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2학년이 되자 학교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2분 스피치를 하고 있다.
미리 집에서 그날 주어진 시간과 주제에 맞는 글쓰기를 한 후, 처음 몇 번은 20초, 그다음은 30초 이렇게 점차 시간을 늘리다가 마지막에는 2분까지 늘린다고. 아이들의 발표 능력을 향상해 주기 위한 선생님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 첫 번째 20초 발표의 주제는 '우리 가족 소개'였다.
우리 가족 소개라 하면 의래 아이들은 아빠의 직업, 엄마의 직업 혹은 하는 일을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아들도 스피치 주제를 선생님께 듣고 온 날, 나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가 집에서 뭐 한다고 이야기해? 블로그 쓴다고 이야기해도 돼?"
흠... 일단 블로그는 이야기하지 말자고 했다. 예를 들어, 도서 인플루언서라는 확실한 뭔가가 있기 전까지 혹은 방문자수가 폭발적으로 높기 전까지는 아주 가까운 지인들 외에는 알리기가 좀 민망했다고나 할까. 그다음 아들의 질문.
"그럼, 엄마는 뭐 한다고 이야기해? 논다고 이야기하기 좀 그렇잖아."
순간, 화가 올라왔다.
"회사 안 가는 엄마는 다 노는 거야? 엄마가 놀아? 너 밥 해주고, 빨래해 주고, 학교 데려다주고, 학원 데려다주고, 그 앞에서 대기하고, 친구들이랑 놀 때도 그 앞에서 기다려주고, 다 하는데 그게 노는 거야??!!!"
화를 냈다.
회사를 정식으로 그만 둔지 2년이다. 아들이 7살이 되면서, 아들을 봐주시던 친정엄마는 혼자 대구에 계시는 아빠가 눈이 밟히신다며, 니 얘는 네가 키우라며 대구로 내려가셨고, 직급이 점점 올라갈수록 팀장으로서의 자질, 내 일에 대한 자신감이 부쩍 떨어져 있던 나는 '이제 때가 온 건가'라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약 7개월 동안은 이전 회사 상무님의 제안으로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원래 나의 경력인 제약회사 연구원 일도, 허가파트 일도 아니었기에 엄청난 후회를 하며 겨우겨우 육아와, 가사와, 블로그와 회사일을 동시에 했고, 그 이후로 다시는 이전 회사의 경력을 살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새로운 길을 갈 거라며.
그게 지금이다. 누군가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정확히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는.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지?' 남들이 보기엔 평범한 가정주부인데, 계속 바쁘다고, 계속 힘들다고만 하는 이상한 아줌마. 그게 바로 지금의 나다.
나의 평일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 블로그 확인을 하고, 아들을 깨워서 학교에 보낸 후 내일 올린 포스팅을 미리 써서 예약을 걸어둔다. 그리고 인스타에도 책 한 권을 올린다. 그 후 어제 쓴 블로그 포스팅에 달린 댓글에 대댓글을 남기고, 답방을 가며 이웃님들과 소통을 한다. 그러다가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면 그때부터는 아들의 케어시간이다. 아들 학원을 데려다주거나, 아들의 숙제나, 그날 공부를 봐주고, 다시 내일의 블로그를 쓰고, 저녁밥을 준비하고, 저녁식사가 끝나면 다시 블로그를 마무리. 마지막 자기 전에는 아들의 책을 읽어주거나 나의 책을 읽고 그날 하루 끝. 이게 나의 하루다. 그럼 주말은? 아들의 학원 케어 대신 아들, 신랑과 나들이 가는 것만 빼고, 거의 동일하다.
이런 나의 직업은 무엇일까?
도서 인플루언서가 언젠간 되면 블로그 도서 인플루언서? 아직은 안 됐으니 그냥 블로거? 만약, 이렇게 글을 쓰다가 나의 꿈인 언젠가 책 한 권을 내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작가님? 아직은 책 한 권은 어림도 없으니 그냥 브런치 작가?
취업준비를 하는 학생들을 취준생이라 부른다. 그럼 나같이 '꿈을 좇는 사람들'은 '꿈좇사'? 좀 이상하네. 다시 '꿈을 꾸는 사람들'로 바꿔서 '꿈꾸사'로 부르면 어떨까? 우리 엄마의 직업은 '꿈꾸사'! '꿈을 꾸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꿈은 곧 현실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이다. 하하하.
하지만 현실은... 아직은 가정주부다. 무언가를 하긴 하지만, 무얼 한다 말할 수는 없는.
첫 번째 가족소개가 끝나버린 아들은 날 어떻게 소개했을까. 아들 몰래 글쓰기 노트를 봐야겠다.
회사를 안 다니는 엄마는 좋지만, 이럴 땐 안 좋은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