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아빠 전교 1등 아들 만들기
대충 눈치는 채셨겠지만 나의 아버지는 그리 훌륭하지도, 멋지지도, 돈이 많지도 않은 그런 분이시다. 가족에게 많은 상처를 줬고 지금도 가끔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고 계시는, 뭔가 혼자 외로운 섬에 갇혀 뭔가 깨 닳지 못하고 외로이 늙어가시는, 자식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기 어려운 환경에 놓이신, 그 위 부모로부터 도 똑같은 경험을 받고 자라신, 어찌 보면 안타까운 그런 분이시다. 그에 대한 원망을 지금은 많이 누그러트렸지만 그래도 다 털어 내기에는 힘이 든다.
도대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적 동네에 서울대를 다니면서, 과외를 해서 학비를 내고 다니는 아주 말도 안 되는 청년 얘기를 하시며(동네가 서울대 근처라 서울대 교수들이 많이 살았다.) 나와 비교를 가끔 하시곤 했다. 무시도 힘들지만 비교도 나의 머리 뚜껑을 사정없이 열어 놓는 단축키가 되시겠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남과 스스로 비교를 많이 한다. 공부 잘하는 친구, 운동 잘하는 친구, 노래 잘하는 친구, 잘생긴 친구. 싸움 잘하는 친구, 모두가 부러움 천지다. 나와 비교하다 보면 나는 작아지고 저 친구들은 거대한 거인이 되어있었다. 나 스스로도 비교를 하며 작아진 상태인데 거기 다가 아버지는 기름을 들이부으시기 일쑤였다. 너는 왜 그렇게 못하니? 아버지는 왜 주인집 아저씨처럼 돈이 없어요? 똑같은 거 아닌가? 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과의 비교는 정말 견디기 힘든 모욕이었다. 찰나에 그래! 나도 미친 듯이 공부해서 복수해 주겠 어라고 다짐도 해보지만 며칠 못 가더라. 어딘 가에 있는지 모르겠는 엄친아들에게 나는 늘 상 패배자였다. 키 작은 아들을 갖은 엄마가 아들에게 너는 옆집 아무개처럼 왜 키가 크지 못하니?라고 묻는 것만큼 어처구니없는 말이 없을 진데, 우리는 늘 상 그렇게 비교를 해댄다. 아들이 수영을 같은 반 친구들하고 잠시 다닌 적이 있는데, 참관을 하고 있으면 아들이 친구들 중에 가장 수영을 느리게 하더라. 그때 내가 아들에게 너는 왜 다른 아이처럼 수영을 잘 못하냐고 했다면 어찌 되었겠는가! 이럴 때 나는 아무 소리를 하지 않는다. 아들에게 나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축구 잘하고 농구 잘하는 친구들은 그걸 너보다 많이 해서,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잘하는 거지! ~ 네가 못 하는 게 아니다. 절대 난 못해라고 생각해지마! 마음만 먹으면 그들 만큼 너도 할 수 있어!
축구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고, 피겨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누구나 다 박지성이나 김연아가 될 수 없다는 건 안다. 그래서 지능이냐 노력이냐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싸우고 있지 않은가! ~ 거기다 운도 끼워 넣어줘야 하지만 남과의 비교만큼 스스로 우리를 무너트리는 것도 찾기 쉽지 않다.
인간은 왜 비교를 할까? 사실 사회가 비교를 부추긴 면이 더 크지 쉽다. 자꾸 경쟁으로 우리를 내몰고 비교를 강요한다. 그래서 누군가 보다 내가 못하면 패배자라는 낙인을 찍어서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다. 자꾸 시선을 어딘가 있을지 모르는 대단한 사람들의 환영을 만들어 괴로워하지 말고, 내 안에 있는 나를 찾아보고 어제의 나와 오늘에 나를 비교해 보고, 질책이 아닌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 주기 바란다. 재미난 에피소드 하나 소개한다. 내가 군대를 전역하고 머리를 빨간색으로 (갈색 정도?) 염색을 하고 집을 들어가니 어머니가 개새끼라 욕을 하시며 (할머니가 욕쟁이 할머니라 어머니도 욕을 찰 지게 잘하셨다.) 당장 나가라 신다. 그때 이놈의 아들은 화가 난 건 아니고, 순간 어머니를 웃기려 이렇게 얘기한다. “음……어머니! 내가 개의 새끼 면 어머니도 …. 개…. 이신가요?” 말을 해놓고도 이건 아니다 쉽기는 했지만 나는 웃고 있었다. 어머니는 “너는 내 새끼 아니야!”
어머니가 버스를 타고 다니실 때 머리를 염색하고 다니는 청년들을 보시며 혀를 끌끌 차시며 흉을 보셨다 한다. 그런데 내 아들이 저러고 나타나니 순간 화가 안 나셨겠 나? 내가 정한 기준들이 있는데, 그 기준을 비교를 해 자꾸 우리는 남과 나를, 남에 자식과 내 자식을, 내 남편과 다른 남편을, 내 아빠와 다른 아빠를 비교한다. 굳이 비교를 해서 상대방에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 제발 그러지 좀 말자! 앞으로 비교는 하지도 말자!~
왜 경차를 사려는 나를 중형 suv를 타게 만드냐 말이다. (실제 그랬다)
지금도 나는 경차를 타고 싶다. 이유는 사실 돈이 아깝다. 어차피 타고만 다니면 되는 차를 굳이 좋은 차를 타고 싶은 생각 자체가 없는 사람이라… 나는 덩치가 좀 큰 편인데 작은 차에서 내리는 덩치 큰 사람이 뭔가 모르게 멋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다
어릴 적 비교에 훈련된 우리들은 커서도 비교를 하며, 비교에 대물림을 하며 살고 있다. 이제 끊어 낼 때도 되지 않았나.
아들 중학교 졸업식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아들 친구 부모들이 있는데 졸업식날 우리 부부를 그 부모들이 피해 다니더라,
어디 숨어 계시는지 나는 찾아보아도 찾을 수도 없었고, 나한테 다가와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화장실에 다녀온 아내와 마주친 누구의 엄마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며 도망가듯이 뛰어가더란다.
그날 아들은 주인공이었다. 단상에 올라 교장 선생님한테 자랑스러운 땡땡인 상을 받았다. 내심 자랑스러움을 뽐내고 싶었던 나의 옹졸함 뒤로 아들 친구 부모님들은 우리 부부를 피해 다녔다. 분명 비교에 의한 회피였을 거였다. 부러워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창피했던 거였을까? 지금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걸 승자에 거만함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거는 사돈이 땅을 사면 왜 우리는 배가 아파야 하는가 말이다. 누군가 좋은 일이 있으면 축하해 주고 격려해 주는 일이 왜 그리 인색하냐 말이다. 그리고 남이 망했을 때 뒤에서 웃고 있는 우리를 본 적은 없는가? 비교를 당했던 내 자식이 커서, 남들과 항상 비교를 하며 그렇게 각박하게 살길 바라는가? 축하할 일에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를 못하게 자라게 하고 싶은가?
왜 엄친 아를 마냥 부러워만 하며 살게 할 건가? 승자에 거만함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왜 미리 당신에 아들은 제처럼 못하냐고 단정을 지어 주눅 들며 살게 하고 싶냐 말이다. 그리지 마시라! ~
지금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신은 누구나 남들과 다른 보석을 하나씩 품에 간직해 지구로 보내셨다. 믿어 보자.(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종교가 없다)
내 아들이고 내 딸인데 왜 못하겠는가? 내가 못나서 내 자식도 못 날 거라 단정하는가?
세 가지를 안 해야 한다더라!
본인 자랑, 돈 자랑, 그리고 자식 자랑, 이 중에서 가장하면 안 되는 게 뭔 줄 아시는가? 자식 자랑이다. 본의 아니게 하고야 말았다는 점 사과드린다.
나도 인간인데 자랑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래도 일단은 안 하려고 노력은 항상 하며, 겸손하게 살고자 애는 쓴다는 점 알아주시면 감사하겠다. 아들에게 재능은 자랑하지 말고, 노력은 자랑을 해도 된다고 가끔 말하긴 한다. 노력조차도 자랑을 하지 말라면 그것도 또한 너무 야속한 거 아니겠는가! 아들은 노력을 해서 상을 받았다. 누군가는 재는 머리가 타고났을 거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부부는 안다. 아들이 어떻게 공부를 하고 있었다는 걸.
“내가 말이야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공부만 했으면 서울대 갔어!” 우리도 다 알지 않은가? 맞는 말이다. 공부만 했으면 우리 모두는 서울대 갔다. 다들 알면서 왜 타인의 노력을 폄하하려 드는가! ~ 주변에 노력하는 이가 보이면 칭찬해 주자! 그리고 격려해 주자. 그러면 그대로 그 칭찬과 격려가 나에게 그대로 돌아오리라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