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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아나무 Nov 11. 2023

다시 처음이라오

다른 시지프스

김현식의 노래 중에 <다시 처음이라오>가 있다. '비처럼 음악처럼'이나 '내 사랑 내 곁에', '사랑했어요'처럼 유명하진 않지만 가슴을 저리는 노래다. 


스물네 살에 시골로 발령을 받아 처음으로 자취를 하면서 나의 독립생활은 시작되었다. 그곳에서의 첫 독립생활은 처음이라는 야릇한 설렘과 처음 살아보는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유쾌한 날들이었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정취에 빠져 편지를 쓰기도 하고, 멀리 있는 친구가 와서 기뻐했으며, 눈 오는 날에는 긴 일기를 쓰기도 했다. 그럼에도 때때로는 시절이 주는 외롭고, 쓸쓸하고, 가슴 뭉클거리는 고독 같은 것이 있었다. 또 내 앞에 놓인 길이 온통 미로 같아서 방황과 열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때 마음을 더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는 친구 같은 것이 김현식의 노래였다.

매일 밤 김현식의 노래를 들으며 일기를 쓰고, 밤하늘을 날아 별빛에 닿는 상상을 했다. 하루도 듣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그 시절 김현식의 노래는 큰 위로였고, 마음을 실어 어딘가로 닿게 하는 편지 같은 것이었는데, 특히 현식이 병이 들고 나서 부른 부르튼 노래들은 절규처럼 심장을 파고들었었다. 현식의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가 부르던 별 하나가 세상 밖으로 툭 떨어져 나간 느낌이었다. 

<다시 처음이라오>는 그가 별똥별이 되기 직전 온몸의 소리를 짜내어 불렀던 마지막 노래다.




그 노래를 다시 들었다. 

사별 후 나는 노래를 들을 수 없었는데, 슬픔으로 진공 되어 버린 마음에는 그 무엇도 위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년쯤 지났을 때, 불현듯 요절한 현식이 생각났다. 어리던 시절, 힘들거나 아프거나 꿈에 젖었을 때, 얼마나 많은 위로였던가 현식은.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막막한 내 심정과 같은 <다시 처음이라오>를 들으며 나는 격정에 싸인 밤을 보냈다.


어디쯤 왔을까 얼마나 걸었던가 옮겨진 발걸음을 또다시 옮길까

서러움 애써 달래 보려고 이만큼 걸었건만 

이제는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닌 

다시 처음이라오


내 마음이 어떻다고 규정지을 수도 없는 상태에서 주어진 시간을 걷고 또 걷는 기분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렀으나 나는 사별의 공황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돌아갈 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시간이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니며, 진동 없는 진공 속에서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였다. 그날의 시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에 멈춰 있었다.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닌 다시 처음'이라는 이 말이 가슴을 후벼 들었다. 

다시 처음이라오. 한 사람은 가고 나는 혼자이던 때로 돌아가 다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가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나는 감당할 수 없고, 앞으로 남은 세상을 내가 혼자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찾을 수 없는데, 그런데 다시 처음이 되어 걸어야 한다니 이 무슨 형벌이람.




마음을 달랜다기보다는 마음을 알아주었다. 

살다가 고통에 빠지거나 절망에 빠져있을 때,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주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는 지푸라기가 되는 것이다. 이 노래에 마음이 문을 엿보게 되었다.


'다시 처음이라오'. 처음엔 끝없이 막막했고, 그다음은 지금 서 있는 여기가 다시 처음이 되는 팔자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시지프스 신화처럼 죽을 때까지 처음으로 돌아가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게 인생이라면 그렇게 받아들이자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다. 

이 노래를 음미하며 사별 후 처음으로 모든 걸 '처음'이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처음인 것이 많았다.

혼밥 혼술도 처음이고, 집에 혼자 있는 것도 처음이고, 함께 꾸던 꿈을 버린 것도 처음이고, 퇴직도 처음이고, 혼자 여행도 처음이었다. 관계 정리도 처음이고, 늘 보던 것이나 하던 일이 낯설게 다가오기 시작하던 것도 처음이었다. 

처음처럼 각오를 다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나는 처음이었다.

글쓰기를 접은 것도 처음이고, 브런치 글쓰기를 시도한 것도 처음이다. 무수하게 많은 일들이 처음이다.




나에게 '처음'은 각오나 신선함, 호기심의 표현이 아니라 낯섦의 말이다. 거짓말 같게도 대부분이 낯설다. 

아이들과 평범한 척 셋이 앉은 식탁도, 명절이나 기일의 하루, 혼자서 무엇을 결정해야 할 때 마치 그에게 의견을 묻고 내리는 결정인 양 할 때, 낯설다.

아이들과 함께, 그가 있을 때의 대화법을 추억하는 것도, 기억 속의 한 자락을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꺼내 놓아야 하는 것도 너무 이상하게 다가온다.

이 낯섦이 점차 평범한 상태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 올 때 몸서리가 난다. 사람이고 가고 나면, 남은 식구들의 일상은 이렇게 낯선 평범의 하루가 되고, 속으로 묻는 무던한 아픔이 되어간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별한 이들 대부분은 이 기막힌 일상을 평범하게 받아들이는 경험을 하는 중이리라는 걸 깨닫는다.

그의 끝이 남은 가족에겐 처음이 된 셈이다. 


그가 남긴 끝을 잡고 나는 차라리 좀 다른 시지프스가 되어 보기로 한다. 

이미 낯선 길에 놓인 이상, 이 낯선 일상들을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내가 겪는 낯섦을 따라 늘 처음이 되는 새로운 시지프스로 살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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