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할 용기
착륙 첫인상
장시간 밤하늘을 나는 비행도 다 그러려니 하니 견딜만했다.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음날 오전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긴 시간을 들여 낯선 땅에 왔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사람 사는 도시의 어느 동네에 도착했다는 느낌이었다.
바르셀로나 광장에서 콜럼버스 동상까지 걷는 람블라스 거리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곳이다.
전광판 없는 낮은 건물들이 좌우로 틈 없이 이어진 넓은 거리에 야외 식탁에서 음식을 먹으며 대화하는 웃는 모습, 담배를 피우며 느긋하게 걷는 사람들의 표정, 그 사이로 지나가는 자동차, 거리 위 파아란 하늘 등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그 길이 처음인 나도 이미 이 길 위에 있었던 사람 같았다. 여행의 긴장과 비행의 피로가 바람결을 타고 날아갔다.
우뚝 솟은 콜럼버스 동상이 가리키는 곳은 지중해라 한다. 항해의 대명사를 이곳에서 만나니 과연 여기가 딴 나라임이 실감되었다. 그 광장에서 넓고 짙푸른 지중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은 콜럼버스만이 가능한 일이어서 아쉬웠다.
어울려서
무엇이든 다 받아줄 것 같은 람블라스 거리에서부터 내 여행은 시작되었다. 대서양 노을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리스본에 도착하기 전까진 알 수 없는 일로 미뤄두니 마음이 편안하고 기대도 되었다.
패키지 일행들은 혼자 온 나를 궁금해해서, 나는 많은 용기를 내서 왔다고, 당신도 시도를 해 보라고 말했다. 그들과 같이 잘 어울려 다녔다. 아무래도 사진은 내가 더 나은 것 같다며 사진도 많이 찍어 줬다. 그러다가 자주 가이드를 기다리게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람블라스 거리에서 본 사람들처럼 나도 웃고 마시고 떠들었다. 밥때마다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현지맛을 칭찬했더니 나중에는 으레 와인을 마시는 걸로 한 테이블에 앉기를 청했다.
애초 뭐든지 무덤덤하게 다 받아들일 상태였으므로 나는 극히 놀라거나 감탄하거나 거북스러운 것은 별로 없었다. 더 편안하게 다니고 안정된 상태였다. 그러나 세비야의 숙소에서 본 밤 9시의 노을에는 순간적으로 놀랐다. 밤 9시인데 이제 노을이라니, 시차 탓임을 알았음에도 밤9시 노을은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내가 보던 저녁 노을과는 기대가 먼, 어쨌든 시간적으로 환상을 깨는 일이었다.
낯섦을 낯설어하지 않고 잘 다니며, 모든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으니 일행이 전에 와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난 전생이 이곳이라고 농담했다. 낯설어하지 않음은 여행지에 특별한 마음이 없어서이겠지만, 그래도 바르셀로나에서부터 리스본 그리고 톨레도를 거쳐 마드리드까지의 일정 중 뇌리에 굵직하게 남는 몇 군데는 있다. 대성당들과 광장들 그리고 프라도미술관이다.
대성당
아직도 역사가 진행 중인 성당들은 그 규모와 화려함으로 어느 도시에 가든 관광객의 발걸음을 끌어모았다. 보고 듣는 것마다 입을 쩍쩍 벌리고 감탄하게 하니 역시 대성당이었다. 바르셀로나 성가족대성당을 시작으로 몬세라트 수도원, 발렌시아 대성당, 세비아 대성당, 포르투갈 제로니모스 수도원과 파티마 대성당, 톨레도 대성당을 들렀다.
가우디가 건축한 성가족대성당은 일반적인 성당의 외양과는 파격적으로 달랐다. 아직도 크레인으로 아슬아슬한 공중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원뿔 모양이 하늘로 기둥을 뽑아 올리는 것 같았다. 잭과 콩나무를 연상케도 하고, 신라의 첨성대를 연상케도 했다. 가우디는 어째서 엄숙함 넘치는 각 진 건물보다 동화적이고 발랄한 원통형으로 신에게 바치려 했을까.
여러 성당 중 내가 가장 압도된 곳은 세비야 대성당이다. 내부에 안치된 콜럼버스의 관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그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해서 신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또 내부의 화려함과 장엄함, 오랜 건축 기간은 종교가 얼마나 인간의 삶을 지배해 왔던 것인지를 말해 주었다. 추위에 떨고 위압감에 눌려 출구 정원으로 나왔다. 오렌지나무 그늘 아래에 앉았을 때에야 우습게도 이것이 종교적 안식이 아닌가 싶었는데, 그만큼 내게는 대성당이 무겁게 느껴졌다.
대성당 투어는 포르투갈의 파티마 대성당과 톨레도 대성당까지 포함하여 세비야 대성당 이후 더 흥미롭지는 않았다.
광장
대성당의 엄숙함을 벗고 가슴을 트이게 하는 곳은 광장이었다. 광장은 여행 중 나를 가장 여행자답게 느끼게 해 준 곳이다. 그곳은 대성당과 대비되는 여유와 자유가 있었다.
바르셀로나 광장에서부터 포르투갈 로시우광장 그리고 마드리드 광장까지 많은 광장에서 바람과 햇볕을 쐬었다.
그중 광장의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든 으뜸은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이다.
세비야는 아름다웠다. 장중한 세비야 대성당 관람 후 대서양으로 통하는 강 입구에서 황금의 탑을 바라봤다. 대서양으로 통한다니 내 마음이 한껏 물길을 따라 바다로 흘러갔다.
붐비는 관광객들 사이로 바람에 일렁이는 실버들은 호젓하고, 관광객을 태운 마차의 행진은 고풍스러웠다. 걸어서 마리아 루이사 공원을 경유하여 스페인 광장에 도착했다.
공원이 끝나는 지점에서 만난 드넓은 광장은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긴 회랑으로 이어진 고풍스런 건물이 길게 타원형으로 에워싸고 옆으로는 짙푸른 호수가 어우러졌다. 사진으로 봐왔던 장소다. 짙푸른 호수와 드넓은 광장을 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 폭의 점묘된 그림 같았다.
루이사 공원의 그늘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한적함이 커다란 숲을 이루었다. 호숫가 별관 통로에는 늙은 악사사 둘이 기타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들의 미소 앞으로 돈을 넣어주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나는 가까이 가지 못했다. 여기서는 사진만 찍는 내 모습이 가장 이방인 같았다. 이방인답게 호수와 광장을 한 폭으로 담고 천천히 가장자리를 걷는데 교회탑에 태양이 걸렸다. 왠지 행운 같았다.
자유시간이 끝나고 가이드가 건물 계단으로 불러 모았다. 건물의 벽타일마다 각각 다른 문양이 새겨진 것도 아름다웠고, 현재 관공서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으니 광장이 살아있는 중요한 이유겠다 싶었다.
광장은 가까이 가면 떠들썩하고, 나무 그늘에 앉아 바라보면 참 조용한 곳이었다. 이곳에선 이방인인 내가 진짜 여행자 같아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마드리드의 솔광장과 마요르광장은 북적이는 여행객들 속에서 내가 관광객이라는 느낌을 확실히 준 곳이다.
마요르 광장은 사방이 건물로 벽을 이룬 네모반듯한 넓은 광장이다. 건물 사이의 아치문을 통해 안과 밖을 드나들게 되어 있어 어찌 보면 닫힘과 열림 두 가지 정서를 확실히 보여주는 곳이었다. 하늘로 열린 해방감과 좁은 문의 폐쇄감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아치문에 사람을 매달아 숙청이 이루어지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많은 여행객들의 발걸음에 뜻밖의 광경을 보여주는 분주한 곳이 되었다.
푸른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리고 사진을 찍고, 광장을 조성한 펠리페 3세 기마상 앞에서 관광객다운 표정을 남겼다. 마요르 광장에서 더 오래도록 머물며 와인잔에 하늘의 노을빛을 담아보고 싶었다. 닫힘과 열림이 내 마음의 문 같은 곳, 마요르 광장에서.
프라도미술관
나는 그림을 잘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라도미술관에 매료되었다.
16세기 엘 그레코, 17세기 벨라스케스, 18세기 고야의 그림이 강하게 뇌리에 남았다. 커다란 화폭에 담긴 작품들을 실물로 보게 되니 그림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강렬함과 엄숙함이 있었다. 벨라스케스의 천재성은 이미 알려졌거니와 엘 그레코의 종교적 그림에서는 집요함이, 고야의 그림에서는 고단함이 느껴졌다. 설명을 듣지 않으면 그림을 봐도 뭔지도 모르지만, 어떨 땐 색다른 뭉클함이 툭 던져질 때가 있다. 미술관에서 그랬다. 어둡고 광기적이고 치열한 몸부림 같은 것이 가득 느껴졌는데, 어느 시대든 인간의 삶은 참 고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감상에 빠진 채 그림을 보자니 미술관 내부는 사람들로 넘쳐나 걸음을 옮기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가이드가 우리를 불러 세워서 전체를 다 둘러보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피카소의 그림이 없었어도 충분히 마음을 움직이는 미술관이었다. 그들 땅을 내리쬐는 태양의 빛과 어둠이 그들의 영감을 일깨워 많은 천재적인 화가들을 있게 했다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삭막한 산야 그리고 초원
인상에 굵직하게 남은 여행지 외 잊지 못할 것이 있다.
바르셀로나에서부터 세비야까지, 5일 동안 이동하면서 본 스페인 남부지역의 산야는 내 상상을 깨뜨려놓은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차창 밖으로 푸른 초원과 싱싱한 숲을 그리고 있었던 나는 풀도 자라기 힘든 삭막한 석회질의 땅을 보며 이 땅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살아가나 싶었다. 기후 변화로 땅은 점점 사막화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가슴이 아팠다. 광활한 국토에 올리브나무만이 싯푸르게 태양과 바닷바람을 이겨낸다니 끝없이 가꾸어진 올리브나무가 정말 귀한 생명줄이겠구나 싶었다. 사막 같은 땅을 달리면서 생물이 다양하게 살아있는 내 나라 강산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새삼 느꼈다.
6일 차 리스본으로 가는 길은 남부 지역과는 달리 목가적이었다. 목초지가 많고, 풀을 뜯는 소들 너머로 농가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채소와 과일나무 재배지도 자주 보였다. 차창 안 마음은 파릇해지면서 넓은 초원을 지닌 목가적인 땅이 이번에는 부러웠다.
대서양에 닿은 도시 리스본
드디어 대서양에 노을이 뜨는 나라가 가까워진다. 두근두근 들뜨는 마음에 얼굴까지 발갛게 물드는지 열기가 느껴졌다. 리스본으로 건너가는 붉은 다리 위에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일정상 까보다로카로 가지 않는단 말에 아주 아쉽고 절망적이었지만, 잠시 바다의 끝자락만 보고도 다시 오리라 마음먹었다. 대서양의 노을을 언제든 꼭 보겠다고.
벨렝탑은 바다로 가는 강가에 있어서 시간이 주어졌다면 바다를 보러 더 걸어갔을 것이다. 아쉽게도, 리스본 거리를 걷고 신트라 궁전으로 가기 위해 로시우 광장에 모였던 것이 대서양 노을을 꿈꾼 자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여기까지 왔는데,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노을 접신 실패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어디냐, 장하다. 뭐 애초에 노을 관망 시간대도 아니었는 걸.
꿈에 그리던 까보다로카는
대륙의 땅끝에서 '여기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라고 포르투갈의 시인이 노래했다지.
이 시구만으로도 바다와 하늘의 광경이 펼쳐진다. 그 바다 위 드넓게 드리운 노을이라면, 세상 어떤 갈망도 공허함도 다 끝날 것 같다. 세상 어떤 갈망도 허망함도 생각되지 않는 곳을 만난다면 내 여행은 끝나게 되겠지.
아직 내 여행은 종착지에 닿지 못했다. 그래서 앉은뱅이 여행자는 이제 서서 시작할 용기를 가진다.
그는 가고 나는 여기 있음이, 사라지는 것의 두려움과 공허감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연스레 받아지게 되길, 나에게 주문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