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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피 Sep 22. 2023

여행의 맛

인도의 스위스 마날리에서

세계 3대 히피들의 성지, 전나무 숲이 우거져 인도의 스위스가 불리는 마날리는 맥그로드에서 버스로 8시간 이동해야 한다. 내가 특별히 이 도시 방문을 즐겼던 이유는 인도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자연 온천이 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올드 마날리나 뉴 마날리에서 머무르지만 나는 늘 온천이 있는 바쉬쉿 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 많은 게스트 하우스 중에서 내가 선택한 호텔은 바쉬쉿 온천 바로 앞 문라이트 게스트 하우스였는데 온천 바로 앞이라는 장점 말고도 새벽에 조금 일찍 일어나면 코끼리들이 와서 목욕을 하고 가는 기이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긴 코로 서로에게 물을 뿌려주며 목욕을 하는 당황스럽지만 따뜻한 풍경을 보며 모닝커피를 마시는 호사를 매일 누렸다. 저녁에는 실컷 놀고 들어와 온천에 들어가 몸을 담그고 뚫린 천장으로 별을 바라봤다. 우리나라 온천 시설을 생각하면 곤란한 것이 자연이 생성한 온천이기에 탈의실은 고사하고 사방이 뚫려 있어 남녀 혼탕 수준이다. 물론 옷을 벗을 수도 없다. 그러나 불만있는 사람 없이 매너를 잘 지킨다. 더러운 옷으로 탕에 들어오는 사람도 없고 심지어 누가 시킨 바 없는 청소를 하는 사람도 있다.     



 

마날리의 송어구이를 정말 좋아한다. 그날도 기분 좋게 송어구이와 이 지역의 또 다른 특산품 사과 주스를 두 잔이나 마시고 온천으로 향하고 있었다. 주황색 터번을 두른 사두가 나에게 말을 건다.   

  

“보통 얼굴이 아니 구만.”

“응, 맞아. 나 보통사람 아니지.”

“넌 부자가 될 거야.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500루피를 줘야 해.”

‘뭐래, 당장 내가 쓸 500루피도 없거든.’      


패러글라이딩과 트래킹, 급류에 보트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마날리는 나름의 이유로 수행 중인 사두들의 성지이기도 하다. 그들의 대사를 여유 있게 받아치는 나를 보며 한 친구가 내 곁에 바짝 붙으며 말한다.  


“와, 언니 진짜 대단해! 안 무서워? 저 사람들 그냥 거지 아니에요? 하, 너무 스트레스받아.”


어떤 풍경이 우리를 즐겁게 해 주고 호기심을 끄는 것은 우리가 그것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습관, 종교적 의식, 놀이의 본질은 인생에 맛을 더하는 데 있고, 인생의 의미를 창조하는 것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미 가졌다고 해도 세상이 더 이상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자연스럽고 단순하게 보일 뿐이다. 그러나 여행은 심오한 자연을 막연하게나마 알 수 있게 해 준다. 여행은 마치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여인과 같다. 군중 틈에 사라진 여인, 발견해야 하는 여인 말이다. 그 여인은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수천 명의 여인들을 만나면서 그 여인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 여인을 발견 하여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다. 여행도 그와 같다.    


내 다이어리 첫 장에 꽂아 둔 생텍쥐베리의 글이다.

나는 사두들에게 친절한 편도 아니고 구걸에 호응하여 돈을 드려 본 적도 없다. 나에겐 공기와 같은 그들이 여행자의 시선에선 경계의 대상이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이미 객의 신분을 넘어선 것일까?


내가 머무는 이곳이 더 이상 호기심을 자극하지도,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이지도 않으나 한결 여유 있고 한가로운 내 모습이 나쁘지 않다. 비로소 군중 틈에서 발견해야 하는 여인을 찾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지금 인도에서 만난 많은 사람과 경험을 통하여 인생의 맛을 더해가고 있고, 내가 창조한 삶의 의미가 내면에 꽤 탄탄히 세워짐을 느낀다.


그림같은 풍경에 머물렀던 이방인의 시선에서 내면으로 옮겨진 시선을 느끼는 것. 여행은 이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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