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퇴근한다
현관에 가방과 재킷을 던져놓고 넥타이도 풀지 않은 채
그 여자에게 엎드린다
쇼파는 나의 형상을 기억해 두었다가
엎어지는 몸을 고스란히 받아 안는다
그렇게 쪽잠을 자고 일어나 보면
땀을 흘리며 뒹군 흔적
움푹 가라앉은 그녀의 굴곡
어느 하루 후덥던 저녁
나의 체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쿠션을 내려다보며
늘 이 모양인 일상의 굴곡을 견딜 수 없었다
이제 그 여자를 버리기로 한다
오래도 나를 받아주었구나 그 여자는
쿠션을 들어내다 보니
동전들과 라이터와 식자재마트 적립카드와
구겨진 메모와 세탁소 영수증과
과자 부스러기와 왜 여기 있는지 알 수 없는 돌멩이 몇 개
그 여자를 버린다
여자는 저녁마다 나를 꾀어 애무하며
하루의 고단을 오롯이 받아주는 척 하면서
내가 어제의 나와 다르지 않고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말랑한 평온으로
내게 입맞추었던 것이다
내 눈을 감겨놓고
바지와 셔츠 주머니에서
잃어버려도 금세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들만 골라
하나씩 조금씩 빼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