.
내가 이런 사람인가 싶은 마음도 들었다.
급기야 내 감정의 밑바닥까지 마주하고 말았다.
나는 내가 예민해질 때를 안다.
몸이 힘들고 피곤할 때,
대자연의 날이 다가올 때,
뭔가 자꾸만 거슬리고 힘들다고 느껴질 때는 어김없이 그런 이유들 때문이다.
내가 예민해져서 까칠하게 말하고,
자꾸만 거슬리는 것들이 생기고,
아이들에게는 화를 낼 때면,
나의 감정궤도가 정상범위에 도달해 진정이 되었을 때
나 스스로가 참 밉고 싫었다.
그런 예민함을 이겨내고 싶어
운동도 하고,
글로 써보며 나를 돌아보고,
잠도 충분히 자려고 했다.
어떤 날은 괜찮고,
어떤 날은 괜찮지 않았다.
괜찮은 날의 나를 기억하고
나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어야 했다.
나는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점점 나아지고 있는 중에
나는 그런 모습의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예민한 나도 '나'임을 인정했다.
몸이 힘들면 감정이 더 섬세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몸이 피곤하면 쉬어야하는 신호인거라고,
화가나는 일에는 화가 날 수 있다고,
속상한 마음이 생기는건 자연스러운 거라고,
아이에게 화를 내는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고,
편안하고 다정한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참 애쓰고 있다고,
그래 나는 애를 많이 쓰고 있지만,
잘 안되어 속상해질 때 자꾸만 나를 너무 가라앉히고 있었다.
가라앉고, 주저 앉아버리는 내가 싫었던거고, 마주하기 싫었던 거였다.
그런 나를 인정하고,
어두운 면의 나도 '나'라는 것을 알아주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리고 무념무상의 시간과 휴식의 시간, 사유의 시간을
아주 잠깐이라도 가질 수 있게
나의 에너지를 올릴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애를 써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를 채워가는 시간이 쌓여가면
더 나은 내가 되리라 믿음을 넣어주면서 말이다.
어린 시절의 나의 감정을 받아주는 어른이 없었더라도
지금의 나는 내가 나를 받아주고 예뻐해줄 수 있다.
나를 사랑하는건 어쩌면 그런 나를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