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을 미룬 채 사회로 나간 청춘
재수 대신 사회생활을 택한 이유
— 꿈을 미룬 채 사회로 나간 청춘
졸업을 앞두고 사람들은 물었다.
재수를 할 거냐고,
아니면 사회생활을 할 거냐고.
질문은 늘 두 개뿐이었다.
하지만
내 앞에 놓인 선택지는
그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재수를 하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다.
공부를 더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대학이라는 공간이 주는 기대도
분명히 있었다.
다만
그 모든 선택에는 하나의 전제가 붙어 있었다.
먼저 벌어야 한다는 것.
재수를 하려면 학원비가 필요했고,
그 비용을 누군가 대신 마련해 줄 수는 없었다.
조언해 줄 어른도,
기다려 주겠다는 말도
곁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계산부터 했다.
꿈이 아니라, 생활을.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 사이에서
조용히 현실을 골랐다.
그 선택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꿀 거라고는 그땐 몰랐다.
주변 친구들은 교실에 남거나,
학원으로 흩어졌다.
나는 혼자 다른 쪽으로 걸어 나왔다.
같은 나이였지만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는 않았다.
낮에는 일했고, 밤에는 다음 달을 계산했다.
무언가를 포기했다기보다
모든 걸 잠시 미뤄
그릇에 담아두는 느낌이었다.
사실 그때의 나는 “괜찮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자주 했다.
지금은 이게 맞다고,
나중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그 말이 나를 버티게 해 주었다.
사회로 먼저 나간 사람의 마음은 늘 조금 복잡했다.
뒤처진 것 같기도 했고,
괜히 어른 흉내를 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도 있었다.
멈출 수는 없다는 것.
그 선택은 야망도, 용기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가진 조건 안에서
오늘을
살아내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곧 나를
훨씬 크고 화려한 세계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여의도, 문화방송이라는
이름의 공간.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직장인’이라는 단어를
현실로 마주하게 된다.
재수를 선택한다는 건 그때도, 지금도
시간과 마음만의 문제가 아니다.
적지 않은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결정이다.
다만 그때의 선택은
‘버는 시간’과 ‘기다리는 시간’ 사이의
문제였다면,
지금의 선택은 아예 기다릴 여지조차
사라진 경우가 더 많아졌다.
그때의 나는 생활을 먼저 계산하며
현실을 골랐고,
지금의 많은 이들은 선택지 자체가
줄어든 현실 앞에서
한 번 더 멈춰 선다.
어느 선택이 더 옳았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분명한 건,
시대가 바뀌며 ‘기다림의 비용’이
훨씬 더 커졌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때의 선택을
꿈을 포기한 결정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건
당장 살아내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었다.
사회로 나왔지만
그곳이 곧
내 자리가 되는 건
아니었다.
일을 시작했다는 사실보다
어디에 서 있는지가
점점 더 중요해졌다.
다음 이야기는
너무 큰 세계 앞에서
처음 느낀
이질감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