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그로드 간지는 달라이라마가 살고 있는 곳으로 유명한 불교대학과 수련장이 많다. 그 덕에 전 세계의 많은 스님들의 버킷리스트가 맥그로드에 와 보는 것이라 했다. 반면에 나는 티베트의 아픈 역사도, 달라이 라마라는 이름도 이곳에 와 처음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일 년에 두 번 정도 큰 법회가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달라이 라마가 이야기하는 삶의 지혜를 들을 수 있는 강연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달라이 라마의 강연은 종교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이 듣고자 하는 인사이트가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단지 기다려지는 축제기간일 뿐이었다. 법회 시즌이 되면 이 작은 마을이 전 세계에서 달라이라마를 보겠다고 몰려오는 사람들 덕에 북적북적하다. 시장에도 더 활기가 돋고 비교적 변두리에 위치한 우리 게스트하우스도 만실이다. 고요히 혼자 있는 것도 좋지만 갑자기 달리기를 했을 때 급격히 상승하는 몸의 변화처럼 새로운 인연은 내 일상에 생기를 준다.
강연이 있던 날, 눈 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새벽부터 머리도 못 감고 끌려 나온 덕에 비교적 앞 쪽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엄숙한 분위기에 여기저기서 외워대는 불경소리까지 겹쳐 눈이 자꾸 감긴다. 곧이어 사람들이 까마득한 뒤쪽까지 가득 찼고 종이 울리는 것이 시작하려나 보다. 웅성웅성 뒤쪽의 사람들이 일어서 불교식 인사를 한다. 달라이 라마가 천천히 앞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사람한테서 후광이 있다는 말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인자한 웃음에 우리나라 동네 할아버지와 다를 것 없지만 뭔가 달랐다.
연예인을 실제로 보면 이런 느낌일까?
티베트말로 진행되는 강연이었지만 영어 통역사가 있어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개개인이 행복해야 공동체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내가 행복해야지.’
거의 영어 리스닝 시험 수준이었지만 나름대로 수업을 잘 듣는 모범생처럼 선생님과 눈도 마주치며 열심히 듣는다. 간혹 심히 동감하는 부분에서는 따봉과 손 하트도 번갈아가며 쏴 드렸다.
법회가 끝나고 달라이 라마가 들어왔던 길을 되짚어 퇴장하시다가 내 앞에 우뚝 서신다. 그러더니 갑자기 손을 내미시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내가 조금 주춤거리니 옆에서 눈 언니가,
“얼른 잡아라!”
하길래 냅다 잡았다. 어안이 벙벙한 나를 보며 환한 미소로 웃어주신다.
이때부터가 골 때리는데, 졸지에 나도 이 동네 슈퍼스타가 되었다.
“이야, 팔자 폈다 너.”
“너는 억겁의 죄가 씻긴 거야.”
“어머, 얘 좀 봐? 이거 엄청난 일인 거야.”
“전생의 모든 죄가 씻겼습니다.”
등등오늘 사건에 대한 너무나 많은 해석을 듣고 거리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집중 대상이 되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이 악수를 청하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하루를 보냈다. 그들은 달라이 라마가 나와 악수를 했기 때문에 나는 블레싱 대상이 되었고 내가 악수를 해주는 사람에게도 복이 흘러간다고 믿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우리 집에 사람들이 찾아온다.
"악수 할까요?"
지금도 악수를 할 때면 가끔 그때 일이 떠오른다. 하지만 마음가짐은 많이 다르다. 내 삶은 달라이 라마의 악수를 받고도 크게 변한 것이 없고 그때도 지금도 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여전히 크고 작은 상처에 쓰러졌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일 뿐이다. 그럼에도 내가 손을 내미는 이유는 복을 주기 위함이 아닌 부족한 나를 품어주는 상대를 향한 고마움, 사랑, 위로의 마음 등이 섞여있다. 세상 따뜻한 감정들을 아는 나는 복이 있는 사람이다. 꽃이 지기에 아름다운 것처럼 언제 시작되고 끝날지 모르는 인연의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기며 세상 모든 관계를 사랑으로 풀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