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으로 시작하는 책이 많은 이유
'나이가 몇 살이에요?'라는 물음에 작년부터 순간 멈칫하는 사람은 비단 나뿐이 아닐 것이다.
공식적인 한국 나이가 만 나이로 바뀐 작년 6월부터 나의 나이는 감사하게도 30대로 돌아갔다. 생일이 느린 탓에 친한 친구들보다 2살이나 어린 나이로 돌아가 이쯤이면 이미 마흔이 지났을 나이인데도 난 아직 마흔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삶의 피곤함은 이미 마흔을 훌쩍 넘은 듯한 이 느낌은 무엇일까.
교보문고에 발표한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니 1위가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다.
작년부터인가, 올해 초 부터인가, 유독 마흔의 수식어가 붙은 책들이 많이 나왔다.
'마흔에 읽은 쇼펜하우어'부터 '마흔에 읽는 니체', '벌써 마흔이 된 딸에게', '김미경의 마흔 수업', '내 나이 마흔', ' '마흔 최적의 공부법' 등등 이 밑에도 엄청 많다. '마흔에 시작하는 주식 공부 5일 완성'도 있다.
왜 이리 마흔으로 시작하는 책들이 많은 걸까.
6개월 후면 마흔을 맞이하는, 원래대로면 이미 마흔을 한 살 정도 지난 내생각으로는 마흔이라는 나이는 인생의 한 변곡점을 지나는 나이이기 때문이 아닐까.
회사에서는 팀장급으로 임원급과 사원, 대리 사이에 낀 리더이긴 하지만 소위 MZ 세대와 한 시대를 이끌어온 세대 사이에 낀 이도 저도 아닌 세대. 하지만 이상하게 두 세대를 다 이해하는 유일한 세대. 그래서 두 세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참 고달픈 세대.
가정에서는 자라나는 자식들 뒷바라지는 해야 하고, 노후 준비도 해야 하는 데 버는 월급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으니 10년 앞이 아니라 당장 1년 후도 예측하기가 힘들다. 이러니 대한민국의 마흔들은 회사의 일 말고도, 가정을 지키는 일 말고도 다른 일들을 해야 할 것만 같다. 그래서 무언가 다들 바쁘게 움직인다. 재테크든, 자기 계발이든.
우리나라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성인 나이 대는 마흔에서 오십 대라고 한다. 이들이 과연 여유가 있어서 많이 읽는 걸까? 나는 간절해서 많이 읽는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해야 하는 마음에.
그러니 마흔을 위한 책이 많이 나오는 게 아닐까. 가장 책을 많이 읽는 이들을 겨냥해서? 아니면 정말 순수하게 너무나 바쁘고, 지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전자인지 후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마흔쯤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후자이기를 바란다. 우리는 마케팅에 이용당하고 싶기보다는 위로받고 싶으므로.
안 그래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가 그나마 위로받고 있는 책에서까지 마케팅으로 이용당하고 싶지 않기에.
이 고달픈 시기를 무사히 지난 후 오십쯤이 된다면 그때는 지금보다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마흔으로 시작되는 책이 아니라 오십으로 시작되는 책을 미소 지으며 읽을 수 있을까.
그런데 역시나 오십으로 시작되는 책은 별로 없다. 그때는 무슨 책을 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