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곰! 일상도 만만치않다.
3박5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북곰이었다. 새벽 비행기로 귀국했는데, 비행기 안에서 불만이 많았다. 출발 예정 시각이 새벽 2시 였는데 게속 연착됐다. 필리핀으로 갈 때도 비행기는 제때 출발하지 못했고, 활주로를 몇 바퀴나 돌았다. 항공사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뭐 승무원이 아직 안 탔다던가 조종사가 술이 덜 깼다던가... 항공사 단골 멘트인 기상악화는 아닌것 같다. 하여간 좁디좁은 좌석에 앉았는데, 3자리 중 마지막 좌석에 어떤 남성분이 먼저 앉아있었다. 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동시에 한숨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나랑 덩치가 비슷한 사람이었다. '내가 북곰인데 저분은 흑곰이군'. 아내 통순도 만만치 않은 무게의 소유자이지만 곰은 종이 다르다. 아내를 위해 창가 자리를 양보하고, 중간에 내가 그리고 복도쪽에 흑곰 아저씨가 앉았다.
비좁은 비행기 안에서 착한 북곰과 흑곰은 서로 몸이 닿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요즘 세상에 이런 좋은 곰들이 또 있을까. 나도 그렇지만 상대 흑곰도 순한 종이 틀림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건 안 되는법. 나와 흑곰은 여러 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맞닺은 팔은 아무리 어떻게 해볼려고 해도 다시 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5시간 넘는 고통 속에 우리는 서로 헤어질 수 있었다. 나도 상대방도 참 고생 많았다. 우연히 어디선가 다시 본다면 그 힘들었을 흑곰에게 좋은 일이 가득하길 바란다.
맡겼던 나의 애마 차량을 받고, 돈을 결제 후 집으로 갔다. 생소한 모르는 곳을 드라이브 할때만 해도 여행이 계속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집에 도착해 캐리어에서 짐을 빼고, 빨래를 돌리고 잠깐이나마 청소를 한 후 나와 아내 통순은 그대로 기절하듯 잠을 잤다. 눈을 뜨니 여행의 흥분은 없어지고, 한국에 돌아왔다는 현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무런 걱정없이 일어날 수 있었던 여행지와 다르게 토요일임에도 '오늘 자고, 내일 자면 월요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벌써부터 출근을 걱정하는 북곰이었다. '여행 전 급히 처리했던 일들과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 지긋지긋한 사람들'까지 모두가 날 기다리고 있을것 같았다. 나와 있을 때는 그 누구보다 상남자로 보이는 아내 통순도 같은 우울감을 겪는 듯 보였다. 나는 그런 통순을 위로하고자, 외모 칭찬으로 말을 시작했다.
"자네는 참 유유자적한 멧돼지처럼 생겼는데. 벌써부터 월요일 걱정을 하는구만. 껄껄껄! 자네 모습에 어울리게 행동하게나."
"뭐라고 이 뚱뚱한 넘이 지금 누구보고 멧돼지래!"
통순은 누가 봐도 성난 멧돼지처럼 나에게 돌진 했다. 덕분에 기운이 돌아온 것 같아 다행이었다. 물론, 상처가 내 몸에 생기기는 했지만. 어쩔 수가 없다. 마음 넓은 북곰인 내가 참을 수밖에...
늦은 점심 무렵. 슬슬 배가 고파졌다. 집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 근처 '채선당 샤브샤브'로 갔다. 여행의 피로보다 출근 후 닥칠 일들에 대한 걱정을 잊고자 간 곳이었다. 얼큰한 육수를 시키고 월남쌈과 숙주 나물, 버섯, 청경채, 양배추, 겨자채를 가득 담았다. 치즈떡과 어묵, 만두도 잔뜩 가져왔다. 월남쌈에 라이스페이퍼,무채순, 오이채, 새싹도 넉넉히 준비했다. 팔팔! 끊는 육수에 숙주나물과 야채를 넣어 감칠맛을 더 해줬다. 물이 팔팔 끊어 오를 때 얇게 저며진 소고기를 넣었다. 라이스페이퍼는 뜨거운 물에 담가 펴서 그안에 숙주나물, 버섯 그리고 중심인 소고기를 넣고 무채순, 오이채, 새싹도 적당량 넣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칠리 소스를 듬뿍 넣어서 피를 양쪽으로 이쁘게 접어 '큰 만두'처럼 싸서 한쌈 가득 맛있게 먹었다. '역시 힘들 때 먹는것이 최고의 보약이다.' 아내와 나는 열심히 샤브샤브를 참 맛있게 잘 먹었다. 큰 보올로 2번정도 떠오고, 소고기를 다 먹을 무렵 칼국수 사리를 넣었다. 나는 완전히 익은 면발 사리보다는 살짝 덜 익은 밀가루맛 나는 칼국수 사리도 좋아한다. 이것도 칠리소스에 담궈서 먹으면 맛있다. 얼큰한 육수 한모금에 마음의 씨름을 없애고, 비여진 마음에 춤을 추는 듯힌 칼국수사리로 흥을 주고, 마지막엔 계란을 넣은 죽으로 아름답게 마음의 포장을 하였다. 배가 부른 곰과 돼지는 그렇게 힘들 수있는 시간을 현명하게 먹는걸로 해결했다. 흥에 넘쳐 아직 오지 않은 고통을 저 멀리 날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