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신 Apr 23. 2024

1. 괜찮은 삶 체크리스트

나 잘 살고 있는 걸까?

문득 울적해진다. 


호르몬의 영향인지, 아니면 바쁜 일상에 예민해진 탓인지 원인은 모른다. 한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잔잔한 노래들 플레이리스트를 다시 꺼내 듣고, 미소 없는 표정으로 노래를 듣다 보면, '아 그 시기가 다시 돌아왔구나.' 한다. 이유 없이 우울해지는 '그 시기'가 나에게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이런 울적한 감정에 빠지면, 자꾸만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나는 잘 살고 있나?'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만, 대답하기는 참 쉽지 않다. 잘 살고 있냐는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기도 어렵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물어보기도 참 애매하다. '잘 산다'라는 것에 기준은 사람 마다도 너무 다르다. 이럴 때면 '괜찮은 삶 체크리스트'가 내 앞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주기적으로 설비의 체크리스트를 가져와 안전점검을 하듯, 눈앞에 놓인 '괜찮은 삶 체크리스트'를 보며 하나, 둘 체크를 해가는 거다. 동그라미가 더 많다. "이번 달은 그래도 괜찮은 삶을 살았구나" 하며 내가 괜찮은 삶을 살았다는 안도감을 가지면 내 마음이 좀 나아질까?


이런 마음에서 나만의 '괜찮은 삶 체크리스트'를 적어본다. 내가 잘 살아왔는지, 잘 살고 있는지, 잘 살 수 있을지 조금이나마 나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1) 감정이 자주 태도로 나타나지는 않았는가?


내 감정이 태도로 드러나서 상대방을 대하면, 늘 후회가 남곤 한다. 후회와 함께 밀려드는 부끄럼은 내 마음에 남아 며칠을 나를 괴롭힌다. 나의 태도, 행동에 감정이 껴버리면 내가 옳은 행동을 했는가를 스스로 판단하기가 너무 어려워진다. 그 감정이 좋은 감정이었든, 나쁜 감정이었든 그렇다. 좋은 감정에 휩싸여 혼자 높은 텐션으로 상대방을 대했을 때나, 나쁜 감정에 휩싸여 예민하게 상대방을 대했을 때나, 과한 감정이 묻은 행동은 늘 후회를 불러왔다.


평소와 크게는 다를 것 없는 친한 형과의 대화에서 뭐가 기분이 나빴는지 와다다 내 감정을 내뱉었을 때가 그랬다. 말을 내뱉고 나서 기분이 후련해지기는 커녕 찝찝함만 남아 며칠을 스스로를 고민에 빠뜨렸다. 갑자기 기분 나쁘다는 말을 쏟아낸 이유가 '정말로 내가 그 말에 기분이 나빠서'인지 '그날따라 내가 피곤해서 예민한 상태여서'인지 도무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의 감정이나 관계라는 것이 O/X로 딱딱 나뉠 수 있는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심판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이런 상황에서 판결을 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심판 앞으로 가서 질문을 던진다. '제가 그날 했던 그 행동은 옳은 행동인가요?' 그럼 심판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수 초 고민을 하다가, O/X 둘 중 하나의 팻말을 들면 나는 그 결과에 수긍하고, '아, 나는 옳은 행동을 했구나.' 혹은 '아 나는 옳지 않은 행동을 했구나.' 하고 뒤돌아서 앞으로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또 하나의 레퍼런스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에 이런 건 없다. 애초에 옳은 행동, 옳지 않은 행동이란 것이 딱딱 나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더군다나 이런 심판 같은 것은 존재할리가 더더욱 없다. 그러니까 내 행동에 대한 판단은 스스로 하는 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판단이 원활하려면, 내 태도들에 감정이 과하게 묻지 않아야 한다. 


감정을 절제하여 태도에 드러낼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면, '괜찮은 삶 체크리스트'에 첫 번째 동그라미 표시를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2)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연락을 했는가?


나는 사람들이 참 좋다. 좋아하는 만큼, 상처는 더 받기 쉬웠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방어기제가 생겨 버리더라. 여전히 사람들은 너무 좋으나, 스스로 사람들과 일정 거리를 정해놓고 대하기 시작했다. 


먼저 하는 연락을 잘 안 하게 되었다. 글쎄, 굳이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라던가 그런 이유는 아니다. '내 연락을 귀찮게 여기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이던가, '내가 기대하는 반가운 대답이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걱정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여전히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연락은 너무나 반가웠지만, 정작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잘 없게 되는 아이러니한 그런 상태에 빠져버렸다.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해졌다.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카페에 가서 책도 읽고, 혼자 술집에 가서 소주도 한잔 해보고, 혼자 락페스티벌에 가서 신나게 놀아도 봤다. 예전에는 혼자서 노는 게 너무도 두렵고 어색해서 상상도 못 했던 행동들이 이제 나에게는 익숙하다. 이제는 혼자 노는 것도 잘하고, 혼자 놀아도 전만큼 외로움을 타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혼자 노는 것이 익숙해진다고 해서 여럿과 노는 것이 안 좋아진 것은 아니더라. '나에게 혼자 논다는 것'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이 없을 때도 외롭지 않기 위해 스스로 찾아낸 생존 전략 같은 것이다.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 척했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감정을 숨기고 표정도 숨겨보았다. 친구든 누구든 내가 나타내는 감정이 부담스러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또, 나만 좋아했다가 상대방이 미지근한 반응을 보고 상처받을까 두렵기도 했다. 나름대로 잘 숨겼다고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만날수록 "너는 사람들을 참 좋아하는 것 같아."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더라. 숨기려야 숨겨지지가 않았나 보다. 여전히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 자꾸만 웃음이 나는 것을 참기가 힘들다. 너무 말이 많을까봐 자제하려 하지만,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를 자꾸만 보여주고 싶은지 말이 많아진다. 이제는 인정했다. 나는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이런 내 모습을 되찾고, 인정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나이도 들고, 상황이 맞지 않아 쉽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용기 내서 연락을 해봤다면, '괜찮은 삶 체크리스트'에는 두 번째 동그라미가 생길 것 같다.


3) 남을 눌러 내 장점을 찾아내진 않았는가? / 남을 추켜세워 내 단점을 찾아내진 않았는가?


자만심과 열등감은 백지 한 장 차이이다. 남과 비교하여 생기는 두 감정은 보통 공존하곤 한다. 남과 비교하여 본인을 추켜세우는 사람은 본인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크고, 자기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은 열등감을 이겨내려 그 사람들보다 잘난 자신의 모습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두 감정 모두 '남들과의 비교'로부터 기인한다. 그리고, 경험 상 두 감정 모두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 남들과 나 자신을 비교해 가며 자꾸만 스스로를 좀먹었다. 두 감정에 지배되었던 나는 여전히 똑같은 사람임에도 어느 집단에서는 스스로를 잘난 사람으로 취급하고, 어느 집단에서는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는 바보 같은 짓을 해대곤 했다. 이런 스스로의 모습을 마주했을 때만큼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거울 앞에 선다. 바벨을 들고 어깨 위로 든다. 주변에는 근육질의 남자들이 잔뜩 있고 내 몸은 초라해진다. 다시 앞을 보면, 내가 바벨을 들고 서 있다. 운동을 할 땐 오롯 나 스스로만 본다. 그리고 끊임없이 비교를 시작한다. 어제의 나와, 그저께의 나와 한 달 전의 나와.


운동을 하며 거울을 보는 법을 배웠다. 남이 아닌 과거의 '나'와 경쟁하는 법을 배웠다. 과거의 '나' 경쟁하며 변화를 만드는 법을 배웠다. 이제는 그 거울을 내 삶으로 가져올 차례다. 남과 비교하여 찾아낸 내 장점을 보며 자위하는 것이 아니라, 거울을 보고 발견한 내 장점을 자랑스럽게 여길 차례다. 남과 비교하여 찾아낸 내 단점을 보고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거울을 보고 발견한 내 단점을 고쳐나갈 차례다. 


삶의 거울을 보며, 남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장/단점을 찾아냈다면, '괜찮은 삶 체크리스트'에 마지막 동그라미를 그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스스로 '지금 너는 괜찮은 삶을 사고 있어?'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여러 질문을 해보았다. '오늘은 쉬지 않고 운동을 다녀왔는지?', '오늘 스스로 정해 놓은 업무량을 잘 해내었는지?' 등등 여러 질문을 던져보았다. 글쎄, 지키면 좋은 것들일 수는 있지만 지키지 않는다 해서 내가 '괜찮은 삶'을 살지 못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위에 적은 3개의 체크리스트는 스스로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울함에 빠지곤 했던 질문들이었다.


'괜찮은 삶 체크리스트'를 펼쳐두고 스스로 체크해 간다. 


동그라미 하나, 둘, 셋...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이번 달은 그래도 괜찮은 삶을 살았구나."

작가의 이전글 0. 감정의 재활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