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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사마리아인

by 윤성학


꼬부랑 할머니가 나를 부르네

이리 와봐 이리 와봐 손짓하네

지름길로 서둘러 간다고 골목으로 들어서던 참

나를 부르는 줄도 모르고 가다가

이리 와봐 이리 와봐

둘러보니 골목길엔 나 혼자뿐

낡디 낡은 어둑서니 연립주택 현관문을 반쯤 열고 삐죽이 서서

나를 부르네 가던 길 멈추었지


테레비가 안 나와 테레비가 안 나와

들어와서 좀 고쳐줘

집안은 황천처럼 어둡고 개 짖는 소리만 텅텅

할머니 저 그런 거 잘 못 고쳐요 재주가 없어요

들어와 들어와 테리비가 안 나와 테리비가

진짜 못 고쳐요 제가 많이 바빠서 가봐야 돼요

좀 전보다 조금 더 바쁜 척 잰걸음 몇 발짝 옮기다가 돌아보았지

나를 원망하며 쏘아보고 있으면 어쩌나

할머니 나를 쳐다보지 않고 다른 누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네

몸이 반 접힐 만큼 꼬부랑 노파도

지나간 일보다 다가올 사람 기다리는데

나는 무언가에게 잡혀 왜 자꾸만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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