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큰 세계에서의 첫 직장
면접은
세 명씩 들어갔다.
임원들 앞에 나란히 앉아
같은 질문을 받거나,
누군가는 다른 질문을 받았다.
그날, 우리는 그 자리에서 바로
누군가는 합격을,
누군가는 불합격을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누군가의 평가.
‘이런 게 사회라는 건가?’
너무 빠르고,
너무 분명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여의도로
출근하게 되었다.
‘대기업 계약직’이라는 이름으로.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은 모두 달랐다.
누군가는 일찍 오고,
누군가는 늦게 왔다.
나는 그 시간을 확인하고,
체크하고, 입력했다.
지금처럼 전산화가 완전히 되기 전이라
사람이 직접 입력하고
사람이 다시 확인하던 시절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우편물을 받기 위해
모든 부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 순간만큼은
회사 전체가 모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곳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은 익숙해진 풍경이지만
그때의 나에겐
모든 것이 낯설었다.
특히 옷차림.
연예인보다 더 화려해 보였던
직원들의 모습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화장을 거의 하지 않던 나에게
그 세계는
더더욱 다른 행성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말하는 퇴근 후의 삶에
나는 끼지 못했다.
옷의 상표도,
바로 옆 백화점에서 사는 화장품의 이름도
모르는 내가 그 세계에서는
너무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업무는 생각보다 단순했지만
그 안의 분위기는 복잡했다.
말투, 표정, 관계,
보이지 않는 규칙들.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아, 이곳은 내 자리가 아니구나.’
지금의 말로 하자면
‘직장 내 부적응자’였을지도
모르겠다.
좋게 포장하자면 그렇다.
끼어주지 못해 어울리지 못한 건지,
어울리지 못해 끼지 못한 건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세 달 만에
사직서를 냈다.
그때 직장 상사는 말했다.
그럴 줄 알았다고.
너는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고.
그리고 덧붙였다.
잘 생각했다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응원하겠다고.
그 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어디에나
어른은 분명히 있다.
이곳이 내 자리가 아니라는 걸,
나는
비교하지 않고
알아차렸다.
그때의 나는 ‘버티는 것’과 ‘맞는 것’을
구분할 줄 몰랐다.
좋은 직장이면
참아야 하는 줄 알았고,
큰 세계에 들어왔으면
나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말할 수 있다.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버티는 건
성장이 아니라
소모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그 시절의 사직서를
실패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건
나에게 맞지 않는 세계를
알아차린
첫 번째 선택이었다.
그곳을 떠났다고 해서
바로 내 자리를
찾은 건 아니었다.
화려한 세계를
지나온 뒤,
나는 다시
나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야 했다.
다음 이야기는
성격을 바꾸면
삶도 달라질 거라
믿었던
한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