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어진 선물
바뀌기 전 한국 나이로 41살. 바뀐 한국 나이로 아직 39살.
사실 나는 '동안'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처음 보시는 분들도, 많이 알고 지내는 분들도 하나같이 하시는 말씀이 '아이 엄마같이 안 보여요'.
절친한 친구들도 '너 어려 보이는 거 알지?'.
오랜만에 만난 선배들도 '정말 하나도 안 변했다.'
인사치레인 건 알지만 많은 분이 하시는 말씀이니, 정말 내가 '동안인가 보다' 한다.
그런데... 이런 나라도 나이를 속일 수 없는 것들이 종종 나타난다.
첫 번째, 몇 년 전부터 보이는 '하얀 눈썹들'.
아침 나의 루틴은 샤워한 다음 크림을 바르기 전 자잘한 눈썹을 뽑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눈으로는 안 보이는 데 손으로 만지면 느껴지는 까끌까끌한 것이 존재한다. 그것을 느낌으로 뽑아버리면 그제야 눈에 보인다. 하얀 눈썹이. 비단 눈썹뿐만이 아니다. 코밑에 난 콧수염도. 가끔 자잘한 콧수염도 하얀색이다.
두 번째, 위에서 말한 콧수염. 몇 년 전부터 굵은 콧수염이 몇 가닥 난다.
여성 호르몬이 줄어들어서일까? 눈에 띄게 남성들처럼 굵은 수염으로 몇 가닥씩 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올라올 때마다 내 눈에만 보이는 그것들을 살에서 피가 날 정도로, 족집게로 뽑으려니 이제는 그 자리에 흉터가 생겼다. 아침마다 컨실러로 가리고 다닌다.
세 번째. 턱수염. 공교롭게도 다 수염이긴 한데 턱수염 한 가닥이 몇 년 전부터 난다.
이게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사실 꽤 오래되긴 했다. 자라다가 안 자라다가 하긴 하는데 '이제 안자나 보다' 하고 방심하면 어느새 길게 자라 있어서 깜짝 놀라 뽑는다. 이것도 여성 호르몬 부족인가.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키가 작아 아래에서 날 올려다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 참으로 다행이다.
그밖에 신경 쓸 것들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20대부터 가지고 있었던 머릿속에 숨겨진 새치 한 묶음(타고난 거다). 운동 부족과 나잇살이 합해진 뱃살들(뚱뚱한 편이 아닌데도 뱃살은 생긴다). 동안인데도 숨길 수 없는 팔자 주름 등등.
세월이 흘러가면서 막을 수 없는 것들이 많음을, 동안 소리를 듣는 나인데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많음을 느낀다.
하지만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도,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기에, 그렇다고 '너 다시 과거로 돌라갈래?'라고 묻는다면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기에 이런 나라도 지금이 좋다.
최근에 인문도서 베스트셀러인 '만일 나에게 단 한 번의 아침이 남아 있다면'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여든 살이 된 나는 스무 살이나 서른 살 때보다 훨씬 쾌활하다.
10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젊음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견뎌내기도 그만큼 고통스럽다.
-만일 나에게 단 한 번의 아침이 남아 있다면 p27
물론 난 아직은 죽음만을 바라본 나이는 아니지만, 눈부시게 찬란한 젊음을 가진 나이 또한 아니기에 위의 문구 특히 마지막 줄에 격하게 공감한다. 위의 문구를 마찬가지로 나의 블로그에 공유했더니 댓글에 다들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이웃님들의 글이 많이 달렸다. 이미 찬란하지만 그만큼 고단했던 20대를 겪은 후 지금의 40대, 50대를 지나고 계신 나의 이웃님과 나.
나 또한 이렇게 흰 눈썹이 있는 나라도, 지금의 내가 마음만 먹으면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기에 앞으로의 내가 더 기대될 뿐 이전의 아무것도 모른 채 모든 것에 부딪히기만 했던 20대의 나로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내가 기대하는 노년의 삶과 노년의 모습이 있다. 그런 모습으로 내가 늙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감사히 보내려 한다.
비록 이런 나의 모습에 가끔 깜짝깜짝 놀라 옆에 있는 아들에게 말하면 아들은 '그래서?'라는 단 한마디로 공감을 해주진 않지만, 뭐, 괜찮다. 난 아직 동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