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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하 Jun 04. 2024

보고싶은 할아버지께


할아버지 잘 지내시죠?


 우리 마지막으로 같이 여행 갔던 계절이 돌아왔네요. 지금처럼 날씨가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했었죠. 용의 면회 가는 길 차 안에서 무슨 대화를 나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나요. 그 여행이 함께하는 마지막 여행인 줄 알았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고성에 도착해서 용의를 만났을 때 할아버지가 활짝 웃으셨던 기억만 나네요. 금쪽같이 예뻐했던 손자 면회 가는 길 할아버지 마음은 어땠을까요. 속초 바다에서 같이 사진도 찍었고 군복 입은 손자를 한참이나 쓰다듬기도 하셨죠. 그때 먹었던 도미 회는 살면서 먹었던 회 중에서 제일 맛있었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이미 그때도 할아버지가 평소와 많이 달랐어요. 한참 시간이 지나고 엄마 아빠는 일찍 알아채지 못했던 게 못내 아쉽고 속상하다고 했어요.


© jonecohen, 출처 Unsplash


 한동안은 15일이 되면 할아버지 생각이 났어요. 매월 15일은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셨던 날. 멋지게 양복 입으시고 중절모를 쓰고 멋쟁이 지팡이 짚으시면서 수원에서 종로로 나들이를 가시던 길에 들르셨잖아요. 15일에 연금을 받으시면 늘 저랑 용의한테 용돈을 주셨죠. 그게 얼마나 우리를 많이 생각해서 신경 쓰신 일인지 그때는 몰랐어요. 너무 철이 없고 어렸고... 마흔이 다 되어가니 할아버지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곁에 없으니 더 생각이 나고 그리워지는 거겠죠. 지금도 종로에 가면 할아버지들이 많아요. 예전이랑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국가유공자 배지를 달고 계신 분들을 보면 할아버지 생각이 나요.


 할아버지가 처음 구로에 있는 우리 집으로 오셨을 때도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그냥 평소 우리 할아버지 같았는데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직접 느끼게 됐죠. 갑자기 할아버지가 없어지셔서 엄마 아빠가 난리가 났었잖아요. 한참 시간이 지나고 연락이 왔는데 할아버지가 수원 원래 사시던 집으로 가셔서 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다고 했죠. 지금도 신기하고 궁금해요. 대체 어떻게 가신 거예요? 엄마는 할아버지가 수원집에 가셨던 것 보다 소방서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가 더 걱정이 되셨다고 해요. 수원집에 연락을 해봤더니 안 계셨고 동네를 한참 찾아봐도 안 계셨대요. 진짜 큰일이 났다고 생각하셨죠. 그러다가 소방서에서 연락을 받고 오류역으로 달려 갔잖아요. 거기서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엄마를 해맑게 바라보던 할아버지를 만났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대요. 그렇게 거의 몇 시간을 탈진한 상태로 헤맨 후에 할아버지를 만났죠. 엄마는 할아버지랑 빨대 꽂은 바나나우유 하나씩 마시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에서 이별하게 될 언젠가를 직감했대요.


© nci, 출처 Unsplash


 언젠가부터 할아버지가 엄마를 사회복지사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세상에서 제일 귀하디 귀한 큰아들 철수를 봐도 그냥 지나가는 아저씨 정도로 생각하셨죠. 아빠는 할아버지가 아빠를 잊어가는 게 정말 마음이 아팠대요. 그런 할아버지가 마지막 순간까지 큰손녀 제 이름을 잊지 않으셨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것 같아요. 어느 날 외출하는 저를 비밀스럽게 손짓하시면서 부르셨잖아요. 무슨 일인가 싶어 조심스럽게 할아버지한테 갔더니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서 외출하는 큰손녀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용돈을 주셨죠. 달력을 보니 15일이었어요. 그리고 할아버지에게는 하루하루가 15일이 됐죠. 나가는 저에게 매번 만 원씩 주셨고 저는 그걸 엄마한테 드리고 엄마는 그 용돈을 모았다가 할아버지에게 드렸어요. 이것도 우리 가족만 아는 추억이 됐네요.


© pawel_czerwinski, 출처 Unsplash


 언젠가 할아버지를 보내드릴 날이 될 때 입을 수도 있으니까 준비하자며 엄마가 사줬던 까만 기모 후드티가 있었어요. 옷을 받은 지 두어 달 지났을까요. 한 번도 그 옷을 입지 않았어요. 왜인지는 모르겠어요. 딱히 분위기가 안 좋은 옷도 아니었고 평범한 옷이었는데 그냥 옷장에 넣어두고 입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학원을 가는데 그 옷을 그냥 입게 됐던 것 같아요. 딱히 이유도 없었어요. 그날은 눈이 참 많이 왔어요. 흔치 않게 서울에서도 눈이 무릎까지 쌓였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날 그렇게 할아버지와의 인사가 마지막이 될 줄 알았다면 꼭 안아 드렸을 거예요. 너무 평소와 같았고 여느 때와 비슷한 하루의 시작이었기에 그 평범한 날 할아버지와 이별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폐암으로 거의 움직이지 못하셨잖아요. 그날 엄마가 안방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나왔는데 거실에 이불을 곱게 펴고 누워계셨대요. 몸을 잘 움직이시지도 못하셨는데 방에서 어떻게 거실로 나오셨나 너무 신기했다죠. 그래서 평소 같았으면 추우니 방으로 모셨을 텐데 아빠가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렸대요. 너무 신기하고 기분이 좋아서 아빠에게도 보여드리려고요. 그렇게 아빠가 집에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첫 마디가 “아버지 어떻게 나와계셔?” 였다고 하니 엄마·아빠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이 가요. 평소 같았으면 아빠가 바로 운동을 하러 나가셨을 거예요. 그런데 그날 엄마가 아빠한테 “여보 아버지 목욕 먼저 시켜드리고 가요.”라고 말했고 아빠는 기꺼이 그렇게 할아버지 목욕을 시켜드리고 운동을 가려 했대요. 그렇게 할아버지가 아빠 품에서 돌아가시게 됐죠. 할아버지 사랑하는 큰아들 기다리셨던 거죠?


 할아버지, 저는 지금도 할아버지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유일하게 드셨던 딸기를 보면 할아버지 생각이 문득 나고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 얘기가 나오면 할아버지 지팡이가 생각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우리 집에서의 시간도 너무 생생하거든요. 그 사이에 할아버지 큰 손녀는 회사에 취직도 결혼도 했어요. 현충원에 인사 갔던 손주사위 기억하시죠? 아마 할아버지가 계셨다면 정말 많이 이뻐하셨을 거예요. 저는 잘살고 있어요. 할아버지도 그곳에서는 건강하셨을 때 그 모습으로 잘 지내고 계셨으면 좋겠어요. 아프시지도 않고 우리도 다 기억하고 계실 거라고 믿을게요.



할아버지, 정말 많이 보고 싶고 사랑해요.

손녀딸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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