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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괜찮은 삶 체크리스트

나 잘 살고 있는 걸까?

by 목신

문득, 울적해진다.


호르몬 때문일까,
바쁜 일상에 예민해진 탓일까—
원인은 잘 모르겠다.


한 켠에 처박아두었던
잔잔한 노래들의 플레이리스트를 다시 꺼내 듣고,
미소 없는 얼굴로 음악을 듣다 보면
문득 생각한다.
‘아, 그 시기가 또 왔구나.’


이유 없이 우울해지는 그 시기.
언제부턴가 주기적으로 나를 찾아온다.


이런 울적한 감정에 빠지면,
나는 자꾸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잘 산다'라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문득 생각한다.
'괜찮은 삶 체크리스트’ 같은 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치 설비 점검하듯,
눈앞에 놓인 리스트에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이번 달은 그래도 괜찮게 살았구나.”
그렇게 안도할 수 있다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그래서
문득 울적해진 오늘,
나만의 ‘괜찮은 삶 체크리스트’를 써본다.


내가 잘 살아왔는지,
잘 살고 있는지,
앞으로도 잘 살 수 있을지를 확인해보기 위해.


1. 감정이 태도로 드러나지 않았는가?

감정이 행동에 묻으면
그건 나도, 상대방도 괴롭다.


특히 내가 감정을 태도에 실어버린 날엔
늘 후회가 따라왔다.
상대에게 내뱉은 말이
감정 때문이었는지,
정말로 상황 때문이었는지
구분이 잘 안 된다.


예전에,
평소처럼 편하게 이야기하던 형에게
갑자기 감정을 내뱉었던 날이 있었다.
말을 하고 나니
속이 후련해지긴커녕,
며칠을 찝찝함에 시달렸다.

날 내가 예민했던 건지,
정말로 서운했던 건지조차 모르겠더라.


사람의 감정이나 행동이 O/X로 딱 나뉘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은 상상해본다.
어딘가에 '심판'이 있어서
내가 던진 질문에 팻말로 답을 줬으면.
"당신은 그날 옳은 행동을 했습니다."
"아니요, 당신은 틀렸습니다."


하지만
그런 심판은 없다.
내 판단은 결국, 나 스스로가 하는 수밖에 없다.


그 판단을 더 정확하게 하려면
감정을 절제해서,
태도에 녹이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내가
감정을 태도에 실지 않고 지혜롭게 표현해냈다면,


이 리스트에 첫 번째 동그라미를 그려준다.


2.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연락했는가?

나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더 잘 다친다.
그래서, 방어기제가 생겼다.


언제부턴가
‘먼저 연락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다.
내가 보내는 연락이
상대에게 귀찮은 건 아닐까?
내가 기대하는 반가운 반응이 없으면
상처받을까봐 두려웠다.


그렇다고
혼자가 된 건 아니다.


나는 혼자 노는 법을 배웠다.
혼자 카페에 가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술집에서 소주도 마시고,
혼자 락페스티벌에 가서도
신나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혼자가 익숙해졌다고 해서
여럿과의 시간을 싫어하게 된 건 아니다.

혼자는 생존 전략이었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너무나 사랑한다.

그래서 이제는
솔직해지기로 했다.


"나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나를 더 보여주고 싶다."


혹시 이번 달,
그 용기를 냈다면


나는 두 번째 동그라미를 그려줄 수 있다.


3.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 자신을 바라보았는가?

자만심과 열등감은
백지 한 장 차이다.


이 두 감정은
모두 '비교'에서 출발한다.
남보다 낫다고 느끼면 자만심,
남보다 못하다고 느끼면 열등감.


결국,
비교하는 순간부터
나는 나를 좀먹는다.


어느 무리에서는
잘난 사람처럼 굴고,
어느 무리에서는
한심한 사람처럼 숨는다.


가장 부끄러웠던 건
그런 내 모습을
스스로 눈치챘을 때다.


운동을 하며
거울을 보는 법을 배웠다.


그 거울 앞에 서면,
남이 아닌
어제의 나와 마주하게 된다.


나는 어제보다 더 나아졌는가?
나는 그저께의 나보다 더 단단한가?

이제는 그 거울을
삶의 거울로 옮길 차례다.


남과 비교해서 얻은 내 장점에 의지하지 않고,
남과 비교해서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고,
그저 내 안의 성장과 변화를 바라볼 수 있었다면—


세 번째 동그라미를 그려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 지금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니?”


사실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하기는 어렵다.
운동을 했다거나,
할 일을 다 해냈다거나—
그런 외형적인 기준들은
지켰다고 해서 꼭 ‘괜찮은 삶’이라 말하긴 어렵다.


반대로,
이 세 가지 체크리스트는
지키지 못했을 때
내 마음이 유독 더 무거워졌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리스트를 꺼내고,
동그라미를 하나, 둘, 셋
그려본다.


그러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리고
조용히 되뇐다.


“이번 달은 그래도, 괜찮은 삶을 살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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