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랑하기

서로 사랑하여라

“마음은 그릇이고, 사랑은 그 안에 담긴 물이다. 마음에 사랑이 가득 차면, 그제야 내 사랑은 넘쳐흘러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그릇을 채우게 된다. “

신부님과 소주 한 잔 나누던 그날,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내 맘을 울린 말이다. 일단 나를 사랑으로 가득 채워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니, 나부터 사랑하라는 신부님의 마음 어린 조언이었다.

이 글은 종교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종교가 언급된다는 점에서 종교적이지만, 그저 종교를 통해 위로를 얻은 경험을 한 ‘나’에 초점을 맞추면 그다지 종교적이진 않다. 다만, 나는  이 글을 통해 종교가 아닌 ’ 사랑‘에 대해 말하려 한다.

사랑을 받는 게 너무나 좋았다. 내 기억이 시작되는 가장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면, 5살 그 작은 아이의 마음에는 할머니의 사랑으로 가득 차있었다. 지금도 그 어린 시절을 기억하면, 따뜻했던 할머니의 품속에 안겨 잠들었던 날들이 떠오른다.

이 시절의 나는 사랑을 받았고, 사랑을 받는 법을 알았고, 사랑받는 것을 좋아했다. 가족들 앞에 나서 춤을 췄고, 친구들 앞에 나서 발표를 하며 사람들이 주는 관심을 사랑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채워갔다.

남을 통해 마음에 사랑을 채워가던 나의 삶이 삐걱대기 시작한 건 아마 중학생 무렵쯤부터였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특별함으로는 더 이상 내가 원하는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 누군가의 관심을 끌고, 남과 나를 비교하는 짓만 늘어났다.

남과 나를 비교하여 마음을 채우는 행동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만 갔다. 나보다 못나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을 통해 스스로에 사랑을 잔뜩 주다가도 나보다 잘났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으로 인해 곤두박질쳐지면, 스스로에 주는 사랑이 동이 나 버린다. 단지 사랑이 없는 사랑 보다도, 스스로에게 줬다 뺐었다 하는 그 상황이 사람을 정말 힘들게 한다.

2018년 21살. 반수에 실패하고 원래 학교로 돌아온 나는 롤러코스터의 가장 아래에 처박혀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으로 사랑을 채우고, 남들과의 비교로 스스로에게 사랑을 준 지난 10년의 처참한 결과였다.

그때 나에게 그나마 기댈 곳이 되어준 것은 종교였다. 어느 날 예수님의 초상화를 문득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기억이 있다. ‘나’조차도 나를 사랑하지 않던 때에, 나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5살의 나에겐 할머니가 그러했고, 21살의 나에겐 예수가 그랬다.

그 이후로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말을 내 마음에 기둥으로 박아두었다. 나의 마음의 그릇이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아 남을 사랑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았고, 몸부림치며 ‘나’를 먼저 사랑하기를 연습했다.

내 마음을 사랑으로 채우는데 5년이 걸렸다. 2024년 27살의 내 마음에는 이제 사랑이 넘쳐난다. 사랑은 넘쳐서 다른 그릇을 채우지만 오히려 내 마음에는 사랑이 더 가득 차오른다.

모두에게나 스스로를 채워주는 사랑의 ‘원천’은 존재한다고 믿는다. 나에겐 ‘예수’라는 형태로 다가왔을 뿐이고, 서로 다른 형태로 존재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부모님일 수도, 부처일 수도, 혹은 그냥 스스로를 스치는 자연일 수도 있다. 형태는 중요치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결국 사랑의 ‘원천‘이 ’나‘가 되는 그 순간까지 당신만의 ‘원천’으로부터 그 사랑을 받으면 어느새 당신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