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의 수다
어느 날 아침,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데 창문 밖으로 시끄러운 소리가 계속해서 들린다.
우리 집은 서울이지만 아파트보다 빌라가 많고, 주택이 많은, 그리고 주말마다 카페에 방문하는 사람들로 인해 주민보다 방문객들이 많은 동네에 위치한다. 그리고 나의 집은 작은 도로가 지나가고, 2분만 걸어가면 국공립 어린이집이 있다. 아무래도 아침 소음의 원인은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어머니 세 분이 아닐까.
우리 집에서 제일 방이 작지만, 햇빛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서재방으로 이 방을 고른 건 순전히 나의 의견이었다. 덕분에 베란다 없이 바깥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겨울이면 흘러오는 찬바람과 길거리 소음을 다 감당해야 했지만. 오늘이 그날인가 보다. 그 소음을 감당해야 하는 날.
창문으로 말을 건네볼까. 조용히 해달라고. 여기는 주택가니 다른 곳에 가서 이야기를 나눠달라고. 우리 집은 3층이기에 내 목소리가 다 들릴 텐데.
하지만 동시에 예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 다니던 유치원 앞에 공원이 있었다. 그 공원 바로 앞에서 빌라가 있었고. 유치원 아이들은 유치원 하원을 하고 짧으면 20분 길게는 한 시간 정도 항상 공원에서 뛰어놀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유치원으로 빌라 주민의 항의가 들어왔다. 아이들이 너무 시끄럽게 뛰어논다며, 조용히 시켜달라는 항의였다. 그리고 그다음은 구청으로 항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학부모들은 똑같이 항의를 했다. 밤도 아니고 대낮인데, 그리고 고작 몇 분인데 아이들이 노는 걸 가지고 항의를 하냐고. 공원이 있는 걸 알고 이사 온 거 아니냐고. 공원의 소음까지 반영된 집값 아니냐고. 결국 빌라 주민이 유치원에 오기로 하고, 나는 학부모 대표로 유치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항의한 빌라 주민은 끝끝내 유치원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항의한 빌라주민을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다. 항상 아이들이 공원에서 놀고 있을 때 2층 자신의 집에서 아이들을 뿌루퉁하게 내다보던 그 얼굴. 아직도 기억하고 있기에.
오늘 아침 어린이집 학부모들의 수다로 인한 소음을 겪은 후 몇 년 전 겪었던 그 공원 항의 소동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다시 생각을 해본다. 만약 오늘 그 소음이 학부모가 아니라 아이들의 소리였다면. 나의 집 앞에서 어른들의 수다가 아니라 아이들의 수다가 몇 분 동안 이어진 상황이었다면 나는 오늘 짜증이 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소음이 몇 날 며칠 이어진다면 나는 그 공원의 그 빌라의 주민처럼 행동하지 않았을까. 나도 이 빌라가 길거리에 지어진 걸 알고 이사 온 건데 말이다.
아무리 내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바가 이치에 맞는 일일수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 아닐까. 아이들이 점점 뛰어놀 곳이 없어지는 것도 맞고, 집에서 지내는 주민들이 그로 인해 소음을 겪는 것도 맞다. 하지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서로서로 양보할 건 양보하고 내가 배려할 수 있는 만큼 배려해 가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라가 해줄 수 있는 건 나라가 중간에 나서서 해결해줘야 하지 않을까.
아파트 놀이터에서도 아이들이 노는 걸로 같은 아파트 입주민들이 항의하는 세상이다. 아이들은 실내 키즈카페에서만 놀아야 할까. 아니면 주말에만 차를 끌고 어린이대공원 같은 큰 공원만 찾아다녀야 할까. 그러면서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만 한다고 나무라야 할까. 앞으로 더 나은 세상이 될지, 그 세상을 만들어갈 어린이들이 어떤 어른이 될지는 지금 우리 어른들에게 달려있는 게 아닐지.
적당히 배려하고, 적당히 참아가며 두루두루 함께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본다. 나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