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식물원입니다. 식물원에서는 시간이 마디게 흘러가서 좋습니다. 와야 할 것은 멀리 있고 떠나보내야 할 것들도 서둘러 가지지 않습니다. 나무 사이를 걸으며 그들의 이름표를 읽으면 나무처럼 아주 천천히 나이를 먹습니다. 걸음이 느려져 유일하게 내가 내 마음에 드는 시간입니다. 부드러웠던 명자나무의 가지가 가시로 변해, 상처에도 나이테가 생긴다는 것을 깨닫는 공간입니다.
평범함을 곡진히도 나무랐던 그대여.
강을 건널 때마다 멀리 발전소의 굴뚝을 바라봅니다. 나무가 그러하듯, 굴뚝이 그러하듯 한자리에 오래 서 있는 것들을 오래 쳐다봅니다. 오래된 슬픔. 이토록 극진한 일상을 견디며 가까스로 평범함의 척추를 세운 풍경입니다. 나무아래 서 있을 때 혹은 나무에 기대앉아 있을 때 그의 몸부림이 전해오는 것은 이러한 까닭입니다.
나무화석을 만져봅니다. 아주 오래전에 쓰여진 평범한 시 한 편. 자신의 일상을 경작하던 자의 주검입니다. 시는 나무로부터 와서 돌이 됩니다. 시집 한 권이 규화목이 되어 남는다면 그대여, 기억이 작동하듯 작동이 기억되듯 돌의 내부에 기록된 것들이 끝내 손에 전해진다면, 결국 사라진다면
나무가 돼야겠습니다, 다음 생이 오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